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어야하는 이유
이른 새벽의 뉴욕 5번가. 아직 잠들어 있는 화려한 거리엔 노란 가로등만 켜져 있습니다. 곧 옐로우 캡 한 대가 다가와 멈추고 한 여자가 내립니다. 검은색 드레스에 여러 겹의 진주 목걸이를 어깨에 걸친 여자는 티파니의 진열대 앞에 섭니다. 선글라스를 낀 채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종이봉투에서 크루아상과 커피를 꺼내 먹으며 그녀는 유리벽 너머의 화려한 보석들을 바라봅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유명한 오프닝 장면입니다.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홀리 고라이틀리는 재벌과 결혼해서 팔자를 고치고 싶어 하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화려한 삶을 원하고 그래서 속물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티파니의 보석들을 사줄 수 있는 남자라면 늙고 못생긴 남자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사랑이 아니라 티파니의 다이아몬드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텍사스의 남편과 가족들로부터 도망쳐 뉴욕에 온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을 쓴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는 뉴욕이란 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New York is the only real city-city.” (뉴욕만이 단 하나뿐인 진짜 도시다.)
뉴요커로서의 오만함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뉴욕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라는 건 분명합니다. 연간 5천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이 도시는 전 세계가 교차한다는 타임스 스퀘어와 뮤지컬과 연극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초고층의 마천루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안에 센트럴 파크와 같은 공원들을 호수처럼 품고 있습니다. 록펠러 센터의 아이스 링크는 언제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거리의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유명한 영화계의 스타를 만날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하는 도시. 뉴욕은 세계 경제의 수도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경제인들이 바삐 걸어 다니는 월스트리트에는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인 뉴욕 증권거래소가 있습니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것들은 모두 뉴욕에 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을 선망하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지금의 나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뉴욕은 그 멋진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부유하고 안락한 맨해튼의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센트럴파크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보거나 블루노트에서 재즈 공연을 보며 새로운 미술계의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삶. 경제적인 여유가 가져다주는 안락함, 지적인 대화와 예술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뉴요커의 모습은 21세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 아닐까요? 게다가 이러한 환상은 약간의 행운이 첨가되어 부단히 노력한다면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기에 더욱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이쯤에서 커포티가 내린 뉴욕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커포티의 말엔 좀 더 깊은 의미가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텍사스의 시골 여자였던 룰라메이 반즈가 홀리 고라이틀리가 되어 뉴욕 5번가를 걷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속물적인 신데렐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룰라메이 반즈는 홀리 고라이틀리를 꿈꿨던 겁니다. 텍사스의 먼지 구덩이가 아니라 티파티의 보석이 빛나는 맨해튼의 거리를 그녀는 선택했습니다. 텍사스의 시골에서 그녀는 살 수가 없습니다. 텍사스. 그건 신이 저지른 착오임에 분명합니다. 그녀는 뉴욕에 있어야 했습니다. 진정한 삶은 오직 뉴욕에만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진짜 삶을 원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뉴욕에 왔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환상의 세계만이 그들에게 진정한 진짜 세상입니다. 그들은 그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며 실제의 나보다 더 아름다운 자신의 이미지를 거울상에 덧씌우고 ‘지금 여기’보다 더 환상적인 세계를 끝없이 그려내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니던가요? 그리고 그런 끝없는 환상들의 결과가 집적되어 만들어진 것이 문명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의 홀리 고라이틀리는 응당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뉴욕은 이 위대한 몽상가들의 고향이자 그들이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가졌던 수많은 환상의 귀재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을 꼽아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인 제이 개츠비가 되어야 합니다.
개츠비는 ‘재즈 시대(Jazz Age)’라 불렸던 1920년대의 뉴욕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1920년대는 1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이라는 두 개의 엄청난 재앙 사이에 난 틈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은 맹렬하게 쾌락과 타락을 즐겼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은 폐허가 된 자신을 추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미국은 전례 없는 경이적인 경제적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산업생산은 60퍼센트 이상 증가했고 개인소득도 3분의 1 정도 늘어났습니다. 경제적 호황의 배경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생산기술에서의 혁신입니다. 포드 자동차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생산성을 극대화시켰고 그 결과 자동차 산업은 이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발달은 다른 관련 산업도 활성화시켰습니다. 자동차 제조업자는 철, 고무, 유리 제품과 공구 회사를 사들였고, 자동차 소유자는 정유 회사에서 가솔린을 구매했습니다. 자동차로 인해 이동성이 증가하자 교외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건설업이 번성했습니다. 무얼 하든 대박이었고 어디서나 돈이 넘쳐났습니다.
뉴욕의 증시는 계속 상종가를 쳤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서술자인 닉 캐러웨이는 증권업에 종사하기 위해 뉴욕에 오게 된 연유를 이야기하며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증권업에 종사하고 있었던지라 증권업이 독신자 하나쯤은 더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일 정도의 명문대를 나온 똑똑한 젊은이들은 모두 월스트리트로 몰려들었던 겁니다.
미국인들은 넘쳐나는 돈으로 전기냉장고와 진공청소기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샀습니다. 1920년대 말엽에는 3000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미국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개츠비가 18살의 데이지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이미 흰색 로드스터를 몰고 다녔고 5년 후 개츠비는 짙은 크림색에 니켈이 번쩍이는 화려한 차에 데이지를 태우고 질주합니다. 검은색 쿠페를 모는 데이지의 남편 톰은 결혼한지 2달 여가 지난 어느 날 센터 바버라의 고속도로에서 호텔 청소부 여자를 태우고 달리다 웨건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톰의 정부인 머틀의 남편 윌슨은 톰의 쿠페에 눈독을 들입니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윌슨은 중고차를 사고파는 일도 겸하고 있습니다.
1920년에 미국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보장받게 되었고 같은 해 여성 하원의원 재닛 랜킨이 최초로 당선되었습니다. 1920년대는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사용하게 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로젠탈과 그의 아내 이다가 발명한 브래지어는 빅토리아 시대 코르셋의 제약에서 벗어나 여성들을 맘껏 움직이고 숨 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속옷을 통한 신체적 해방은 여성 투표권만큼이나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엄격한 빅토리아 시대의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춤을 췄습니다. 패션에 상당한 신경을 썼고 화장을 하고는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해방의 정신은 지극히 세속적인 방식으로 패션, 머리 모양, 말투와 행동에 스며들어 ‘플래퍼’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플래퍼(Flapper)는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자유분방하고 젊은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플래퍼는 전통적인 긴 머리를 과감히 자른 단발과 하얀 얼굴, 검고 가늘게 그려진 눈썹 그리고 붉은 입술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을 특징으로 하며 두상을 완전히 감싸는 클로쉐(Cloche)를 썼습니다. 무릎 아래와 팔을 노출시키는 헐렁한 스타일의 원피스를 선호한 플래퍼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보이쉬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개츠비의 호화로운 파티에서 우리는 그녀들을 볼 수 있습니다. 플래퍼들은 밤이 되면 짜릿한 흥분을 느끼기 위해 클럽과 파티를 찾아다니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플래퍼에 가장 가까운 여성은 조던 베이커입니다. 데이지의 친구이자 닉 캐러웨이와 묘한 감정을 주고받기도 하는 조던 베이커는 외양만 플래퍼일 뿐 남성에게 의존적인 데이지와 다르게 유명한 골프선수이며 그래서 사교계에서도 자기만의 캐릭터와 독립성을 갖고 있는 보이쉬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즈시대의 진면목은 화려한 파티에서 연출됩니다. 웨스트 에그에 위치한 개츠비의 대저택에선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파티가 열립니다.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들처럼 뉴욕의 젊은 남녀들은 자동차를 타고 개츠비의 환한 정원으로 몰려듭니다. 칵테일 쟁반이 빙빙 돌아다니고 잡담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재즈는 한층 빠른 템포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흥을 못 이긴 여성은 연단 위에 올라 춤을 추고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1920년대는 피츠제럴드의 표현대로 ‘미국이 역사에서 가장 화려하게 흥청거리던 시대’였습니다. 파티는 더 화려하게 열렸고 도덕과 윤리는 점점 더 느슨해졌습니다.
더 재밌는 건 이렇게 술냄새가 진동하던 이 향락의 시대가 금주법의 시대였다는 겁니다. 1920년 1월에 제정된 금주법은 다분히 재즈시대의 타락을 막고 청교도적 윤리에 기반한 전통적인 미국의 도덕과 가치관을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들은 자주 술에 취해있습니다. 개츠비의 파티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사람들로 난장판이 벌어집니다. 톰은 어딜 가나 너무나도 쉽게 술병을 꺼내 듭니다. 이 술들은 모두 마피아로부터 나왔습니다. 금주법 때문에 합법적 기업은 술을 제조하고 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피아들은 밀주 사업을 통해 거물이 되어갔습니다. 시카고의 대부(The God father)가 알 카포네였다면, 뉴욕의 왕은 아널드 로스스타인이었습니다. 로스스타인은 ‘블랙삭스 스캔들’이라 불리는 1919년의 월드 시리즈 승부조작 사건을 배후에서 조정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미스터 빅’이라 불린 그는 뇌물로 정치가나 경찰들을 관리하는 등 그전과는 차원이 다른 조폭두목이었습니다. 개츠비의 사업 파트너인 마이어 울프심은 명백하게 로스스타인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울프심과 개츠비가 운영하는 뉴욕과 시카고의 약국 체인점들은 물론 약도 팔았지만 대부분의 수입은 에틸알코올 판매에서 옵니다, 이는 금주법의 시대에 마피아들이 어떻게 밀주 사업으로 돈을 벌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개츠비의 어마어마한 부와 그 화려한 파티들은 이 검은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의 번영은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한 것이었습니다. 포드주의로 불리는 생산체계의 혁신은 공급을 계속 팽창시켰지만 수요는 상대적으로 정체되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농업은 처음부터 내내 불황이었습니다.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도 재즈시대의 번영을 생각할 때 그 상승률은 매우 더딘 것이었습니다. 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 이윤이 지나치게 상승했다는 건 자본을 가진 부자들이 국가 소득의 대부분을 가져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자들의 돈이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각종 투기로 몰리면서 경제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위태로워졌습니다. 생산의 과잉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져 갔는데 그 이유는 사치재 구입과 같은 부자들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고 대중들의 수요는 점점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920년대의 이 경제위기를 소비자신용의 확대를 통해 해결하려 시도했지만, 실질임금소득이 함께 상승하지 않는 상황에서 위기는 더욱 첨예화될 뿐이었습니다. 재즈시대의 눈부신 번영의 이면엔 이렇게 파국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1929년 뉴욕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대공황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라 1920년대 내내 곪아가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재즈시대의 맨얼굴을 ‘재의 골짜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웨스트 에그와 뉴욕 시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 황량한 지역을 닉 캐러웨이는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재가 밀처럼 자라 산마루와 언덕과 기괴한 정원을 이루는 환상적인 농장이다. 이 재는 집과 굴뚝, 그리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모양을 하고 있다가, 안간힘을 내서 마침내 회백색 사람 모양이 되어 뿌연 공기 속에 어렴풋이 움직이다 금세 땅바닥에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이따금씩 잿빛 자동차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기어가는데, 오싹하도록 무섭게 삐걱거리다가 조용해진다. 그러면 즉시 회백색 사람들이 납으로 만든 삽을 들고 몰려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구름을 휘저어 놓고 그 구름은 그들의 알 수 없는 작업을 볼 수 없게 가려버린다.”
뉴욕의 빌딩들이 하늘에 치솟고 땅값과 주가가 고속 상승을 달리던 때, 한쪽에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재가 되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이 재의 골짜기는 재즈시대의 고속성장과 시끌벅적한 환락의 가면 뒤에 가려져 있던 가난과 절망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의 골짜기는 재즈시대의 화려한 얼굴이 거대한 기만임을 드러냅니다.
재의 골짜기에 있는 자신의 정비소에서 윌슨은 가난에 무기력하게 빠져있고, 윌슨의 아내 머틀은 백만장자 톰이 자신을 데려가 맛 보여 줄 짜릿한 쾌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재의 골짜기에서 데이지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개츠비의 차를 몰고 가다가 정비소에서 뛰쳐나온 머틀을 치어 죽여버립니다. 재의 골짜기에서 개츠비는 데이지의 죄를 뒤집어쓰고, 윌슨은 개츠비가 머틀의 남자일 거라고 오인합니다. 아내에게 찍 소리도 내지 못하던 약골 윌슨은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이며 이 불행한 이야기를 끝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개츠비>는 재즈시대의 모든 것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톰과 데이지와 같은 세습 부자들이 사는 뉴욕의 전통적 부촌 이스트 에그에서 시작해 개츠비와 같은 벼락 성공을 맛본 신흥 부자들이 사는 웨스트 에그의 파티를 거쳐 결국 재의 골짜기에서 끝납니다. 재즈시대는 이렇게 화려하게 성공했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재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소설로 읽거나 영화로 본 학생들은 종종 개츠비를 주인공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특히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불편해합니다. 개츠비가 낭만적이긴 하지만 그는 향락에 취한 사람이고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는 졸부이며 무엇보다 범죄자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완강한 도덕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문학은 도덕군자들의 위인전이 아닙니다. 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진실을 다룹니다. 개츠비는 범죄자이고 데이지와의 낭만적 사랑에 집착하다가 죽어버린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개츠비의 강렬하고도 허무한 인생에서 삶의 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개츠비는 악의적으로 조작된 무성한 소문들 속에서 죽었고, 그 자극적인 신문기사들이 불러일으킨 즉각적인 흥미만큼이나 빨리 잊혀갔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와 그의 삶을 기억하려 애쓰는 유일한 인간입니다. 우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진실을 기억하는 유일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닉은 이야기의 서두에서 개츠비를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개츠비는 내가 드러내 놓고 경멸해 마지않는 모든 것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만약 개성이 일련의 성공적인 몸짓이라면 그는 뭔가 멋진 것을, 마치 1만 마일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기계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삶의 가능성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맥 빠진 감수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삶의 가능성에 예민한 감수성’과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제이 개츠비는 노스 다코타주의 별볼일 없고 무능한 농부의 아들, 제임스 개츠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개처럼 더럽게 밥을 먹는다고 말한 아들을 개처럼 때리는 인간이었습니다. 보다 멋진 삶의 가능성을 1만 마일 밖에서도 감지하는 이 예민한 청년에게 고향과 부모는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을 겁니다.
무례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공상을 키워가던 제임스 개츠는 열일곱 살 때 요트 여행을 하던 백만장자 댄 코디를 만납니다. 댄 코디는 몬태나 주의 동광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으로서 서부개척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무한히 펼쳐진 황야에서 금맥을 감지하던 댄 코디와 세상을 다 품을 만큼 거대한 야망을 지닌 이 소년은 서로가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챕니다. 제임스 개츠는 자신의 이름을 제이 개츠비로 바꾸고 댄 코디와 함께 요트 여행을 합니다. 제이 개츠비는 댄 코디에게서 야망을 지닌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교육받습니다.
댄 코디가 죽고 나서 제이 개츠비는 군에 입대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유럽으로 떠나기 전 제이 개츠비는 루이빌에 있는 캠프 테일러에서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 곳에서 개츠비는 데이지 페이를 알게 됩니다. 페이 가문은 루이빌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이었고 데이지는 루이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녀였습니다. 페이 가문의 저택은 개츠비를 황홀하게 했습니다. 자신이 막연하게 꿈꾸던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개츠비는 부(富)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주는 신선함,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은처럼 빛을 발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개츠비는 이러한 데이지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품었던 야망을 버립니다. 아니 모든 야망을 데이지에게로 돌립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밤 개츠비는 데이지를 오랫동안 가만히 껴안으면서 데이지라는 아름다운 보석을 갖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을 겁니다. 그녀를 계속 빛나게 하기 위해 개츠비는 왕궁의 정원을 가진 커다란 저택과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들 그리고 주인의 품격에 맞는 하인들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개츠비가 이 모든 걸 갖추기 위해선 5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데이지는 개츠비가 전쟁터로 떠난 그 이듬해 예일대학의 풋볼선수 출신이자 폴로를 하기 위해 말 떼를 거느리고 다니는 억만장자 톰 뷰캐넌과 결혼해버립니다. 데이지에게 이 선택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결혼식날 개츠비의 편지를 받고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소동을 피우기도 하지만 톰이 선물한 35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가 다시 그녀의 목에 자리를 잡는 데는 30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신혼여행 동안 데이지는 톰에게 완전히 빠져 지냈습니다. 데이지는 그런 여자입니다. 자신을 비춰주는 부의 조명을 받으며 가볍게 반짝이며 살아온 데이지는 쉽게 사랑에 빠졌다가 다시 쉽게 빠져나옵니다. 항상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세상 속의 바비인형이 될 때 데이지는 드디어 데이지가 됩니다. 데이지는 자신의 딸이 태어난 날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괜찮아. 딸이라서 좋아. 그리고 이 애가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계집애라면 그러는 편이 제일 좋으니까.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 말이야.”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 그것이 데이지입니다. 그녀는 진지하고 심각한 것들을 혐오하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습니다. 그러나 조심성 없는 그 말들에서조차 그녀는 자신이 어떤 계급인지를 잘 드러냅니다. 개츠비가 닉에게 말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데이지는 그녀만의 진정한 개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여자입니다. 데이지는 눈부시게 빛나는 부의 이미지 그 자체이며 바로 그 점이 개츠비를 매혹시켰던 것입니다. 개츠비는 어떤 것이 지상의 부박함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래서 천상의 이미지에 더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은 다른 평범한 인간들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개츠비는 그가 꿈꿔 온 완벽한 세계의 이미지를 데이지에게서 발견했습니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하나의 이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웨스트 에그에서 개츠비는 데이지가 있는 이스트에그를 바라봅니다. 데이지의 집에서 반짝이는 초록색 불빛을 응시하며 개츠비는 자신이 준비한 거대한 왕국에 그녀가 찾아들기를, 그래서 그 초록색 불빛이 결국 자신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결국 개츠비는 닉과 조던의 도움으로 데이지를 웨스트 에그로 이끄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데이지에게 자신이 이룩한 부의 제국을 구경시켜줍니다. 개츠비의 안내를 받으며 데이지는 노란 수선화와 산사나무와 오랑캐꽃의 향기가 가득한 정원을 지나 봉건 시대풍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대리석 계단으로 오릅니다. 저택의 안에서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 음악실과 왕정복고 시대의 살롱을 구경하고 옥스퍼드 대학의 도서관을 본뜬 서재에 감탄합니다. 위층의 고풍스러운 침실과 의상실을 지나 개츠비의 방에 들어온 데이지는 개츠비가 두 개의 커다란 옷장에서 끝없이 빼어내 던지는 영국제 와이셔츠들을 보면서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산호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바둑판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 블루 색으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데이지가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훌쩍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자기 이름이 새겨진 영국제 셔츠 더미에 얼굴을 파묻은 데이지를 보면서 개츠비는 자신의 꿈이 실현되었다고 느꼈을까요? 그러나 개츠비는 아직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에게 가서 그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루이빌에 가서 다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개츠비의 계획이었습니다. 개츠비는 시간을 거슬러 모든 것을 제대로 고쳐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으로 돌아가 데이지의 옆에 있었던 톰을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을 집어넣으려 한 것입니다. 그렇게 개츠비는 완벽하게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완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데이지가 톰을 한때는 사랑했다는 사실은 엄연히 존재했었고 그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데이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라며 과거는 반복될 수 없지 않느냐는 닉의 말에 개츠비는 큰 소리로 “아뇨, 그럴 수 있고 말고요!”라고 대답합니다. 개츠비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간마저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꿈꾸는 자신의 이미지가 있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겪어가면서 점차 현실주의자가 되어갑니다. 낭만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개츠비는 그 간극을 자신의 의지를 통해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저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웨스트 에그의 저택으로 꾸민 그는 단순히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현실로 실현하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낭만적 세계를 지상에 실현시키는 과정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을 겁니다. 소설에 언급되지 않았기에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5년동안 그가 얼마나 고되고 지독히 고독한 시간들을 견뎌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자 개츠비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들인 5년여의 시간은 피와 땀이 배어있는 노동의 나날들이었을 겁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꼼꼼하게 읽은 독자라면 개츠비가 이 소설에서 술을 즐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밀주업자이자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었던 그는 정작 술을 별로 마시지 않습니다. 개츠비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흥청거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또한 웨스트 에그의 화려한 궁전에서 개츠비의 방은 유난히 검소했다는 사실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개츠비는 돈과 명성이 가져다주는 화려한 쾌락에서 자신을 배제합니다. 이러한 개츠비의 특성에서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를 절제하고 관리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데이지에게 선사할 더 멋진 낭만적 세계를 위해서 그 모든 환락과 사치를 쉬지 않고 묵묵히 제조해왔을 겁니다. 그리고 그 절제되고 단조로운 노동들이 직조해가는 부의 세계가 더 화려하고 더 거창해질수록 데이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더 완벽하게 입증해가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속적 성공을 통해 자신의 신념에 대한 헌신과 근면성을 입증하는 개츠비의 모습은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한 자본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이념형 인물에 가깝습니다. 막스 베버는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자본의 규칙적인 재생산에 몰두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이윤추구를 단순한 부에 대한 욕망추구과 구분했습니다. 베버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적 쾌락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부의 축적을 지속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 자기 훈련과 절제를 요구하는 윤리라고 보았고, 이러한 윤리가 청교도주의의 금욕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청교도적 윤리가 세속화된 것이 자본주의 정신이라 보았고 자본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벤자민 프랭클린을 꼽습니다.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으로 유명한 미국인으로 시간표를 만들어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관리한 사람입니다. 프랭클린은 정직, 시간 엄수, 근면의 생활태도가 만들어내는 부가 그 사람의 유능함을 드러내며 이 유능함을 도덕적인 표지로 생각했습니다. 개츠비가 죽은 후, 그의 친부가 닉에게 보여준 어린 시절 개츠비의 노트를 보면, 프랭클린이 말하는 도덕적인 인간의 전형이 바로 개츠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상................................................................... 오전 6:00
아령 들기와 벽 타기.............................................. 오전 6:15~6:30
전기학 및 기타 공부............................................... 오전 7:15~8:15
일..................................................................... 오전 8:30 ~ 4:30
야구와 스포츠..................................................... 오후 4:30 ~ 5:00
연설 연습, 자세 연습.......................................... 오후 5:00 ~ 6:00
발명에 관한 공부................................................. 오후 7:00 ~ 9:00
결심
섀프터스나 또는 XXX(이름을 읽을 수 없다.)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궐련과 씹는 담배를 삼갈 것.
이틀에 한 번씩 목욕할 것.
매주 유익한 책이나 잡지를 한 권씩 읽을 것.
매주 5달러(줄을 그어 지웠다.) 3달러씩 저축할 것.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을 것.
그러므로 개츠비가 세속적 향락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개츠비는 재즈시대의 시끌벅적한 쾌락 속에서 적막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람입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구원이라는 종교적 열락을 세속적인 이윤추구라는 수단을 통해 구했듯이,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낭만적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웨스트 에그의 사치스러운 세계를 부단히 직조해내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츠비는 재즈시대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윤리적 인간인 셈입니다. 개츠비 앞에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개츠비를 둘러싼 염치없고 부끄러움 없는 인간들은 그저 문란할 뿐입니다. 먼저 이스트에그의 인간들이 있습니다. 이스트에그의 사람들은 미국 사회의 슈퍼 엘리트들입니다. 대개 세습 부유층들이며 하버드나 예일과 같은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최상위층의 인간들입니다. 개츠비가 웨스트 에그의 신흥 부자들을 대표하듯이 톰은 바로 이 이스트에그의 전통적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톰은 여러 면에서 개츠비와 대비됩니다. 톰은 세습받은 엄청난 부를 가지고 거만하게 남을 무시하는 인간입니다. 백인우월주의자이며,말을 타고 다니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톰은 개츠비와 같은 신흥 부자들을 비롯해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저급한 사람입니다. 어마어마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아무런 노력 없이 물려받은 톰은 삶에 대한 열정이 메말라버린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톰은 개츠비처럼 낭만적인 이상 세계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는 끝없이 방황하며 욕정을 채우는 데서 삶의 짜릿한 흥분을 느끼는 천박한 인물입니다.
데이지는 영국제 셔츠를 사랑하는 속물이고 무책임한 여자입니다. 데이지는 잠시 웨스트 에그의 화려함에 이끌렸지만 톰이 개츠비가 밀주업자라는 사실을 폭로하자 다시 안전한 이스트 에그로 바로 발길을 되돌립니다. 심지어 데이지는 머틀을 자동차로 치어 죽이고 나서 자신이 엎지른 물을 개츠비에게 치우게 하고는 도망쳐버립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개츠비에게 빠져있던 그녀는 뺑소니의 범인을 개츠비로 만들기 위해 톰에게 모든 걸 맡겨버립니다. 개츠비의 초록색 불빛은 이렇게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닉은 톰과 데이지를 아래와 같이 평가합니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경솔한 인간들이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숴버리고 난 뒤 돈이나 엄청난 무관심 또는 자기들을 묶어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로 물러나서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하는 족속이었다.”
개츠비의 파티에서 술에 취해 몸을 흔들던 뉴욕의 그 모든 귀족들과 유명인사들은 개츠비가 일궈낸 화려한 세계를 탐닉하고 다음날 무수한 과일 껍데기와 쓰레기를 개츠비의 정원에 남긴 채 무책임하게 떠납니다. 그들은 자신 안의 저열한 욕망을 충족시키고 난 다음날이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자신이 얼마나 깨끗한 세계 속에 위치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기만적인 족속들에 불과합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이스트에그는 그 화려한 외관 속에 구역질 나는 타락을 숨겨놓고 있었던 겁니다.
개츠비는 이들로부터 개처럼 패대기 쳐집니다. 톰은 윌슨에게 개츠비가 머틀의 남자이자 그녀를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고 윌슨은 머틀이 죽은 다음날 개츠비의 집에 가서 개츠비를 죽입니다. 경찰과 기자들 그리고 구경꾼들이 개츠비의 저택으로 몰려들었고 연이은 두개의 살인사건은 매우 선정적으로 색칠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악당이자 더러운 욕정을 즐기다 천벌을 받은 개츠비에 대해 수군거렸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쓰레기가 개츠비의 집에서 나온 것인 양 분개하면서 자신들의 악취를 숨깁니다.
개츠비가 윌슨의 총에 맞기 불과 몇 시간 전 개츠비를 찾아간 닉은 그에게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개츠비는 자신이 처한 지저분하고 추한 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면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츠비가 이룩한 위대한 꿈은 허망하게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데이지라는 초록색 불빛이 그토록 허망하고 가치 없었다는 사실에 직면해서도 개츠비는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환상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져가는 환멸의 상황에서도 데이지에 대한 낭만적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며 파국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개츠비의 품격이며 그가 위대한 개츠비라고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는 이유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인 피츠제럴드는 가난한 중서부의 청년이었고 시카고 갑부집의 딸인 지네브러 킹과의 사랑을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후 피츠제럴드는 앨라배마 주 판사의 딸인 젤다 세이어를 역시 가난 때문에 잃을 뻔했지만 소설 <낙원의 이쪽>이 대성공을 거둬 간신히 결혼하게 됩니다.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유럽을 돌아다니며 화려한 생활을 하고 뉴욕에 정착합니다. 두 사람은 뉴욕 사교계의 스타로 요란한 결혼생활을 즐겼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젤다의 사치를 감당하기 위해 쉬지 않고 소설을 써야 했지만 <낙원의 이쪽> 이후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위대한 개츠비>마저도 성공하지 못하자 그는 크게 낙담합니다.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으로 술에 절어 살았고 젤다는 정신병원에 들어가지만 화재가 발생해 불길에 갇혀 죽고 맙니다. 부유한 집안의 여성을 사랑하는 가난하지만 야심 많은 개츠비는 피츠제럴드 자신의 분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피츠제럴드가 이 소설 안에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숨겨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서술자인 닉 캐러웨이는 막연한 환상을 지닌 채 뉴욕에 왔고 멋진 플래퍼 조던 베이커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닉은 개츠비가 죽고 난 뒤 뉴욕을 완전히 환멸하게 되자 조던 베이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증권업도 그만두면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닉은 대학에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초록색 기차표’를 쥔 채 귀향 기차를 타던 추억을 떠올립니다.
“역을 빠져나와 겨울밤과 진짜 눈 속으로 들어가면 옆쪽으로 눈이 흩뿌려지며 창을 배경으로 반짝이기 시작했고, 자그마한 위스콘신 역의 흐린 불빛들이 지나가고 공기 속에는 예리하고 거친 기운이 감돌았다. 저녁을 먹은 뒤 싸늘한 연결복도를 지나 걸어오는 동안 우리는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다시 그 공기 속에 하나로 녹아들기 전 묘한 한 시간 동안 이 지방과 하나가 됨을 가슴 깊이 깨닫는 것이었다. 그곳이 바로 나의 중서부이다. 밀밭이나 평원 또는 사라져버린 스웨덴 사람들의 읍이 아니라, 감격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내 젊음의 귀향 기차, 서리가 내린 어두운 밤의 가로등과 썰매의 종소리, 불 켜진 창의 불빛에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화환의 그림자가 눈 위에 비치는 곳 말이다.”
목가적인 중서부의 크리스마스 풍경과 그 지방의 공기를 들이마실 때 느껴지던 예리하고 거친 감각들이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추억 장면에서 우리는 피츠제럴드가 자신의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있던 중서부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와 같은 삶을 추구했지만 그의 존재 깊숙한 곳에선 소박했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닉은 피츠제럴드와 개츠비가 가지 못했던 길에 들어섭니다. 그 결정은 옳은 것이었을까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 고라이틀리가 남편을 따라 다시 룰라메이로 돌아갔다면 그녀는 더 행복했을까요?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선택해야만 하고 그 선택의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