심리적 압박이 경기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이영임 박사의 스포츠경제학 산책-5] 돈을 주면 운동을 꾸준히 할까? https://brunch.co.kr/@bruncht7ac/74
이 글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이영임 박사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를 검증해본 연구를 함께 살펴봅니다.
[참고논문] Hickman, D. C., & Metz, N. E. (2015). The impact of pressure on performance: Evidence from the PGA TOUR.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116, 319-330.
월드컵 경기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 30분을 지나 마지막 승부차기에 돌입했을 때의 숨 막히는 긴장감, 양궁선수가 마지막 화살을 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길 때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팽팽한 공기……스포츠 경기의 긴장감은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흥분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의 승패가 결정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만끽하게 되죠.
하지만 선수들에게 경기 중의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은 넘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지나친 긴장은 실수를 유발하거나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죠. 스포츠 경기에선 선수가 지나친 긴장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곤 합니다. ‘초킹(choking)’이라는 현상입니다. 이는 스포츠심리학뿐 아니라 행동경제학에서도 흥미로운 실증 연구 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심리적 압박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심리적 압박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인 Hickman과 Metz는 선수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경기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실증 연구를 시도하였습니다. 이들은 여러 종목 중, 골프를 분석 대상으로 택했는데요, 멘탈이 개입되지 않는 종목이 없겠으나, 특히 골프는 멘탈 싸움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수들의 심리 상태가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엄청난 상금이 걸린 골프 대회에서의 마지막 홀 퍼팅을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연구 설계는 이렇습니다. 연구진들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의 PGA투어 자료를 수집합니다. 특히, 심리적 압박 하에서 이루어진 퍼팅 성과에 주목하고자 파이널 라운드의 18번 홀 퍼팅만을 분석 대상으로 제한한 후, 여러 데이터를 연계하여 총 23,596개의 퍼팅 자료를 구성하였습니다. 여기에는 568명의 선수와 210개의 토너먼트 관련 정보가 포함되었죠.
이 연구는 심리적 압박이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했습니다. 자,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바로 ‘선수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의 크기’변수와 ‘성과’변수를 어떻게 정의할지입니다. 연구자들은 먼저 성과를 나타내는 변수를 더미 변수화합니다(통계기법입니다). 즉, 퍼팅이 성공하면 1의 값을, 실패하면 0의 값을 가지도록 설정한 것이죠. 다음으로 연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나타낼 변수를 찾아야 하는데, 이 연구에서는 ‘퍼팅 가치(the value of a putt)’라는 변수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퍼팅 가치란 무엇인가?
개념은 간단합니다. 선수가 경기의 파이널 라운드 18번 홀에서 시도한 퍼팅을 성공하거나 실패할 때 기대할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이나 손해를 심리적 압박 척도로 간주한 것이죠. 만약 어떤 선수가 280번째 스트로크에서 퍼팅에 성공하여 경기를 마쳤을 때 받을 수 있는 상금과, 그 퍼팅에 실패한 후 다음 샷을 성공시켜 281타로 경기를 마쳤을 때의 상금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퍼팅의 가치가 되는 것이죠.
실제 경기에서의 예를 보죠. 2014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Bubba Watson 선수는 마지막 홀에서 5피트 정도의 짧은 퍼팅 만을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 퍼팅이 성공한다면 Watson은 Kevin Stadler와 함께 공동 1위로 올라서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고, 실패한다면 Graham DeLaet과 공동 2위로 대회를 마무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이 걸린 이 퍼팅 가치는 얼마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1위: $1,116,000(약 13억2,413만원)
2위: $669,600(약 7억9,448만원)
3위: $421,600(약 5억22만원)
퍼팅이 성공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최종적으로는 1위 또는 2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우승 확률이 50%라고 가정하면 퍼팅을 성공시켰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상금은 1위와 2위 상금의 중간인 $892,800(약 10억5,930만원)가 되겠죠. 하지만 퍼팅 실패로 Delaet과 함께 공동 2위를 하면 가져갈 상금은 2위와 3위의 중간인 $545,600(약 6억4,735만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퍼팅 가치는 성공과 실패 시 기대 상금의 차이인 $347,200(약 4억 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5피트의 짧은 거리에 4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걸려있는 이 퍼팅을, Watson은 과연 성공시켰을까요?
결국 그는 퍼팅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경기에서 보여준 Watson의 실력이라면 5피트의 퍼팅은 거저먹기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퍼팅으로 인해 결정되는 상금액과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 수많은 갤러리들의 시선 등은 그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이 압박은 결국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 것이죠.
물론, 선수들이 이렇게 복잡한 계산을(그것도 머릿속으로) 하며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상금 구조, 리더 보드에서의 상대적인 나의 위치나 스코어 등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샷에 경기의 성패가 달려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퍼팅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한 심리적 압박의 크기’로 정의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리적 압박이 경기 수행을 얼마나 방해하는가?
이 연구에서의 주요 변수인 퍼팅 가치의 평균은 약 18,900달러 정도였습니다(약 2,240만원). 퍼팅 가치의 최솟값은 0달러이며 최댓값은 2009년 바클레이스에서 우승한 히스 슬로컴의 퍼팅으로 무려 684,000달러(약 8억1,156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종속변수로 사용될 변수인 퍼팅 성공 여부(성공=1, 실패=0의 값을 가지는 변수)의 평균은 60.71%였습니다.
이제 변수가 모두 만들어졌으니 실증 분석을 살펴보겠습니다. 분석 모형은 아래와 같은 조금 복잡한 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의미는 단순합니다. 식의 우변에 있는 여러 변수들이 좌변에 있는 변수인 퍼팅 성공 여부(Made)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변의 여러 변수 중 이 연구에서 가장 주목하는 변수는 앞서 말씀드린 퍼팅 가치(Value)입니다. 그리고 퍼팅 성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변수들(퍼팅 거리, 업힐 여부, 선수 연령 및 전년도 상금 등)도 X와 Z에 포함시켰습니다.
참 복잡한 표이긴 합니다. 먼저 결과표의 (1)~(4)열을 보시겠습니다. 코스 특성이나 선수 특성 등 여러 효과를 감안하고서도 첫줄에 나타나 있는 퍼팅 가치는 음수이며, 통계적으로도 매우 유의합니다. 숫자의 크기는 대략 –0.0018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결과는 어떻게 해석 가능할까요? 만약 퍼팅 가치가 $10,000(약 1,186만원) 상승하면 선수들의 퍼팅 성공률은 0.18%p 감소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퍼팅의 가치가 약 $50,000(약 5,932만원) 상승한다면 선수들의 퍼팅 성공률이 1%p 감소한다는 의미이죠. 즉, 퍼팅의 가치가 높을수록 선수들은 더 큰 심리적 압박에 직면하게 되고, 이러한 압박이 선수의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모형에 포함되는 변수를 조금씩 변형시켜가며 반복적으로 분석해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이를 통계학에서는 강건성(robustness)이 확보되었다고 말합니다).
체력, 기술, 그리고 심리
전통적으로 스포츠 과학 분야에서는 경기력 향상을 위한 체력과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체력, 기술과 함께 스포츠 심리가 경기력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 아니 확고해지는 추세입니다. 이 연구는 대표적인 멘탈 게임인 골프의 방대한 자료를 이용하여 초킹(Choking) 현상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연구로 보입니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아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요. 결국, 관건은 선수들로 하여금 이 심리적 압박을 낮출 수 있도록 ‘별 것 아냐’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만드는 일이겠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