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할 때의 기분과 포장지 속의 진실을 알아차린 후 상충되는 심리적 괴리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이렇게 그려나가겠지?라는 위안이 조금씩 "?"으로 뒤바뀌는 경계선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 심리적 포지션의 변화가 마치 세렝게티의 카멜레온 표정과 닮아있었다.
결국 생계(生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더 짓누르는 순간 자존감에 스크레치가 나고 만다.
그놈의생계(生計)때문에 마음속이 너덜너덜 헤지고 꿰매어 이젠 분리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서야 사직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혹시 모르는 환경과 상황이 내 맘속에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내심 관망을 택해보기도 하지만 이미 스크래치가 난 이상 상처부위에 자그마한 충격이나 스치기만 해도 심리적 변화의 모멘텀을 전혀 찾기 힘들어진다.
그래...... 합리적인 이성을 넘어선 동물적인 감각(Animal Sprit)으로 마음을 다시 추슬러본다.
그렇게 소리 없는 총성은 상대의 심장을 관통했다.
서로를 위해 서로에게 더 심각한 대미지(Damage)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택하기로 한다.
모든 것이 평화를 되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기나긴 터널과 꿈속에서 헤매다가 일어난 기분이 든다.
이제는 원하는 것을 얻은 자는 더 이상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되어 힘이 빠져나간다.
더 이상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그렇게 막은 서서히 내려간다.
그 간의 생활이 어떠했든 간에. 출근 알람 소리를 듣고 솜이불에 고개를 파묻고 간절히 연차를 내고 싶었던 내적 갈등의 겨울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매번 다양하게 찾아오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불안감과 당혹감 속에서도 업무로 인해 아프고 업무로 인해 즐거웠을 때도 불합리함을 보고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부푼 자신감이 충만했을 때도 첫 직장생활 대리 시절 직장을 떠나면 진정한 남이 된다는 옛 직장 상사의 말을 의심하면서도 그것이 진정 사실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과장 시절에도 이제 그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각인되었던 차장 시절에도 현실의 무게감에 그냥 관계가 귀찮아지고 무감각해졌던 부장 시절에도
석양이 울고 있는 저녁시간 옥상 끝 한 줄기 내뿜은 담배연기가 순간 맘속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던 그 순간에도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거 같다.
보이지만 보지 못했고
들렸지만 듣지 못했고
다가왔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 들을 보고, 듣고, 느꼈던 그날의 기억들.
나는 오늘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질주하는 키보드의 자판소리 대신에
평소 귀갓길에서 듣지 못했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기쁨의 함성 소리를 들었고
한치의 여유 공간도 없이 부대끼며 출퇴근했던 9호선 지하철의 여유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었고
마을버스 운전기사의 가족과 함께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기분 좋은 목소리도 들었고
엄마와 함께 손잡고 문구점 앞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애교 섞인 목소리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