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얼마 전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미팅 가는 택시 안에서 두고 내렸다. 평소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 아닌 데다 바로 미팅에 들어간 바람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미팅이 끝나고야 알아차렸다.
일단 동료 휴대폰을 빌려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걸기 전에도 한숨부터 나왔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인터넷의 온갖 휴대폰 분실 썰들. 휴대폰을 찾아 주면서 10만 원을 요구하더라, 자기 일정 바쁘다고 만남을 며칠 미루더라. 나는 이번 분실로 얼마를 쓰게 될까 계산하며 신호음을 기다렸다.
전화를 받으신 기사님은 지금은 명동이니 줄 수 없는데 오후 4-5시 사이에 퇴근하고서 택시 회사에 분실물 접수를 할 테니 그때 회사 차고지로 와서 찾아가라고 하셨다. 택시 회사 이름과 대략적인 주소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셨고 돈 이야기나 그런 것은 일절 없었다.
하필 그날 저녁 일정이 꽉 차 있어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차고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맵에 찍어보니 차고지라 그런지 대중교통이 답이 없다. 아 또 택시를 타야겠네. 택시 부를 휴대폰이 없어 회사 앞에서 마냥 택시를 기다려야 했다. 운이 좋았는지 마침 한 승객이 회사 앞에서 내렸고 혹시나 외곽이라 거절할까 봐서 묻지 않고 모른 척 타버렸다.
"ㅇㅇ 택시로 가주세요. 수색 근처예요."
잠자코 출발하신 기사님이 몇 분 있다 혹시 분실물 찾으러 가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민망하게 대답하자, 차고지에 도착하면 배차실로 간 다음 기사님 성함과 차 번호를 말하면 아마 보관하고 있던 분실물을 줄 거라며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가는 길에 물건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라며 본인 휴대폰까지 빌려 주셨다.
차고지에 전화하니 어떤 직원 분이 차분하게 받는다. 그런데 분실물을 말하자마자 한껏 즐거운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아 빨리 와~~~~". 어리둥절해하는 와중에 전화기 넘어 직원은 우하하 웃으며 잘 보관하고 있으니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통화가 끝나니 기사님이 혹시 다시 회사로 돌아올 거라면 자기가 근처에서 기다릴 테니 다시 타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혹시나 비용이 부담돼 대중교통을 탈 거라면 편하게 말해줘도 된다고도 하셨다. 검색해 보니 돌아오는 교통편도 한숨이 나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차고지 근처에 도착해 얼른 다녀 올게요! 하고 뛰어가는데 이대로 도망가도 기사님은 나 못 찾을 텐데 기사님은 날 뭘 믿고 이렇게 친절을 베푸시는 걸까 의아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야. 차가 막혀 택시비도 편도만 만 원이 훌쩍 넘게 나왔는데.
차고지 사무실로 들어가니 아까 그 목소리가 크게 반겨 주셨다. "아 왜 이렇게 늦게 와~~~". 챙겨 가면서도 한 병이라 민망했던 박카스를 내미니 "아 요거 하나 사 온겨?!" 면박을 주시면서도 빠르게 휴대폰을 찾아 건네주셨다. '사실 기사님 주려고 챙겨 온 건데ㅎ'. 생각지 못한 환대에 기분이 좋았으나 기사님이 기다리실 게 걱정돼 후다닥 나왔다.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왔다. 택시비는 2만 원이 넘었다. 기사님은 요금이 신경 쓰이셨는지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미터기를 끄시더니 결제를 하라고 했다. 오늘 휴대폰을 잃어버렸고 금방 찾았다. 예상하지 못한 멍청 비용을 2만 원 넘게 사용했지만 왠지 모를 친절들에 기분이 오히려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친절을 자주 생각한다. 예전엔 사회에 친절이 너무 부족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 역시 타인에게 배타적인 태도였다. 아무도 내게 친절하지 않은데 나라고 왜 친절해야 돼? 하지만 언젠가부터 친절과 환대를 계속 곱씹는다. 그러니 주변의 친절이 보인다. 사소하고 작지만 분명한 친절들. 나 역시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하고자 변화한다. 친절과 호의가 다른 사람에게도 행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더 친절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