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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belbyme Sep 08. 2023

카페에서 자주 듣는 슬픈 이야기

카페에 책을 읽거나 일을 하러 자주 간다. 책을 읽으려면 사람이 없는 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 한적한 시간은 보통 오전 9시 이후 12시 전이다. 이 한가한 시간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한가한 시간이다. 그 사람들은 주부들이다. 남편은 직장에 갔고, 아이는 학교에 갔다. 아침도 먹고, 집안일도 조금 끝나는 시간이 전업주부에게 또한 여유가 있는 시간이다. 혼자 카페에 오시는 분도 종종 있지만 아무래도 2~4명 정도 모여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름 큰 즐거움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이어서 아주머니 이야기가 선명하게 잘 들린다. 정확하게 숫자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의도치 않게 대화를 들었던 횟수가 100번은 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사실은 전혀 듣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듣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개인적인 체험이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100번을 넘게 듣고, 그 대화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면 내 의견을 개인적인 소견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0명을 인터뷰하고 나온 결론이라 객관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주머니가 하는 대화는 크게 2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이 어떤 일을 했다던가, 여기서 일은 꼭 직업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어떤 경향이 있다던가 하는 내용이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길게 하지는 않지만 거의 빠지지 않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자녀에 대한 이야기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는 길이와 횟수에서 압도적이다. 자녀에 대한 대화 내용을 다시 2가지로 분류하면 그 아이의 성격이나 행동에 관한 내용과 아이의 학업에 대한 내용이다. 아무래도 아이 학업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자주 오래 대화의 내용을 차지한다. 어떤 아주머니는 자녀 학습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아는 분도 있다. 이과 학부모라면 실제 미적분을 할 수는 없지만 그 개념을 다른 아주머니에게 큰 그림에서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자녀 학습과 진로에 대한 고민과 열정은 듣는 사람이 감탄할 정도이다. 이런 깊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아주머니의 결론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중립적인 결론으로 끝날 때가 많다.


100번 정도 이런 비슷한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슬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슬퍼지는 이유는 주어가 없어져서이다. 아주머니의 대화에는 주어 '나'가 빠져있다. '나는 이런 것을 했어' 아니면 '나는 이런 것을 원해' 등 '나'로 시작하는 대화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아주머니 대화의 주어는 '우리 애는', '그 양반은' 제삼자로 가득하다. 아주머니들은 자아를 잃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자아는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자아를 잃어버리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한다. 콘택트렌즈가 없어서 잘 안 보이면 안경이라도 써서 봐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 대체가 되어야 한다. 대화에서 '나'가 사라진 아주머니가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 아이와 남편의 삶이다. 아이의 학습과 그 발전 혹은 남편의 사회적 성공이 자신의 발전을 대체한다. 마치 온라인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과 자기 자신의 능력의 상승을 비슷하게 여기는 게이머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대체재가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부작용은 공허함이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성취감이 없다. 성취감의 대용으로 사용했던 아이는 성장해서 떠나간다. 게임회사가 망해서 게임 속 캐릭터가 사라져 버린 게이머의 마음과 같다. 게이머는 모든 것을 날렸지만 최소한 다른 게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해서 떠나버린 자녀는 대체 불가능이다.


'나'라는 주어가 빠진 그들의 대화를 들을 때 나는 슬픔을 한 번 느낀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대체제가 떠날 때 느낄 공허함을 상상하면 나는 또 한 번 울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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