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Feb 04. 2024

무뎌지지 않기

스스로를 물건 취급하지 않기 위함

나는 클럽을 좋아한다.


좀 더 정확하게 써볼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는 명확하다. 그런 노랠 술 먹고 듣는 게 좋다. 그 노래에 맞춰 춤추는 게 좋다. 춤을 디지게 못 추지만 내 마음껏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흐느적대는 게 좋다. 케이팝 노래가 나오면 유튜브에서 슬쩍 본 걸 따라 해보기도 한다. 잘 못 추면 어때 잘못 추면 어때 제대로 외운 게 아니면 어때. 그 시간만큼은 엄청 자유롭게 느껴진다.


술을 좀 먹은 다음 그런 노래만 트는 클럽에 가끔 가 몸을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면, 몸의 감각이 좀 더 느껴진다. 그 감각은 머리의 감각과도 이어진다. 춤이라는 걸 출 줄 아는 몸이구나, 몹시도 자유롭구나.


지난주 금요일엔 회사 사람들과 술을 먹다 다들 흥이 올라 오랜만에 가던 클럽을 갔는데 새벽 5시까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춤을 추니 최근 받은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엔 커다랗고 지난하고 지겨운, 거의 늘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아니 존재가 있다. 그건 바로 남자다.


라떼가 스무 살 땐 클럽에서 남자가 여자를 만지는 게 암묵적으로 허용됐다. 쓰고 나니 매우 뒤떨어져 보이는데 실제로 그랬다. 남자들은 춤을 추는 여자 뒤에 바짝 붙어 허리나 어깨에 손을 아무렇지 않게 올리곤 했다. 바짝 굳은 채 앞만 보고 재미도 없는 일렉(장르 애호가들에겐 사과드립니다)을 들으며 그 손짓들을 때론 거절하고 때론 견디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땐 클럽이 별로였다.


20대 중반이 넘어갔을 무렵엔 결심을 했다. 더 이상 참지 않기로. 내 자유로움을 해치는 불쾌한 손길에 적극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손을 탁 치워 내고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친구에게 붙어 있으면 밀어 내고 거리를 두라고 경고했다. 스물여섯이었나 일곱 땐 어떤 남자가 날 뒤에서 안는 바람에 깜짝 놀란 내가 뒤돌아 그 남자를 발로 차 싸움이 날 뻔도 했다.


삼십 대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나는 지쳐갔다. 꼭 이런 문제가 아니어도. 입을 더 떼기 지치고 피곤했다. 어느 순간부턴 참는다는 감각도 아니게 됐다. 그냥 흘러 보낼 수 있게 됐다. 딱히 분노도 느껴지지 않고 그냥, 진짜 그냥 그렇구나.


고등학교 친구와 그의 친구들 여럿과 며칠 전 홍콩으로 여행 왔고 금요일엔 란콰이펑에서 여러 펍과 클럽을 돌아다녔다.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날 끌어안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간 지난주 금요일에도 발생했다. 어떤 남자가 날 끈질기게 따라다녔고 좋게 거절을 해도 내 손목을 잡으려 해 동료들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근데 난 그냥 그랬다.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너무 빈번한 일이라, 엄청 화가 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냥 난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남자에게 손가락으로 욕을 날린 게 다였다.


그래서인가. 란콰이펑에서도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또 그냥 그랬다. 어디서나 흔한 일. 당연히 당장은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특별히 화를 내지 않고 내 할 일(=춤)을 했다. 그런데 함께 놀던 친구의 친구인 한 언니는, 자기 일이 아닌데도 그 사람의 자리로 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계솓 따졌다.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곧 남자는 자릴 뜨는 거 같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왔다. 언니는 또 가서 따졌다. 마침 언니의 친구이기도 한 펍 디제이가 무슨 일이냐 물었고, 언니가 설명하자마자 디제이는 노래를 갑자기 뚝 끊더니 그 남자에게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남자는 나갔다.


나는 왜 다시 가만히 있는 사람이 된 걸까. 너무 피곤하고 지치고 무뎌져서? 너무 빈번해서? 말해도 딱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 아니면 마치 물건처럼 나를 취급하는 넘쳐나는 대상화에 정말로 나의 뇌가 물건이 돼 버렸나. 다음날 혼자 산책하며 곱씹고 곱씹는데 갑자기 화가 너무 났다. 어쩌면 너무 화가 날 문제라 애써 덮어둔 걸까. 동등한 인간이 아닌, 아무렇게나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물건 따위의 취급. “어떤 남자가 갑자기 나를 뒤에서 동의 없이 껴안았다“라는 단순하고 누군가에겐 별일 아닌 것처럼 읽힐 수 있는 이 문장 뒤엔 실은 내 존엄이 박살 난 행위가 있다. 사람이 아닌 길에 놓인 돌덩이 따위로 취급되는 것. 단순히 순간의 불쾌한 감정만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취급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게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너무 잘 아니까.


술기운이 잔뜩 오른 시선에서 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언니가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계속해서 따지는 그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타인의 일인데. 생각해 보면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지겹도록 봐와도, 그 문제를 지겹도록 따졌다. 그게 왜 문제인지, 잘못인지. 언니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산책하는 동안 계속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되묻고 따지겠다고 결심했다. 지겹고 지난하고 피곤하더라도 무뎌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 나를 물건 취급했다고 해서 나 스스로도 나의 뇌를 물건처럼 취급하지 않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평등한 결혼은 온 가족의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