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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Dec 23. 2023

낯선 이방인에 대한 환대

2013년 11월의 네덜란드에서

10년 전의 교환학생 경험과 그 시절 유럽 군데군데를 쏘다녔던 여행에서 많은 걸 배웠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방인에 대한 환대 그리고 이해를 꼽고 싶다. 가끔 홍대 같은 번화가 지하철을 오가다 보면 노선도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낯선 여행객들을 볼 때가 있다. 혹시나 불편해할까 봐 막 나서지는 못해도 가까이서 열심히 눈길을 던진다. 낯선 이여,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내게 말을 걸어줘!


2013년 스웨덴과 유럽의 경험이 그러했다. 스웨덴의 린셰핑은 그나마 내가 교환학생으로 적을 두고 있는 곳이었고 반대로 말하자면 교환학생으로의 나를 기꺼이 환영한 곳이었으므로 대체로 모든 게 친절했다. 그러나 다른 유럽은 달랐다. 영국을 제외하곤 모두 그 나라 언어가 있었으며 나는 그저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 그것도 쪼끄만한 아시아인 여자애였을 뿐이다. 길 가다니며 니하오나 눈을 찢는 흉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2013년 11월 발을 들인 네덜란드는, 내 인생 최초 나 홀로 해외여행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괌을 빼고, 또 여행보단 학생 신분으로 자리 잡은 스웨덴을 빼고 나서 첫 여행지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였다. 다만 벨기에는 같은 교환학생 친구와 함께 여행했으므로 엄밀히 나 홀로 해외여행지는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던 것이다. 스물셋의 나는 겁이 없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지나치게 사람들을 경계하기도 했다. 게다가 대마초와 성매매가 합법인 도시라니!


겁이 없던 것치곤 나이트 버스를 타고 밤늦게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반짝이는 촘촘한 운하를 보며 생각보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도시인 거 같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가을이지만 칼바람이 불어 얇은 코트를 여미고 예약해 둔 유스호스텔로 씩씩하게 향했다. 호스텔 근처에 도착했는데, 여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길치인 나다. 분명 근처에 섰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호스텔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엔 유심도 없이 와이파이로만 여행하던 가난한 유학생이라 미리 다운로드 받아둔 무료 오프라인 지도 앱을 붙들고 그 자리를 뱅뱅 돌고만 있었다.


점점 시간이 늦어지자 조금 겁도 나 안 되겠다 싶어 눈앞에 보이던 타바코 샵에 들어간다. 유럽은 큰 마트 외에도 구멍가게 같은 조그마한 타바코 샵이 있는데, 담배를 포함해 물, 우유, 조그마한 간식거리 등을 파는 곳이다. 보통은 이방인으로서 안전하며 가격이 기재돼 있는 큰 마트에 들르며 이런 곳은 기피하는 편인데, 어쩔 도리가 없다.


“do you have any map of Amsterdam?"


타바코 샵을 지키고 있던 아저씨가 반갑게 웃으며 지도를 건네주며 말씀하셨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갑작스러운 한국말과 한국말을 내뱉는 아저씨 얼굴 사이의 이질감, 그리고 뜻밖의 반가움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한국말을 하세요????”

“아ㅎㅎ 제가 한국에서 몇 년 일을 했었거든요. 경남 쪽이랑 포항 이쪽에 몇 년 있었어요. 지금 어디 찾으세요?“


밤늦은 시간 담배를 사지도 않고 어떤 물건도 사지 않은 채 지도 있냐고 대뜸 물어보는 이방인에게 아저씨는 충분히 친절했다. 호스텔 이름을 알려 주자 상세히 가는 방법을 지도에 볼펜으로 그어 가며 알려 주었다.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첫인상을 결정짓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처음 발 디딘 곳의 풍경, 날씨, 그리고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암스테르담의 타바코 아저씨는 자신이 한국에서 일했던 곳과 먹었던 맛있는 한국 음식들을 말했다. 어쩐지 아저씨도 내가 반가운 눈치였다. 한국이라는 곳에서 이방인으로 일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의 시절을 읊는 아저씨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잠깐 동안 한국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이때의 경험은 내게 지금까지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처음 한 나 홀로 여행의 첫 페이지에서 나는 꽤 커다란 친절을 받았다. 아저씨도 쉽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분명 한 번쯤은 받은 친절이 있었을 거라 믿고 싶다. 아저씨도 그런 경험 때문에 한국인인이자 그 도시에서 이방인인 나를 환대했을 거다. 교환학생 생활이 모두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이방인들에게 더욱 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나처럼 낯선 곳에서 헤매고 있을 사람, 그럼에도 기꺼이 이 도시를 사랑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환대를 베풀어야지. 내가 낯선 도시에서 받은 친절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다. 그 사람들이 베풀 미래의 친절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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