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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byme
Dec 06. 2023
나는 왜 형편없는 고용주인가?
말과 사물: 미셀 푸코
내 브런치에서 보는 것처럼 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 책을 읽으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나미야의 잡화점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집중하지 않고 읽을 수 있지만 지금 끝낸 말과 사물은 초집중을 해서 오래 읽어야 진도가 나간다. 두 번째는 근심이다. 근심이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근심이 크면 생각보다 책에 집중하기 어렵다.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고민된 것이 어떻게 내 시간을 확보하면서 돈(근심)을 벌 수 있는가?이었다. 결국 그나마 찾은 해결책이 시스템이다. 회사에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 안에 사람을 넣으면 회사는 그럭저럭 돌아간다. 물론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고, 시간이 걸리고, 매번 새롭다. 하지만 일단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시스템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법인'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사람처럼 행동한다.
시스템 안에 사람을 넣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경제학에서 사람이 변수가 된 것은 푸코의 말과 사물에 따르면 그렇게 오래된 현상이 아니다. 경제학에 사람이 없다는 말부터 설명을 하겠다. 16세기 푸코에 따르면 재현(representation)의 시대에 경제학은 부의 재현에 초점을 두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경제학의 화두는 교환에 있었다. A와 B가 교환되기 위해서는 A와 B가 가치로 재현되어야 한다. 재현된 가치는 욕망이고, 그 욕망의 교환을 연구하는 것이 16세기 경제학이다. 그런데 갑자기 18세기에 경제학이 사람에 초점을 둔다. 생산을 위한 많은 요소가 있지만, 그중 핵심은 사람의 노동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16세기 경제학에는 생명이 없었지만 18세기 경제학에는 임박한 죽음을 모면하면서 살아가는 생명이 들어간다. 경제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유한한 시간이 변수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가정 하에 경제학이 발전했다. 푸코의 연구가 주장하는 것은 18세기부터 노동력이 있어야만 재화가 생산될 수 있다가 아니다. 11세기에도 13세기에도 사람이 있어야만 부가 생산되었다. 푸코는 18세기 경제학이 그동안 관심이 없던 생명을 경제학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각각의 성향이 다른 사람을 시스템 안으로 부품처럼 넣는 행위에 대해 늘 껄끄럽게 생각했다. 거기다 그 공식 안에 얼만 안 되는 금액으로 유한한 사람의 시간을 사는 사실도 부담스럽다.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도 인간의 시간을 사지 않는 사업을 하면 좋겠는데 18세기 교육과 사고관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