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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들의 예찬 Mar 29. 2016

씁쓸한 미소

좀 더 열심히!

모(某) 부장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요즘 보기 드물게 성실한 사람이다.

얼굴에 "성실"이라는 땀방울이 사시사철 맺혀있다.

책임감 또한 투철해서 매일같이 야근도 불사하고 맡겨진 업무에 대해 최선을 다해 처리한다.

대부분의 직장인 들이 그와 비슷하겠지만 내가 지금껏 봐온 직장인 중 단연 최고라 말할 수 있다.

그는 40대 후반의 회사원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너무 열심히 살아온 탓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하늘이 인연을 허락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회사의 모든 부동산을 관리하고 행사에 필요한 비품들을 직접 챙긴다.(사실 밑에 부릴 수 있는 직원이 하나도 없다)

밑에 직원 하나 없이 모든 일을 A부터 Z까지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 군소리 없이 시킨 일을 꾸역꾸역 처리하니 Dummy 같은 업무까지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하지만 나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아니면 아마 감당할 수 없겠지", "나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있을 거야!"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안주삼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업무로드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묵묵히 불평 없이 성실히 해내는 모습이 위에서는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40 후반의 나이에 밑에 직원 하나 없이 슈퍼맨을 자처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자처한다기 보단 눈치를 보는 것이다.

본인도 밑에 직원을 두고 싶겠지만 이 정도 업무는 능히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입에 재갈을 무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

그 또한 이러한 현실을 알지만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까닭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이다.

만약 위에서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40대 후반이라는 나이 때문에 밥벌이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 비열한 것은 이러한 상황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위,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철저히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꾸질꾸질한 잔머리에 불과하다.  

그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연회장

회사 건물을 관리하는 그에게 행사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행사에 필요한 음식과 비품을 준비해야만 하고 일정을 체크하고 귀빈에게 쌀 한톨 만한 불편함도 느낄 수 없도록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침 회사 높은 분과 협력사 대표와 임원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저녁 무렵에 시작되는 연회를 위해 오전부터 세팅 작업에 들어갔다.

그 누구도 도와줄 생각을 하거나 도와달라고 요청도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묵묵히 무거운 잡짐을 나르며 혼자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귀빈 중 그와 동갑인 임원, 그 보다 한 살 많은 부장도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는 그들을 위해 다양한 물품과 음식,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동선과 원활한 행사 진행 등 정성스레 시중을 들어야만 한다.

그의 업무과 그를 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참석자(대략 열명이 좀 넘는 귀빈) 중 한참 나이 어린 사람도 있고 동갑, 한 살 많은 사람 등이 극진한 대접을 받기 위해 모이는 자리이다.  

그는 그들을 위해 묵묵히 시중을 들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요즘 나이에 비례해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시대도 아니고 그들 나름대로 유산이 많거나 우여곡절 끝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본 베테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만큼의 대접이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럼 과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일까?

그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온 그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그 누군가는 만찬을 즐기고 그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시중든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맞이했을 그에게 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허락된 것인가?


1. 학벌? No!
    그 보다 학벌이 낮은 사람을 위해 시중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벌은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없다.
2. 피나는 노력? No!
    그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온
    표본이다.
3. 돈? Yes or No
    뭐라 단언할 수 없지만 돈 또는 사회적 지위가  
    없다면 그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돈 또한
    비례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기도 하다.

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돈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고 맘대로 이용해서 부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없으면 힘이 없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것이 수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한다" 가 아니라
"무엇을 열심히 할 것인가?"이다.

 

적당히 고통받고 있다면 고정관념을 버리고 모든 가능성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답이 없고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고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꿈이 있는 자가 꿈이 없는 자를 끌고 다니고
꿈이 없는 자가 꿈이 있는 자를 위해 일한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꿈이 있는 자에 의해 만들어져 왔기에.    


오늘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빌딩을 바라보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에 씁쓸한 미소를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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