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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un 22. 2016

#13. 미디어에서 배우는 일상 커뮤니케이션의 꿀팁

피차 낯선 타인이지만 서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기

 

 종류도 성격도 천차만별인 문화 콘텐츠들 중 유독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나 대사, 상황 설정 등을 우리는 '클리셰'라 일컫습니다.

 본래는 영화 용어이지만 미디어를 다루는 글에서 폭 넓게 쓰이고 있으니, 저도 흔한 문장을 하나 가져와 보겠습니다.


 기분 나쁘게 쳐다봐서 홧김에 그랬다.


  이거야말로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말.. 허나  어디서 좀 들어 봤다 싶지 않으세요?

 며칠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길에서 마주친 70대 할아버지를 무차별 폭행해 경찰에 연행된 30대 여성이 한 말이랍니다.


<단독> "기분 나쁘게 봤다", 여성이 노인 무자비 폭행 (2016.6.8 YTN)


 글쎄, 살아오면서 강력 범죄가 이렇게 나를 불안하게 했었던 적이 있나?싶은 요즘, 저 말은 비단 언급된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잊을 만하면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니까요.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 행인 폭행 혐의 10대 14명 입건(kbs, 2015.4.20)


부평 패싸움, "왜 기분 나쁘게 쳐다보냐" 얼굴 발로 걷어차고 주먹질(세계일보, 2015.10.14)

 

이렇게,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문장이라는 사실이 안타깝지요. 타인에게 준 무심한 눈길 한 번이 묻지마 폭행을 당할 이유, 심하게는 내 생명을 위협받을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있다니 정말이지 소름이 끼칩니다.


 이런 참에 오늘의 주제,

"우호적으로 응시하기" 를 슬쩍 꺼내놓는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범죄자들 때문에 내가 왜 굳이 표정관리까지 해야 하느냐고! 억울함에 짜증이 나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죠! 이건 뭐, 성범죄를 막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죠.


 허나 이 주제를 "폭력을 피하는 법"의 연장선상에 놓는 대신, 이런 일을 생각해 봅시다.  


 무심코 나와 마주친 타인의 비우호적인 시선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언짢았던 일은 없으신가요?



 

 서점에서 책 몇 권을 사고 바쁘게 길을 가다가 책이 든 종이가방을 떨어뜨렸어요. '쿵' 소리가 납니다.

이런! 의도치 않게 남들의 주의를 사게 되었네요. 서둘러 종이가방을 집어들다가 무심코 눈이 마주친 행인들... 많은 시선들 중에서 호의나 이해의 뜻이 담긴 표정은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무심한 와중 간혹 주의를 주는 듯한 표정이나 '놀랐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짜증 섞인 표정들이 읽힙니다. 소리의 진원지인 나는 신경쓰이게 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뭘 굳이 저렇게 쏘아보듯 보는 건지?'싶어 살짝 언짢은 채, 이내 다시 가던 길을 바삐 걷습니다.

 

 이렇게 덜렁거리는 성격인데다 활발한 세 살배기 남자아이의 엄마인 저는 안타깝게도 남의 시선을 사기에 좋은 조건은 다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조심하려고 해도 가끔 민폐를 유발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이를테면, 길에서 좋아하는 경찰차를 본 아이가 흥분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든지 하는 일 말입니다.


 본래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는 것은 딱히 의식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 반사적인 행동의 발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인간은 생후 3개월만 되어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능력을 얼추 갖추게 되니까요. 그럼 이렇게, 자연스런 반응일 뿐인 내 표정을 의식할 필요가 왜 생기느냐고요?



 

 혹시 우연히 사진에 찍힌 무심한 나의 표정을 본 적이 있나요? 또는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딱딱하고 굳은 표정에 스스로 놀란 적은요?


딱 이런 느낌! 날카롭게 각진 눈썹 위로 미끄럼을 타도 될 것 같네요. 하하

 지난 해 한 토크 프로그램의 녹화를 준비하던 중, 작가 언니가 찍어 보내 준 제 모습이에요. 저렇게 화 나있는 여자가 나라고? 깜짝 놀랐죠. 웬일입니까. 전 늘 표정이 온화한 사람인 줄로 스스로를 생각해 왔는걸요.

비교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방송 후 기사에 실린 사진이에요.

 이렇게 의식한 표정과 그렇지 않은 표정의 차이는 어마어마한데요, 문제는 우리가 아무 감정 없이, 그 저 습관적 혹은 반사적으로 남을 응시할 때 전자의 표정을 보여 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입니다.


저 사진 속 표정으로 남을 바라본다고?

나라도 상처받겠어요!!



 카카오스토리에서 '엄마의 그림책' 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인기 작가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자전거를 탄 막내와 함께,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데려다 주는 한 엄마의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막내가 자전거를 안 타고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하지만 자전거엔 주렁주렁 짐이 매달려 있어
빈 자전거를 운전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난감한 표정의 엄마를 지켜보던 첫째가
"엄마! 내가 자전거 운전할게." 하며
막내의 작은 자전거에 겨우 몸을 넣고 운전을 합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엄마는 한결 몸이 여유로워집니다.
하지만...
"아이구~ 애기 자전거를 형아가 빼앗아 타면 어떻게 해."
"동생은 걸어가고 형아는 편히 가네."
"동생한테 양보하는 형아가 멋진 형아야."
뛰어가는 어린 막내와 동생 자전거를 탄 큰 첫째에게 안타까운 시선들이 꽂힙니다.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자니 에너지 소모같고,
그냥 듣고 지나치자니 첫째가 억울할 것 같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학교 정문 앞에서 손을 흔드는 첫째.
'엄마는 네 맘 다~ 안다'는 표정으로
더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 타인의시선 >이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다는 것
무시하기엔 기분 나쁘고,
되받아치기엔 용기가 부족하고,
지나쳐 버리기엔 잔상이 오래 남는 것.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것보다
왜 쳐다보느냐는 시선 보냄이 더 어이없는 것.
쳐다보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하기보다
왜 쳐다보는 건지 물어보는 눈빛이 황당한 것.
무시해버리라는 주변의 충고엔
결코 무시하지 못한 채 그득히 상처만 받게 되고
즐겨보라는 주변의 충고엔
그냥 즐기기엔 너무나 그들의 시선이 차갑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
타인의 시선을 가만히 살필 때마다
그 속에서 타인을 향한 익숙한 내 시선 또한 찾게 되는 것.

출처 :
http://story.kakao.com/ch/momgrim





  그런가 하면 타인을 향한 따뜻한 눈길이 불러 온 효과를 보여주는 실험을 하나 소개합니다.


 지난 해 6월, 호주의 사회운동단체 ‘국제해방자(The Liberators International)’에서는 이른바 ‘낯선 이와의 눈빛 교환’ 이라는 제목의 캠페인을 벌여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눈을 1분간 따뜻하게 바라보며 감정을 공유하는 이벤트에서, 참가자들은 서서히 미소를 짓거나 맞은편의 사람을 꼭 끌어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참가자도 있고요.

캠페인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훈훈하지요?


 옆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 앞사람을 응시하 일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식이었지만, 실험이 진행되면서 점차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기대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군요. 가히 '온기의 전파'라 부를만 합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공식 영상(전체)


 이렇게 피차 낯선 존재끼리라도, 우연히 마주친 시선에서 무심함과 차가움이 아닌 온화함과 따뜻함을 느끼는 일이 더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다면 혹독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가 나아지는데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자, 그럼 이제는 '밝은 표정 연습'을 한 번 해 봅시다-라고 독자 여러분을 안내하자니, 흠.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군요. 앞서 차가운 표정의 예로 보신 얼굴이 바로 저이니 말입니다. 다만 직업상 경험에 의한 조언을 하나만 드리자면,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짓던 표정도 밝게 변화시켜 내면화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며, 밝은 표정은 (꼭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현장에선, 한 무대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동원됩니다. 각각의 장면들을 스태프들이 일차 편집해 놓으면 담당피디는 추후에(생방송일 때는 모든 화면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는 부조정실에서 촬영과 동시에), 그 중 한 카메라의 화면만을 그때 그때 선택해 연결된 일련의 장면을 완성합니다.

 그러니 출연자는 당연히 말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언제든 화면에 나갈 수 있습니다.(흔히 리액션 샷이라고 하지요.) 이 때 딱히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어두운 얼굴이 선택될 이유가 없죠. 그래서 카메라 앞에선 늘 밝은 표정을 유지해야겠다는 의식을 자연스레 하게 됩니.(내 분량이 많은 것=좋은 것ㅎㅎ) 사람들은 밝은 표정에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실생활에서 방송용 카메라는 우리의 곁에 없지만, 비슷하게 연습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요.


일상 속에서
 거울 속 내 눈과 마주칠 때마다

입꼬리를 살짝만 올려 바라보세요.



 그저 입꼬리를 살짝만!

 집이나 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거울들을 카메라로, 나는 공간 안의 출연자로 가정하고, 카메라(거울)를 응시할 때 지금보다 조금만 더 밝은 표정을 보여준다고 상상하시면 되는 거죠. 안 볼 때조차 미소짓고 있다면 더 효과 만점이겠지만, 지나친 의식은 스트레스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그저 작은 실천을 권하는 것으로 마치려 합니다.




 우리 사회가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를 표정으로 더 많이 표현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나 길에서 마주치며 서로 호의적인 눈빛을 주고받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제가 상습 민폐 유발자라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 (수상한 강한 부정 ㅎㅎ)



끝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흉흉한 작금의 사회 분위기 탓이겠죠?

'호의를 담은 미소로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는데, 그게 신호탄이 되어 나쁜 의도로 내 뒤를 쫒는 남자가 생긴다면 어떡하지?'

흑! 커뮤니케이션은 역시 너무나 어렵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딜레마를 느끼며 마무리를ㅠ.ㅠ


그래도 여러분, 모두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한 기사>


내 눈을 바라 봐(월간 엘르, 2015.10)

1분간 낯선 이와 눈빛 교환...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일보,201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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