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부터 직업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210km의 속도로 달려오다가, 브레이크를 꾸욱 밟아 서서히 느려졌던 시간들.
하나의 전시를 보고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경쟁 전략 - 마이클 포터
열정의 배신 - 칼 뉴포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유년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느 시기에나 어려움은 존재했었고
그 어려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경쟁 전략에서는
사업에서의 과오와 앞으로는 꼭 지켜야 할 점들에 대한 정리를.
열정의 배신에서는
이제는 성적이 아닌 실력을 키워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제대로 일하는 것이 좋은 직업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의 전시에서는
길에 굴러다니던 작은 고철덩어리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칠만한 가치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고생했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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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씨와의 대화 / 성찬경
이렇게 하늘이 맑고 해가 빛날 때
방안에 앉아 있는 건 죄지요,
하고 내가 말했다.
죄구 말구요, 이런 때 밖에서 바람을 쐰다는 건
바로 덕을 쌓는 거지요.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
하늘은 꼭 가을처럼 파랗습니다.
해는 꼭 여름처럼 타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허지만 날씨는 매섭습니다.
몇도 쯤이나 될는지?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
아마 섭씨 영하 15도는 될겁니다.
보세요, 저 눈의 평원은 마치 영원의 도포자락 같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 나라에선 이런 설경은 볼 수가 없지요.
겨울은 계절의 제왕입니다.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
이런 날씨는 바로 그 겨울의 정화입니다.
해는 쓰다듬고 바람은 매질합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바로 그런 거지요.
천국과 지옥은 공존입니다.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
우리는 마치 어린애 같습니다.
이런 소리 듣는 것 좋아하십니까?
하고 내가 말했다.
좋구말구요.
어린아이 같다는 말 제일 좋습니다.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
야오씨는 오십객이다.
야오씨도 나도 멀리 조국과 처자를 떠나 있는 처지이다.
우리는 그 후 말없이 해와 하늘과 바람과 눈 속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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