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랜 75>를 보고
며칠 전 영화관에서 <플랜 75>를 봤다. 한국만큼이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서 만든 영화로,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인 혐오 역시 심각해지고 전국적으로 노인 대상 범죄까지 벌어지면서 결국 정부는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원한다면' 안락사를 시켜준다는 그런 근미래 디스토피아 배경의 영화다. 누군가는 유토피아가 아니냐 물었다지만 내겐 디스토피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전 광고 타임에 휴대폰으로 마침 '어르신은 서서, 청년은 앉아서… 고향 가는 열차 '희한한 풍경''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누구나 코레일톡 앱으로 표를 끊고 실시간으로 잔여석까지 티켓팅하는 세상에, 어르신들은 앱은커녕 역사에서 긴 줄을 서고도 결국 자리를 얻지 못해 표를 아예 사지 못하거나 그나마도 겨우 입석을 탄다는 기사였다.
이런 기사나 영화나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게 된다. 365일 24시간 품에 갖고 다니는 당신들의 휴대폰에서마저 기능을 찾지 못해 자식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게 요즘 부모님들이다. 얼마 전 상견례 때문에 표를 끊을 일이 있었는데 역시나 부모님은 앱 사용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아서 일방적으로 끊어주기보다 하나하나 순서를 알려 드렸지만, 그다음번 표를 끊을 일이 있을 때 여전히 어려워하셔 전화를 하면서 원격으로 알려 드렸다.
그래서일까, 75세가 훌쩍 넘은 <플랜 75세>의 주인공 미치가 돋보기안경을 끼고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미치는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을 여전히 할 수 있고 좋아한다. 자신을 위해 한 끼 맛있게 차려 스스로 대접할 수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볼링장에 가서도 처음엔 쭈뼛 거리지만 이내 즐겁게 스트라이크에 성공한다. 그러나 미치는 이력서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결국 플랜 75를 신청하고 만다.
요즘 우리의 상상엔 아이들이 없는 만큼 노인들도 없다. 볼링장에 앉아 스트라이크를 치는 노인,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노인, 피시방에서 즐겁게 게임을 하는 노인. 돌아보면 그런 공간에서 쉽게 노인들을 지운다. 그러니 코레일톡을 사용하는 노인이나 사용하지 못하는 노인이나 상상 속에 들어오지 못한다. 당장에야 이런 기술은 내게 편의를 주지만 20년, 아니 이 속도라면 10년만 지나도 불평등으로 다가올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나도 결국 늙을 텐데.
<플랜 75>은 예고편에서 이 영화가 '예언이 아닌 경고이길 바란다'라고 말한다. 노인들이 앱을 사용하지 못해 그 어떤 자리도 예약하지 못하는 것, 오로지 키오스크만 쓰는 가게에서 아무런 주문도 하지 못해 걸음을 돌리는 모든 선택이 자의적 선택이 아닌 것처럼, 75세가 되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 역시 진짜 자의적 선택은 아닐 거다. 볼링장에서, 영화관에서, 식당에서 점점 사라지는 노인의 모습은 결국 몇 십 년 뒤의 내 모습일 테고, 그래서 나는 정말로 나의 나이 듦이 두렵다. 내 몸의 노화도 두렵지만, 사회적으로 지워지는 것이 더더욱 두렵다. 이런 사회에서 플랜 75가 예언이 아닐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