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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빈 Mar 21. 2016

OSAKA

편견은 잠시 가방에 넣어두고.

예전의 나는 알 수 없는 반일본 정서로 일본 노래를 듣거나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은 엄청난 모순이었는데, 잡다한 사상과 생각을 주워먹다 보니 '일본=나쁘다'가 되었고 그것이 문화적인 요소까지 작용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 고등학교 시절 - 나의 사고는 유아스러웠다. 하지만 지금도 정치나 역사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다. 다만 '일본이 나쁘다'가 아닌, '아닌 건 아니고 옳은 건 옳다'가 되었다. 나름 참 다행이다. 사람은 어떠한 상한선을 정해놓고 살아가면 결국 그  틀 안에서 살게 된다. 육체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도 없으며, 생각의 영역도 확장할 수 없다. 나의 길을 걷되, 틀에 가둬놓지 않는 나의 실질적인 연습은 어쩌면 오사카행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간사이 공항에 착륙하기 전. 

사실 비행기는 그냥 하늘을 나는 고철 덩어리다. 이 무겁고 뚱뚱한 것이 도대체 어떻게 나는 것인지, 어릴 적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창밖을 보며 의아했다. 커가면서 비행기의 원리는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것이었고, 빠르기는 하지만 그만큼 피로감을 주는 것이었다. 결국 그저 교통수단이 되어버린 비행기는 나에게 어떠한 위안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일본은 기대 없이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간사이 (Kansai) 공항에 닿을 무렵 하늘은 잠시나마 아름다운 향을 풍겼다. 나는 내가 걱정한 만큼, 내 마음도 녹아내리길 바랬다. 


지하철 안에서 바라본 사람. 

공항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잘 이동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사진도 그냥 찍는 게 있고 '잘' 찍는 게 있는데, 어딘가를 가는 것도 그러한 듯하다. 숙소가 오사카 시내에서 몇 정 거장 멀지 않았기 때문에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오려 했다. 특히 짧은 일정이었기에, 너무 재촉하지만 않고 '잘' 다니면 충분히 다양하게 구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으로 이동하면서 첫 난관을 맞이했다. 지하철 노선은 수없이 많았고, 지도상에서 한 역 옆에 이름만 다른 또 다른 역이 있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하철 역 안에서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지하철이 나의 행선지로 가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조차 몰랐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멈춰있는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아 밖을 보았을 때, 꼭 나만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지하철을 바라보며.

분명 여기 지하철이나 서울 지하철이나 모두 철로 위를 달리는 비슷하게 생긴, 바퀴 달린 박스들이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로워 보였으나 지하철은 빨랐고, 급하게 다음 정거장으로 서둘러 몸통을 꾸겨 넣는 듯했다. 그래도 일단은 지하철에 탔으니, 마음을 달래보기로 했다. 


신문 읽는 할머니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번 여행에선 흑백 사진을 '고려해서' 많이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즉, 디지털로 사진을 찍으면 모두 컬러로 찍은 후에 편집과 보정을 통해 흑백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즉, 진짜 흑백 사진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짜 흑백사진이다. 카메라의 성능과 접근성이 동시에 높아지다 보니 이제는 아닌 것도 맞는 것이 되었고 예전의 맞던 것은 더더욱 맞는 게 되었다. 예전에는 흑백 필름으로 찍은 사진들이 '진짜'였겠지만, 그것은 그저 그때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진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재밌는 건,  보정할 때 흑백으로 변경해놓고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컬러 사진들이 있다. 그러므로 흑백에 맞을 것 같은 사진은 따로 있는 것이다. 미리 고려하지 않으면 그저 허세만 가득 찬 가짜가 된다. 이번 여행에선 최대한 흑백다운 흑백 사진을 '고려해서' 많이 찍고 싶었다.


마스크 쓴 남자

서울에서 가끔 관광객이 많은 명동이나 다른 곳을 가보면 마스크를 쓴 일본인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이들이 왜 마스크를 쓰는지 그저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성형을 했나? 미세먼지가 싫어서? 누군가 나에게 시원하게 말해주길 바라지만 분명 그 사람의 말 또한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를 왜 쓰는지 알기 전까지 분명 나의 편견은 온전히 사라지지 못할 것 같다. 


벗꽃 아래 자전거들

숙소가 있는 역에 내렸을 때 비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우산을 안 쓰면 분명 젖을 것 같았고, 나는 우산이 없었다. 도대체 숙소는 어딨는지 알 수 없었고 주인이 보내준 약도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역에서 걸어서 2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빙빙  돌아갔다. 가끔 인생에서도 빨리 갈 수 있지만 돌아가는 일이 있다. 그때의 피로함은 어떻게 위로하나 싶다. 


숙소 앞 도로. 자전거 탄 사람들.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비 오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우산은 자전거에 달린 거치대에 기대어 곧게 서있었고, 어떤 우산은 주인의 어깨를 거치대 삼아 꼬꾸라지듯 힘들게 버텼다. 비가 오면 도로가 젖고 물이 튀어서 자전거는 잘 타지 않을 텐데 이 곳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하는  듯했다.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출퇴근 시간에 몰려드는 자전거를 보며, 이 곳의 유명 교통수단이 자전거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이나데라 역 주변은 상당히 조용했다. 역 바로 옆에 숙소가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기차 빼고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저 이곳에  뿌리내려 터전을 지키는 사람들뿐이었다.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

숙소는 방이 세 개 있는 작은 아파트였다. 방 하나는 주인이 수건을 말리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방에는 중국에서 온 듯한 여행객이 머물고 있었다. 집에는 화장실만 있고 샤워 시설은 없었는데, 알고 보니 건물에 있는 공용 샤워시설을 사용해야 했다. 적지 않게 당황했었는데, 밤에 샤워를 하고 나와 시원한 바람이 한번 불면 머리가 꽁꽁 얼 것 같았다. 4월 오사카 저녁의 바람은 결코 따듯하지 않았다. 

비오는 오사카 시내

짐을 풀고 다시 오사카 시내로 나왔다. 사진에서 보면 언어만 다르지 사실 한국과 비슷한 느낌인데, 실제로도 그렇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무딘 시선이 만드는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무조건적인 "여행의 새로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나의 편견은 경계심을 가득하게 했고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게 했다. 더더욱 일본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 같다. 비로소 길가에 있는 라멘집에서 먹은 돼지고기 라멘의 깊은 맛과 접근성을 체감했을 때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조금씩 마음을 녹여나갔다.

오사카의 애매한 야경

야경이라고 하기엔 조금 창피한 야경을 보았다. 오사카의 조명이 밝은 건지 해가 늦게 지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때 햄스터가 들어갈만한 동그란 관람차 통에 들어갔다.  저녁노을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볼 수 없었고 그저 이런 애매한 야경을 보아야 했다. 야경에는 특이한 매력이 있는데, 이 매력은  밤하늘 쏟아지는 별을 볼 때와 흡사하다. 오래 볼 수 없다.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만난 아름다운 노부부.

그렇게  첫날 설렁설렁 오사카의 일부를 맛보았다. 대충 숙소에서 오사카로 어떻게 나가는지도 알았지만, 민영화의 극단화를 보여주는 오사카의 지하철 속에서 나는 2시간 동안 숙소에 오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일찍 방에 가서 맛있는 도시락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결국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오사카 JR선 지하철은 한국 지하철과 상당히 비슷한데 좌석마다 조금씩 더  개인화되어 있다는 게 차이다. 한국도 좌석이 조금 움푹 파여서 혼자만의 자리라는 게 미세하게 느껴지지만, 옆에서 밀치고 오는 아저씨의 다리와 뚱뚱한 엉덩이가 그저 그대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일본 지하철의 좌석은 그 움푹함이 깊은 건지 아니면 옆 좌석과의 높낮이 차이가 더 많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이것은 내 자리라는 게 확실했다.


지하철에 서있었더니 옆에 계신 할머니가 앉으라고  손짓하신다. 나의 말도  안 되는 일본어는 당연히 통할 리가 없었고, 다행히 할머니의 영어와 우리의 손짓 발짓은 짧은 지하철 거리에서 작은 대화를 이어가기 충분했다. 사실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어가 같아도 얼마나 많은 가슴 아픈 말이 오고 가는지 - 얼마나 대화를 하고 싶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편견을 가방에 꾸겨 넣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 맞은편에서 본 소녀

서울에서 가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면 혹시 오늘은 일찍 끝나는 날인지 궁금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들의 학교 생활이 궁금했던 것은 그저 '쉬는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나의 대리만족이었다. 오늘은 오사카성에 갈 계획으로 숙소를 나왔는데, 나의 걸음이 노동처럼 무거워지지 않길 바랬다. 


대머리 아저씨와 횡단보도 

오사카성이 있는 지하철 역에 내렸을 때 신발을 질질 끌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뒤를 돌아 횡단보도를 또 건넜다. 편의점 체인 LAWSON의 빵이 그렇게 맛있단다. 하나를 집어 다시 오사카 성 근처 공원으로 오니 달달하니, 비 온 후의 그 특이하게 평화로운 냄새가 입속에서 배까지 차고 들어오는 것 같다. 


오사카 성 근처 공원. 연인이 많았다.

벚꽃은 정말 희한한 꽃이다. 분홍색이라면 분홍색이고 흰색이라면 흰색인 그런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도 봄만 되면 벚꽃놀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가는데, 나는 항상 벚꽃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궁금했다. 일본의 꽃이라는 대다수의 의견과, 제주도에서 온걸 식민지 때 가져갔다는 말도 있다.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오사카에서 한참 자유로이 낙하하는 이 벚꽃들은 스스로의 근본을 질문하지 않는 듯했다. 그저 이곳에 있음에 충실하고 그저 이곳에서 뿌리내리는 듯한 그 꽃들과 나무들은 오사카와 조화로워 보였다. 

오사카 성 입구

성 입구에서 비로소 이곳이 여행지임을 알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자신을 여행객이라고 과시하는 가장 큰 방법은 카메라가 아닐까. 하나 둘 목에 걸고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 찰칵찰칵 일 할 때마다 나의 근본은 어디서 왔는지, 벚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오사카 성 내부는 박물관이었다.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즐비했는데 어느 정도의 이질감과 어느 정도의 신기함이 묘하게 나를 감쌌다. 마치 성 밖에 물들어가던 초록잎 사이에 있는 연분홍의 벚꽃처럼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한국에 왔을 때 아쉬웠던 것은, 수많은 아름다운 문화재산을 '재산'이 아닌 홍보물로 사용하는 듯했다. 그곳을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제쳐두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사카 성. 색이 없는 나뭇잎들은 빛의 존재와 부재에 더 드러나는 듯 했다.
성 근처 놀이터

어쩌면 가장 내 발길음 잡았던 것은 성이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러 주변을 걷나 만난 놀이터에는 벚꽃들이 땅을 덮고 있었는데 멀리 공놀이 하는 아이와 내 앞에 있던 여인과 자전거는 녹슨 미끄럼틀처럼 이 곳의 시간과 평화를 나타내는 듯했다. 

어느 지하 인도에서 노래하며 노는 어른들.

여행이 노동이라는 말은 공항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밥을 먹으러 가는 것에도 정갈 맛게 담겨있는 듯하다. 어쩌면 노동이라는 것이, 내가 익숙한 무언가가 아닌 모든 것을 포함하는 걸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자리 잡는다. 맛있는 튀김집이 있다 하여 길을 찾아갈 때 노래하며 노는 어른들의 모습이 정겹지만 신기하다는 것 또한 여행의 노동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자전거와 골목길. 

가려던 튀김집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이제 한국 강남이나 홍대에도 있다는 걸 보니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에 있는 많은 해외 브랜드들이 '라이센싱'이라는 교묘한 방법으로 이름을 가져오는 걸 보며 자본주의 속의 필요성과 소비자로서의 아쉬움이 공존한다. 나는 이곳에서 만났던 어느 분위기를 한국에 가져온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게 결국 '라이센싱'이 아닐까. 분명 나의 추억의 전부를 가져다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노력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기억을 되살려 그때의 즐거움을 찾기란 어렵다. 다만 어쩌면 나의 그런 바람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게임일까. 

길을 지나다 기원 같은 곳을 보았다. 무슨 게임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가며 장고했다. 지도상에는 이곳을 지나면 분명 튀김집이 나온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이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담고 싶었다. 

튀김집 직원들

튀김집에 도착했을 때 먹고사는 것도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걸어오는 길은 그저 길일뿐이지만 의도를 갖고 노력을 해서 찾아오는 것이 노동이었다. 그러고 보면, 일상에서도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그냥 내 소화기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그 외에도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어떠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장을 여러 번 찍어 먹지 말라는 테이블 옆 친절한 경고문에 생각지도 않게 짜게 먹게 되었다. 정해진 어떤 것을 우려해서 생긴 욕심이었다. 

화려한 거리

일본이든, 홍콩이든, 대만이든, 어느 정도는 한국과 비슷한 게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 어떠한 새로운 즐거움이 마음을 파고든다. 

아이
아베?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니 어디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아마 선거 포스터가 아닐까. 그 옆에 있는 WE SAY NO 또한 재밌다. 일본의 문화나, 정치나, 그 어떠한 것도 제대로 잘 알지 못하지만 짧게나마 그들의 살고 있는 거리에서, 그들의 고민이 보이는 어떤 걸 보며,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는 것에서 위로를 느낀다. 


어떤 골목. 


사진을 찍다 보면 사람이 사진에 있냐 없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이 없음에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나에게 아름다운 사진의 기준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있냐 없냐는 큰 차이이지만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나아진다거나 아니면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 보면 가끔 텅 빈 골목을 찍게 되는데 골목만큼 사람을 잘 표현하는 것 또한 없다. 특정한 인물은 아니지만, 골목을 보면 그곳의 건물이 보이고, 그 사람들이 타는 자전거가 보이고, 그 사람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보이기도 하고,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곳의 간판을 보며 무언가를 느낀다. 그것은 신비함의 대부분과 어떤 놀라움과 또 다른 생각을 섞어버리곤 하는데 그것만큼 여행의 달콤함은 없는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느낄 때, 그것이 참된 노동의 값어치라 생각한다. 


스시긴 입구

오사카 마지막 밤 스시긴에 들렀다. 시장 속에 파묻힌 이 곳은 나름 내가 자부하는 아지트가 되었다. 다시 가면 그들은 나를 기억할까 모르겠지만 저녁식사 속 꽃 피운 이야기들은 아직까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다. 아마 스시긴은, 오사카에 다시 가야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기 충분한 그런 맛과 이야기를 보장하는 곳이다. 

스시긴에서 만난 단골 손님.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

그렇게 나의 짧은 첫 일본 방문이 끝났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 가는 길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나의 시간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오래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만 남는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피곤하게 앉아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그래, 이곳도 모두가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고, 설렘과 두려움이 있는 그런 사람 사는 곳이구나. 나의 불편한 생각과 일방적인 반감은 꼭 맞는 것이 아녔음을 알았다. 우리는 사상과 어떠한 기준으로 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 개개인이지만, 모두를 일반화해서 증오를 부추길 필요는 없다는 배움을 얻고 간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어떠한 삶을 추구할 때, 사진에서, 영상에서, 그리고 글과 노래에서 내가 원하는 그러한 것들이 묻어나지 않을까. 



오사카 여행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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