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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꽃 Jan 29. 2016

유행과 취향, 그 사이 어딘가

고뇌일기 -1


얼마 전 제가 담당하고 있는 작가님께 메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중복연재를 하고 계셨는데, 그곳에서 유료화를 진행하시자마자 독자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날아가 버리셨다고 하시더군요. 속상한 일이지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가장 큰 이유는 유료화겠지만요-작가님께서는 글을 조금 더 파격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작가님께 답장을 드리기 전 꽤 긴 시간을 망설였죠.


업무를 하기 위해서 많은 웹소설 사이트들을 돌아다니고, 거기 연재된 작품들을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유행'이라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가령 판타지 소설 쪽에서는 한동안 '레이드물'과 '환생물'이 큰 인기였지요(지금도 환생물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환생물이 유행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쓰려는 건 아니니 넘어갈까요. 어쨌든 이런 식으로 각 장르마다 보이지 않는 유행이라는 게 존재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 유행이라는 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면 일종의 법칙으로까지 발전하죠.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꼭 재벌2세가 등장하는 것처럼요. 


아, 물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는 재벌2세가 나오는 드라마도 아주 재미있게 봅니다(TV에서 옛날 드라마들을 재방송해주는데 <주군의 태양>에 나오는 소지섭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소재가 유행이라는 건 결국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지요. 환생이라는 것도 어쩌면,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넘어간다고 했는데 결국 써버렸네요).


하지만 유행이라는 건 달리 생각해보면 폭력이기도 합니다. 유행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되지요. 그게 아무리 괜찮은 글이라고 해도, 아무리 좋은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면, 아니 클릭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연재'되는 작품들은 독자들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어떤 부분이 있으니까요. 지금도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작품이 얼마나 많을지 모릅니다. 


유행을 감지하고 그 유행에 맞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굉장한 재능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유행에만 맞춰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겠죠. 하지만 유행하고 있는 소재를 쓰지 않으면 작품의 노출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유행에 부합한다면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쓰면 됩니다. 그게 아닐 때가 문제죠. 그리고 언제나 전 후자에 가까운 쪽이었습니다.


제가 작가님께 드린 답은 결국 이런 식이었습니다. "작가님이 쓰시고 싶은 이야기를 쓰시고 싶으신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글을 쓰시고 싶으신지 생각해보세요." 이런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답변을 쓰면서 저는 한편 두려웠습니다. '작가님이 글을 뜯어 고치신다고 하시면 어쩌지? 덜덜' 제가 반한 그 작가님의 글은 섬세하고 달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거든요.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작가님은 쓰시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겠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후후, 계획대로.


작가님은 답을 내리셨지만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독자였다면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것도 읽고, 저것도 읽고(개이득!) 텍스트의 천국에 빠져들었겠지만...편집자로서 유행과 취향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작가님들도 마찬가지겠죠?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오로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글을 읽고 고민하는 행위가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부디, 제가 담당하는 작가님들이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무책임한 담당자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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