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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an 14. 2016

#7. 미디어에서 배우는 일상 언어 꿀팁

쉬울수록 좋은 말하기: 팟캐스트'팟짱'장윤선 기자 with 표창원


또 다시 표창원 씨를 다루게 되는군요. 사실 시간 순서대로라면 이 글이 처음이 되어야 하는데 역전됐습니다. 쓰다 만 글이 이대로 묵은지가 되기 전에 장독에서 꺼내야겠죠?하하하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별안간 표창원씨의 더불어민주당 영입 소식이 각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떠올랐습니다.

표창원씨를 전 경찰대교수이고 '그것이알고싶다'나 뉴스에서 종종 자문하던 분 정도로만 알고 있던 저는


입당 제의를 꾸준히 받아왔다니, 왜지? 정치적 역량이 검증된 분이었는데 나만 몰랐나?
아니면 그저 곧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높은 인지도 때문일까?


그 배경이 궁금해 관련 뉴스를 찾다가 아래의 지면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싶어 팟캐스트까지 찾아 듣게 되었죠.


라디오 팟캐스트 '팟짱'의 진행자 장윤선 기자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함으로써 요즘 아주 핫해진(?) 사람 중 한 명,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지난 달 28일 인터뷰했습니다.


유비쿼터스('언제나, 어디에나 있는' 이라는 뜻의 라틴어) 라디오 시대를 연 팟캐스트에 경의를 표합니다.
학창 시절, 가족들이 들을세라 문을 꼭 닫고 이불마저 뒤집어 쓴 채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눌러 수다를 떨어 대던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 인기 높던 MBC라디오 프로그램 'FM데이트'의 디제이는 무려 고소영 언니!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와 천생 차도녀같은 말투를 흉내내어 오프닝멘트 읽고 사연도 읽고 광고멘트까지 줄줄 읊어대며 북치고 장구쳤던 나만의 추억을, 고스란히 방송으로 옮겨 만인과 공유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니요!
상전벽해(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라는 말은 저에겐 '이불 속 취미가 방송이 되었다'로 해석됩니다만. 때때로 과거와 지금의 우리는 아예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습니다.
바로 딱 이런 카세트 말이에요 ㅎㅎ

능력있는 디제이들의 각축장 팟캐스트 내에서 장윤선 기자의 프로그램은 꾸준히 10위권 안팎에 랭크되는 인기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새해 들어 타이틀이 바뀌었더군요. 저는 방송 당시의 타이틀을 사용하겠습니다.)


우선 인터뷰 내용 전문을 링크합니다.

음성파일이 아닌, 글로 정리한 기사입니다.


장윤선-표창원 인터뷰 전문


궁금증은 쉬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총 30분이 넘는 인터뷰에서 표창원씨가 어떻게 정치권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용상 처음에 나와야 어울릴 것 같은데, 살짝 스치기만 합니다. 첫 3개의 질문 속에 있는 간략한 언급을 보시죠.


  <첫 질문> 어제 새정치민주연합 입당 기자회견을 하셨어요. 지금 이 시점에 꼭 정치를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디에 있으십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 나라 상황이 너무 안좋고요. 많은 분들이 너무 아파하시고, 우리가 1970년대, 1980년대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닌가, 이런 분노도 불만을 많이 표출하고 계신 상황이었고요.   (중략)그래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2> 언제 입당제의를 받으셨어요?

표창원 : 사실 입당 제의를 받은 것은 꽤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였고요. 이미 밝혔지만 그때는 이런 정도까지 아니었고, 굳이 제가 정치를 하지 않아도 정치를 하시는 저보다 나은 매우 유능한 분들이 많으셨고요. 저는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거절을 해 왔고요. 최근에 수락을 하게 된 제안은 2주가 채 안되는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후략)

<질문 3> 2주 전에 굉장히 많은 여러 당으로부터 영입 제안이 있으셨죠. 새누리당에서도 영입 제안은 없으셨습니까.

표창원 : 없었습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정치권에서 주목받던 인물임을 안다고 가정한 문답이지요. 두 번째 질문에서 '꽤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제의를 받았다는 대답에 제가 궁금했던 내용들이 숨어있었을 테지만, 인터뷰는 추가 질문 없이 다음 또 다음 질문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서 '표창원'을 키워드로 검색되는 기사는 총14264건입니다(2016.1.13기준) 이 중 입당한 지난 달 27일 이전의 기사들을 훑어보니, 그는 2002년에 처음으로 자문 역할을 통해 언론사 뉴스에 등단(?)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던 범죄 전문가로서의 자문역 말고도 그가 뉴스에 등장한 일은 많았습니다.

뉴스에서 그가 다루어진 몇몇 사건으로는,
1. 2012년 대선 시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경찰의 즉각 수사를 주장했던 일과, 2.'경찰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임한 일, 3.이듬해 국정원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일  등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각하', 즉 검찰에서 수사할 필요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또한 꾸준히 트위터를 통해 정치적 소신발언을 해 왔으며 경향신문에 2013년 1월부터 주 1회 칼럼을 기재해 오고 있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 글은 망했다. 무지했던 내가 문제가 아닌가! 싶을 만큼 단서가 적지 않군요. 그간 뉴스를 열심히 보지 않은 저를 탓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거꾸로 말하면 이렇게 많은 단서가 있는데 이것들을 정리해서 초반에 밝혀 주었더라면 저와 같은 청취자가 없었을 것을, 여전히 아쉽습니다. 애초에 모르는 청취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그 배경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인과관계를 잘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인터뷰가 아닐까요?

비단 이 인터뷰 뿐 아니라, 표창원씨 이후에 여야에서 앞다투어 영입한 다른 인사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아도 왜 영입 논의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부터 구체적인 배경을 풀어주는 기사는 찾기가 힘듭니다. 영입이 된 사람들의 몇몇 오점들을 가지고 '신상 털기'하는 기사는 흔합니다만.


시사 프로그램도 쉬워야 합니다.

코미디언을 잘 모르던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개그콘서트를 보게 된다면?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무한도전을 어느 날 처음으로 시청한 시청자에게 어떤 배경지식이 필요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각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웃고 즐기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업계 내부의 오류'에  살짝 빠져있다는 생각이 인터뷰를 보고(읽고) 난 저의 생각입니다. 즉, 내부에 있을 때는 모른다는 겁니다.


패션지의 한 짧은 기사를 보시죠.

제가 갖고 있는 2015.12월호 바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폼폼, 스톨, 너드 등 외국어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저 패션에 관심 있는 여잡니다. 그런데 왜 술술 안넘어갈까요...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청년창업) 분야를 다루는 월간지의 한 기사를 보시죠.

'초기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고속 프로토타입 만드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 용어의 난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들의 공통점은, 업계 바깥에 있는 독자에게는 생소해 보이거나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쓰고, 검토하고, 펴내는 사람 모두 내부자들만으로 구성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계 용어나 배경 지식 설명을 자꾸 빼 버리게 되기 때문이지요.

업계 용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업계 특유의 아우라를 강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읽는 대중의 이해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팟짱의 인터뷰도 비슷합니다. 표창원씨의 정치적 성향은 장윤선씨에겐 이미 알고 있던 상식에 속했겠지요. 그래서 업계 밖 사람이 그 부분에 배경 지식이 없을 수도 있으며, 그래서 우선 배경이 궁금할 거란 생각을 미처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인터뷰어로서, 질문의 난이도와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질문을 할 경우에는 재미없고 김빠져 보이며, 반대일 경우에는 많은 시청자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패션, IT 등과 달리 방송 프로그램은 이를 특히 경계하고 쉽게, 무조건 쉽게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그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로 한정되는 위의 예들보다 보편적이어야 하지요.


자, 이제 결론입니다.

이 '낯설게 하기'를 가지고 현실로 와 봅시다. 퇴근하고 지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 나의 일에 대하여 어머니는 묻습니다.(옷을 받아주면서)

그게 뭔데? 그렇게 해서 어떻게 됐는데?


그 때 나도 모르게

아니 그게요,
아 그 설명하기 되게 귀찮네.


라고 말해버리거나, 얼굴에 그런 뜻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적은 없나요?


귀가가 늦은 아내와 집에 먼저 와 있던 남편(혹은 그 반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신경쓰이는 일 있다며. 잘 돼가?

응.
혹은
응. 근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리곤 침묵. 더 물어보기 머쓱해진 배우자도 침묵.


이미 배경 지식을 공유한 회사 사람들이나 학교 친구와는 신나게 대화할 수 있지만, 집에 있는 가족에게는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하므로 말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되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위와 같이, 인터뷰 기사 하나에도 소외감을 느끼는데 하물며 눈 앞의 가족에게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아무리 편한 사이라 해도 이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쌓입니다. 집 안에서 편한 사람과 이뤄지는 대화일지라도  대답하는 쪽이든, 질문하는 쪽이든 다소간 인내심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 다음으로 미루자고 제안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응 엄마. 내가 일단 씻고와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해 줄게요.

회사 일이 잘 안 풀려서 말할수록 기분이 처져서 그래. 며칠이면 나아질 거니까
다른 얘기 해 보자.


배려받는 기분이 들면, 원하는 대답이 아니더라도 대화의 상대방은 기꺼이 상황을 이해해 줍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 어떤 대화라도 우리는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의 참다운 목적은 지식의 공유에 있는 것이 아닌, 대화하는 사람 간의 감정적 소통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많이 웃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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