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ditor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꽃 Dec 14. 2015

이미 끝난 연애들

기준영, 『연애소설』  짧은 리뷰

소설집 이름부터가 참 묘하다. 매력적이기도 하고 매력적이지 않기도 한 제목이다. 제목에 충실한 소설들이라면 그것도 재미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연애소설 같지 않은 소설들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도 예상에 너무 들어맞는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집을 다 읽고 난 후에 실망을 하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단 예상한 대로, 『연애소설』의 연애소설들은 연애가 시작되는, 혹은 연애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관계가 끝난 이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인간관계는 참으로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부부, 모자, 친척, 형제, 친구, 연인……. 이중 가장 관계의 밀도가 높은 것을 꼽자면 모두들 연인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연인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동반한 관계이기도 하다. 영원을 바라지만 영원해서는 안 되는 것. 영원할 수 없는 것.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연애를 한다.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관계를 이어가면서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기도 전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쩌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7편의 소설들 가운데 집중해서 봤던 작품은 「의식」이다. 제목에서부터 수상한 냄새가 풍기는 작품은 주혜와 영서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서와 주혜는 너무나 외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서로를 갈구했다. 키스를 나누고 하나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지만 정작 둘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 한 무리에 속해 있는 친구들에게도 터놓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관계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소위 ‘미친 짓’이라는 변명 같은 문구를 끌어온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이 ‘의식’을 치르는 그날 밤 주혜의 할머니는 죽었고 영서는 불을 질렀다. 사실상 그들의 관계는 주혜가 미친 짓에 대해 말하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할머니의 죽음은 관계를 확실하게 끝마쳐주는 매듭이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영서와 주혜는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들은 알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에는 수많은 관계들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연애와 맞물려 있는 또 하나의 큰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다. 「아마도 악마가」의 나희와 나희 아버지가 그렇고 「제니」의 안나와 제니가 이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두 가정은 부모 중에서 한쪽이 없는 상태다. 가장 기본적인 관계인 부모와 자식 간의 삼각형이 어그러진채로 시작하는 관계는 보통의 형태일 리 없다. 나희는 아버지에게 어떤 부속품처럼 속해 있고 제니는 안나의 지난날의 과오 혹은 실수와 같은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안나와 나희 아버지가 그녀들에게 보여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제니는 심장을 도려내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었을까.


가끔 글을 쓸 때 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편이다. 특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연애는 어떻게 쓰든 기시감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집을 읽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내가 가슴 따뜻하고 달콤한 봄날의 연애소설 같은 소설은 결코 쓸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겨진 뼈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