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동생의 장점 중 하나는 넉살이다. 애가 어떻게 그렇게 능글 맞고 넉살이 좋은지. 대문자 E인 동생은 어딜 가나 처음 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주변에 사람이 늘 시끌하다. 사람들에게 실없는 소리도 잘한다. 그에 반해 나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나 그렇지, 보통의 상황에선 낯도 가리고 넉살이라곤 없다.
살면서 넉살을 장착해야 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아 다행이다. 다만 넉살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난감하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집에 수리 기사님들이나 설치 기사님들이 올 때. 엄마는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엄마는 기사님들이 집에 방문하면 반드시 시원한 음료수를 준비했고 그걸 내게 전달하게 시켰다. 그게 엄마의 예의 지론이었다.
그 교육 덕분에 나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기사님들이 집에 오면 그때부터 전전긍긍이다. 어떤 타이밍에 드려야 할지, 무얼 드려야 할지, 어떻게 드려야 할지. 심지어 엄마처럼 살림에 꼼꼼하지 않은 우리 집 냉장고는 대부분 텅 비어 있어 더욱 난감하다. 예전엔 이런 적도 있다. 냉장고 설치 기사님이 오셨는데 물 한 잔을 따라 놓고 남자친구와 서로 눈치 싸움을 벌였다. ‘니가 드려’, ‘아 니가 좀 드려~!’. 나보다 넉살 없는 남자친구와 나는 입 모양으로 벙긋 벙긋 거리며 서로에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건네지 못한 적도 있었다. 기사님이 떠나고서야 서로에게 소리 내서 말했다. “우리 진짜 바보 같아... “
며칠 전엔 화장실 문이 고장 나 숨고에서 고수님(?)이 오셨다. 학점은행 중간고사를 치르느라 바쁜 와중에 고수님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두 어 번 열어젖혔지만 그렇다고 없는 음료수가 생기진 않는다. 물이라도 드려야 하나, 이번에도 타이밍을 도저히 못 잡겠다. 수리가 끝나고 고수님이 짐을 챙기시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시는데 도저히 언제 껴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문장과 문장의 텀이 조금 길어진 그 순간, 그 순간을 낚아 챈다! “선생님 아이스크림 하나 드실래요?”
고수님은 산뜻하게 거절하시고 집을 나섰다. 아 그냥 물이나 드릴 걸 그랬나.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려운지. 왠지 어린 시절 엄마가 늘 나에게 시킨 것도 어쩌면 엄마도 넉살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자기가 주기 민망하니까 나한테 시킨 거지. 참내 이제야 알겠네. 더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