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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꽃 Dec 31. 2015

떠나라, 그러면 변할 것이다

웹소설- 마징가z, 「순결한 69」 리뷰


새해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심삼일 아니 작심한시간에 지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부질없는 새해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기다. 매년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이 슬픈 계획 짜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역시 여행이다. 사실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고 있다. 신년 계획을 적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길 위로 내모는가. 행선지가 다른 것처럼 그들이 길을 떠나는 이유도 각자 다를 것이다.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반대로 설렘 반 걱정 반이 섞인 신혼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자신의 한계를 체험해보고자 극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오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여행을 택할 수도 있다.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그리고 길 위에서 겪는 경험 또한 같을 수 없겠지만 모든 사람의 여행에는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다. 여행을 마친 후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가 아니라는 것. 길 위에서 발견하는 것들 때문에-혹은 덕분에- ‘나’라는 존재는 여행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여행은 그리하여 책 읽기와 닮은 지점이 많다. 


주인공이 집을 떠나 길 위를 헤매며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영화를 흔히 ‘로드 무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서사’의 구조를 가진 형태의 작품에서라면 자주 등장하는 단골 구조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길 위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혹은 살리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벌인다. 그러나 결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서 ‘나’를 찾는 일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그가 찾는 ‘나’의 모습을 보며 독자 자신을 찾기도 한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찾는 중이라-아쉽게도 사춘기는 이미 지났다-이런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순결한 69」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전면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주인공 맹붕재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사회에서 도태된 인간이다. 그는 ‘치열하게 살았’지만 아무래도 성공하기에는 운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무겁고 커다란 몸을 이끌고 그가 향한 곳은 69번 국도(아마 이 부분에서 실망한 독자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묘한 음란함(!)을 멋지게 배반하고 있기 때문에. 설마 나만 음란함을 기대했나?). 여자친구가 추천해준 국도는 붕재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적당한 자살 여행 장소’도 포스팅할 인간들”이 추천한 국도답게 아무것도 없다. 붕재의 신랄한 입담에 빠져들어 따라가는 69번 국도 위에는, 맙소사. 색정적인 매력을 풍기는 여인도, 바바리맨도 아닌(아직 음란마귀가 내 속에서 떠나지 않았나보다)한 남자아이가 오리 짐볼을 타고 등장한다. 아이의 이름은 배대봉.


대봉이의 등장은 독자로 하여금 엄청난 혼란을 느끼게 한다. 개연성을 고물상에 팔아먹은 이 전개는 뭐지?! 하는 기분이 들면서 이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붕재와 대봉이가 69번 국도 위에서 가지는 만남은 대부분 이런 황당무계한 느낌으로 전개된다. 심지어는 간첩까지 만나니까. 붕재와 대봉이가 그들과 나누는 대화도 일상적인 대화는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너는 도대체……. 뭐하니? 아니 누구니? 엄마나 아빠는 안 계시니?”
“음……. 제 이름은 대봉이에요. 배대봉. 아빠한테 가는 거예요. 아빠가 4살 때 6살이 되면 이 오리를 타고 찾아오라고 했어요. 아저씨도 우리 아빠 알아요?”
(중략)
“……. 아빠 이름이 뭔데?”
“‘배지타’요. 아저씨도 우리 아빠 알아요?”     


이런 식이다. “카카로트는 내가 죽인다!”라고 외치는 츤데레의 대명사 베지터가 아빠라니? (노파심에 말해두지만 대봉이의 머리카락은 보라색이 아니다) 하지만 우연과 우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우연만이 전부는 아님을 깨닫게 된다. 모든 인물들은 우연인 듯 필연으로 이어져 있다.


소설의 시작점을 끌어나가는 것은 붕재가 아닌 대봉이다. 대봉이는 과연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이끌려 소설을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붕재는 몇 번이나 대봉이를 버리려고 하지만(나같으면 진작 버렸다)고비에 마주할 때마다 붕재는 대봉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바로 그 위로. 여행을 하는 동안 붕재는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혔던, 그러나 도무지 생각나지 않던 문제들을 기억해낸다. 즉 결국 이것은 대봉이가 아빠를 찾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붕재가 ‘나’를 찾는 이야기가 된다. 붕재의 사정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를 더 이상 ‘답답하고 느려 터진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순결한 69」는 여러 가지 재미가 있는 웹소설이다. 어이없는 전개에 헛웃음이 터지다가도 이어지는 붕재의 독백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뭉근해진다. 현실의 나는 붕재와는 공통점이 조금도 없지만, 여정이 계속되면서 점차 풀려나가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 짐볼을 탄 아이와 커다란 대못처럼 생긴 남자가 걸어가는 순결한 69번 국도.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가 취향에 맞는다면 즐겁게, 또한 무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무미건조한 아스팔트 위에서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저 몸을 혹사하며 무의식을 떠다니고 싶었던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뭔가를 얻으려 했었던 것 같은데 도리어 뭔가를 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얻든, 버리든. 그 여행은 분명 떠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변화시켜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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