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ditor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꽃 Feb 25. 2016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너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함께


을 빙자한 에반게리온 리뷰


글쓰기 작법책을 보다보면 가끔씩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그 경험은 작가에게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지만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다'.  플롯도 있고, 앞으로 어떤 장면이 나와야 하는지도 대충 아는데 작가의 생각과는 달리 이야기 속 인물은 그 의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정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진정한 의미의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저도 취미로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아주 가~아아아아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미리 생각해 놓은 대사도 아닌데 타이핑을 한 후에 '아, 얘라면 정말 이렇게 말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요. 


등장인물은 단순히 이름과 성별, 나이, 간략한 외모만 생각해 놓았다고 해서 구상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의 경우 하나의 인간을 새로 창조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결국 주인공이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가운데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와 함께 등장인물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 간략하게나마 적어보려고 합니다.(레이쨩 좋아한다능 하악하악!)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말씀드립니다. 에반게리온을 아직 보지 않으셨거나 볼 생각이 있으신 분들께는 다소 스포로 보여질 수 있는 부분이 피치 못하게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배경은 2015년(벌써 작년이군요) 신 도쿄시입니다. 작중 '세컨드 임팩트'라고 불리는 대재앙 이후 인류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고 난 이후가 시공간적 배경입니다. 주인공 '이카리 신지'(이하 신지)가 누군가의 부름을 받아 원래 살고 있던 도시에서 신도쿄시로 이동 중인 것이 1화의 시작입니다.  신지는 신도쿄시에 도착하자마자 한 소녀의 환상을 봅니다.

소녀의 환상은 금세 사라집니다. 신지는 '사도'라 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도시를 파괴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픽업한다고 했던 미사토를 기다리고 마침내 그녀와 만납니다. 활발하고 쾌활한 성격의 미사토는 이동하는 동안 신지에게 '아버지의 일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신지의 얼굴은 밝지 못합니다.

애한테 좋은 옷 좀 입혀주지

신지를 이곳에 부른 건 아버지였지만 신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아버지와 대면하게 됩니다. 아주 무시무시한 장소에서 말이죠.

타보고싶다 하지만 난 안돼 나이가 너무 많아

괴상하게 생긴(제가 보기엔 멋지지만!) 로보트 앞에서 아버지는 신지에게 '오랜만이구나' 한 마디 후 바로 용건을 꺼냅니다. 

피도 눈물도 없음 바로 출격 고고씽

3년만에 만났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아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도 아니고 로보트에 타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이 납득이 갈 리 없습니다. 신지는 곧바로 되묻습니다. 그에게는 로보트를 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으니까요.

3년 동안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던 신지에게 아버지에게서 먼저 온 연락은 무엇보다 큰 '계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합니다. 

대답 한 번 간단해서 좋군요

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네가 필요해져서 불렀다'. 즉 저 로보트에 닥치고 타라는 말입니다. 신지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요구하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신지를 이곳으로 데려온 미사토가 묻습니다.

미사토의 질문조차 신지에게 대답이 되지는 못합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너무나도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는 로봇에 타는 것도 싫고, 아버지도 싫습니다. 이대로라면 신지는 결코 에바에 탈 수 없고, 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지는 여기서 에바에 타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할까요.

답은 역시 미소녀지!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아야나미 레이(지만 신지는 아직 이름을 모릅니다). 이런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려하는 레이를 보고 신지는 결심합니다. 레이가 미소녀라서가 아니라, 위에서 보여준 신지의 소심하고도 남을 배려하는(혹은 눈치를 보는)성격을 자극한 것이죠. 


욕망은 마음의 문제지만, 동기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밀고 가는 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과 과거의 경험이 집약된 동기,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평상시에는 장점이지만 하필 이 이야기 속에서는 단점인 복합적 성격이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53쪽


등장인물의 성격과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그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를 잘 넣어야만 소위 '캐붕'이라는 것 없이 이야기가 진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의 존재는 여기에서만 신지를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전설이 되어버린 바로 그분의 등장!

에반게리온은 '싱크로' 시스템을 통해 움직이는 로봇입니다. 로봇과 파일럿의 감각이 공유되어 로봇에 가해지는 충격이 파일럿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신지는 전투 중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트라우마 비슷한 것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가뜩이나 에바를 타기 싫었던 신지에게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집니다. 싸움 도중 여동생이 부상을 당한 반 친구가 '너 때문에 내 동생이 다쳤어!'라며 신지에게 죽빵을 주먹을 날린 거죠. 

신지는 더 이상 에바를 탈 이유가 없습니다. 아픈 것도 견뎌가면서 싸웠는데, 돌아오는 건 반 친구의 주먹과 미사토의 훈계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지가 에바를 타야만 하는 이유 또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다른 반 친구에게서 감사 인사 비슷한 것을 듣기도 하고,

여기서 '그 애'란 레이입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레이를 대신할 사람은 신지뿐이기 때문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14살 짜리에게, 그것도 버려둔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나 많은 불합리한 기관을 뛰쳐나오지 못하는 신지를 보며 우리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합니다. 바로 '공감'의 시작이죠.


어떤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는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매력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그간의 우리 용어로 치자면, 생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의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이 공감의 감정 없이는 작가는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어렵고, 독자는 한 페이지를 읽기 어렵다.
-위의 책, 69쪽.


언제 뛰쳐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신지를 붙잡아 두는 가장 큰 존재는 뭐니뭐니해도 레이입니다.  에바에 처음 탑승하게 한 것이 그녀인만큼 신지는 레이에게 호기심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레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신지에게 동기를 불어넣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자, 에반게리온 내용의 중요한 복선이 깔린 장면입니다.

'엄마'같다는 느낌은 신지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동기입니다. 신지에게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없기 때문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나 향수를 품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이후 레이와의 대화와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신지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지만 이 글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이러다가 정말 에반게리온 리뷰가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는 이미 늦었나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 몰입할 수 있게 하고, 주인공의 행동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에피소드의 구성은 이런 식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신지를 에바에 태우더라도 그것이 신지의 성격, 가치관에 어긋나는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요).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주인공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만 합니다. 또 작가가 가진 많은 정보들을 독자들에게 적절하게 보여주고 공감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독자가 감정이입하는 대상은 다른 등장인물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더 많이 보여주는 쪽이다.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이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게 뭔가? 그건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독자가 '나/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면, 소설의 페이지는 정신없이 넘어가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을 읽는 경험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경험과 닮아 있다.
-위의 책, 71쪽.


사랑에 빠진 독자만큼 작품을 열렬히 읽어주는 이는 없을 겁니다. 자기 자식과도 같은 등장인물들을 사랑하지 않는 작가 또한 없을 테지요. 가끔 웹소설을 보다보면 '캐붕'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댓글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소중한 캐릭터들이 '캐붕'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 물론 저는 신지보다 레이를 더 좋아합니다> < 레이쨩 하악하악!!!!

매거진의 이전글 유행과 취향, 그 사이 어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