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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메이커스 Sep 22. 2020

한 잔으로 즐기는 남미

"커피는 맛과 향을 소비하는 식품이에요. 그 어떤 음식만큼이나 재료의 품질과 신선도가 중요하죠."


1명당 연간 512잔. 한국인이 밥보다 많이 먹는 것. 바로 커피다. 한때 서양에서 온 신문물이자 모던보이의 상징이던 커피는 이제 일상이 돼 떼어낼 수 없어졌다. 오죽하면 술보다 끊기 힘든 게 커피라는 말이 있을까.


스타벅스 등 외국계 대형 커피전문점의 지배력은 아직도 굳건하지만, 국내 독립 커피 브랜드들도 하나둘 두각을 드러내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이들은 직접 생두를 선별하고 수입하며 그들만의 공식으로 볶은 뒤 추출한다. 한국 커피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주축이다.


작은 동네 카페로 시작해 이제는 커피 원두 전문 공급사이자 RTD(ready to drink) 제품까지 생산해내고 있는 카페도라도 그중 하나다. 커피 콩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스페셜티 생두를 골라 원두가 가장 맛있는 골든타임 내 공급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는 카페도라의 김성현 대표. 그에게 커피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커피 사업은 많은 사람의 로망이에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김성현 대표(이하 김):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 마셔?” 2007년 봄 멕시코에서 생활하던 지인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같이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그분을 보고 제가 했던 말이에요. 사실 전 제가 이렇게 커피에 빠지게 될 줄 몰랐어요. 원래는 휴대폰 액세서리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일이 있은 후 묘하게 궁금하더라고요. 쓰기만 하고 양도 적은 음료를 밥값과 맞먹는 돈을 주고 사 먹다니. 분명히 매력이 있으니까 그러는 걸 텐데 전 하나도 모르겠으니까요. 그래서 무작정 커피 학원에 갔어요. 근데 제가 커피를 배운다고 하니까 멕시코에서 온 지인이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를 아냐고 묻더라고요. 서 대표는 세계 로스팅 챔피언십을 2연패 한 분이라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죠. 근데 알고 보니 그분의 사촌이었어요.


그렇게 서 대표를 만나게 됐고, 1년 반가량을 서 대표 아래서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해서 많이 태워 보기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커피를 제대로 알게 됐고,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죠.



Q. 커피를 사업 아이템으로 봤을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김: 커피는 굉장히 주관적이에요. 맛과 향을 소비하니까요. 근데 주관적이라는 말은 곧 답이 없다는 말과도 같죠. 이 때문에 자신만의 색, 즉 '나만의 맛'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엔 운 좋게 서 대표를 만나 이 시기를 짧게 가져갈 수 있었어요. 근데 로스팅부터 커피 추출까지 직접 한다고 하면 이 과정에 드는 시간을 5년 정도로 잡습니다. 수련의 시간이 엄청 길죠. 그래서 이 과정에서 포기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나만의 맛’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중요한 요소예요. 소비자 입장에서 ‘맛’은 구매 결정의 이유니까요. 그래서 카페도라는 잘못 로스팅되거나 맛이 다른 원두는 전량 폐기합니다. 직원이나 주변 지인에게도 절대 나눠주지 않고 다 버려요. 한번은 원두 50kg을 다 버린 적도 있어요. 제가 볶던 매뉴얼 대로 다른 직원이 볶았는데 맛이 미묘하게 달랐거든요. “여기 커피 맛이 변했네”라는 말은 커피 하는 사람에겐 곧 사형선고라고 생각해요.



Q. 생두부터 좋은 제품을 쓰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생두를 구하는 카페도라만의 비법이 있을까요?


김: 처음 커피를 시작할 땐, 한국에 원두 자체가 많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중남미로 직접 원두를 수입하러 다녔죠. 우리나라에서 커피 판매의 성수기는 봄부터 가을까지인데요, 실제 산지에서 커피 수확 기간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예요. 이때 가면 가장 싱싱한 원두를 보고 구매할 수 있죠.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열심히 국내에서 커피를 판매하고, 늦가을이 되면 원두를 사러 다녔어요. 일단 멕시코에 내린 다음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과테말라가 있고 온두라스, 니콰라가가 나오죠. 또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 국가들이 나와요. 2달 정도를 계획하고 이들 나라를 쭉 둘러보며 최상의 생두를 골라 계약합니다.


생두에도 등급이 있어요. 카페도라는 가장 높은 등급인 스페셜티 생두만 사용합니다. 생두 등급은 무작위 샘플링을 통해 콩의 지름, 결점두의 양, 전체 수분 함량 등을 보고 책정돼요. 또 스페셜티 생두는 향과 맛, 산미도 등에서 하나 이상의 독특한 특성이 있어야 하죠. 이는 보통 기후나 토양에 의해 결정됩니다. 즉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맛과 향은 중남미의 태양과 바람, 흙이 빚어낸 것들이죠.



Q. 원두 여행이라니, 굉장히 낭만적이네요.


김: 야생으로 떠나는 해외 출장이랄까요. 커피가 재배되는 중남미는 굉장히 덥고 습해요. 또 농장들은 대부분 고산지대에 있죠. 비행기를 탈 때까지는 좋은데, 현지에 내리면 좀 막막해집니다.


2012년에는 과테말라 산 중턱에 3시간을 갇혀 있었던 적이 있어요. 지프차를 타고 농장으로 가고 있었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졌죠. 그러다 차가 웅덩이 같은 곳에 빠져버렸어요.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 내려서 밀어도 보고 나무로 지지대를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비가 장대처럼 오다 보니 빠져나오질 못하더라고요. 그 뒤에 저희를 구하러 온 차까지 연이어 빠지는 바람에 비가 그치고 장비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산지에 가면 커피 농부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농부들은 같아요. 진심을 다해 내 자식처럼 농작물을 키우죠. 빠르면 몇 분 내에 마셔버리는 커피지만, 그 한 잔에는 질 좋은 원두를 생산하기 위한 지구 반대편 농부의 진심과 이를 볶아 좋은 맛과 향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로스터의 진심이 모두 담겨있죠.



Q. 카페도라 커피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김: 스페셜티 생두를 로스팅한 뒤 골든타임 내 원두를 제공하는 것이 카페도라의 철칙입니다. 원두라고 하면, 로스팅한 직후가 가장 신선하고 맛있을 거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원두는 로스팅 후 2~3일 뒤, 즉 가스를 빼는 디게싱 작업이 끝난 뒤에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죠. 그래서 로스팅 후 3~15일 사이를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데, 카페도라는 이 골든타임 내 원두만을 판매하고 사용합니다.


Q. 최근 가장 많이 판매되는 ‘달님4321’ 원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김: 이 제품은 두 가지 이상의 원두를 혼합해 만들어내는 ‘블렌딩’ 원두인데요, 4321의 숫자가 뜻하는 건 커피 산지별 비율입니다. 콜롬비아 40%, 브라질 30%, 에티오피아 20%, 과테말라 10%죠. 이 비율은 원래 로스팅하는 분들 사이 오래전부터 기본 공식과도 같은 배합 비율이에요. 뛰어난 밸런스가 특징이죠.



Q. 커피는 한국인에게 뗄 수 없는 음료가 된 것 같아요. 한국 커피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김: 우리나라의 커피사랑은 어마어마하죠. 밥보다 많이 먹는 게 커피니까요. 고종 황제가 커피를 마셨다고 하지만, 개방 이후에 커피가 도입됐다고 보면 굉장히 빠르게 일상에 침투했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급격히 성장하면서 콜라나 사이다처럼 보편적인 음료가 됐죠. 이제는 '홈 카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전문점뿐만 아니라 집에서 자신만의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늘었고요.


재밌는 포인트는 좋아하는 맛이 다르다는 거예요. 외국 커피는 대부분 쓴맛이 주류입니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도 탄 맛과 쓴맛이 강하잖아요. 여행을 다녀봐도 대부분 이런 맛들의 커피를 많이 맛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이 커피에도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Q.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하는 커피가 주류지만 드립 커피를 즐기는 분도 많아졌어요.


김: 홈 카페 문화 확산과도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에스프레소의 경우 빠르게 추출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커피 머신의 성능이 커피 맛에 영향을 많이 줘요. 하지만 집에서는 고가의 머신을 놓기 힘들죠. 반면 드립커피는 추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추출 기구의 값이 저렴하죠. 또 추출자의 숙련도나 추출 방법에 따라 같은 원두라도 맛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커피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찾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내릴 수 있어 '나만의 맛'을 만들 수 있거든요.



Q. 커피 사업을 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어떨 때 성장했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김: 벌써 그렇게 됐네요. 처음에는 동네 카페로 시작해서 직접 로스팅을 하고, 이제는 RTD 제품까지 만들고 있어요. 이 모든 게 하나씩 성장해 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RTD 제품의 생산은 카페도라에게는 큰 도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추출 없이 그대로 마시기만 하면 된다는 편리함을 강점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사업적으로는 대량 생산과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는 그동안 카페도라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고객 경험을 차분하게 쌓아온 것이 밑바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온라인 사업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게는 모험이었거든요. 커피는 맛과 향을 파는 건데, 온라인에서는 향을 맡을 수도 맛을 볼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보는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기 힘든 것 같아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번 경험하게 되면 재구매가 잘 일어난다는 장점도 있어요. 품질만 담보된다면 오프라인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편하니까요. 기존에도 품질에 대해서는 고집스럽게 지켜왔지만, 온라인 커머스를 경험하면서 이런 점을 더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진부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기업가에게 진심이란 품질이니까요.



Q. 컨설팅도 하시는 거로 알고 있어요.


김: 한국 커피 시장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국내외 대형 프랜차이즈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로컬 브랜드들도 생겨나고 있고, 대학에도 커피 관련 학과가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아직도 표준화되거나 체계화된 것들이 아주 적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사업자들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게 현실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한국 커피 2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컨설팅은 커피 2세대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의 연장선입니다. 제가 10년 넘게 커피 사업을 하며 겪은 혼란을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은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죠. 사업 초기에 좌절을 연속적으로 겪으면 커피의 질과 나만의 색보다는 하루하루 돈을 버는 데 더 신경 쓸 수밖에 없거든요.


제 경험을 나눠 개인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면 한국 커피 시장의 성숙도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커피를 좋아해 준 분들과 제게 커피를 가르쳐 준 분께 보답하고 한국 커피 생태계에 기여하는 제 방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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