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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19. 2024

10년 전의 유럽과 지금의 유럽

가장 달라진 건 나

스물세 살의 유럽 여행은 행복했으나 많은 부분에서 고달프고 두려웠다. 돈 한 푼 벌지 않던 교환학생 시절, 유럽의 물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 제대로 된 끼니를 사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트에서 바게트를 사 하루 종일 뜯어먹거나 그나마 케밥으로 한 끼를 때우곤 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외식을 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건 기억에 별로 없다. 꼭 유럽이어서가 아니었으니까. 한국에서도 학교 주변의 저렴한 식당을 제외하면 번화가에서 외식을 즐겨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지금만큼 식문화 경험이 적었으므로 크게 아쉬울 기준조차 없었기 때문일 테다.


그보다 더 고달팠던 건 인종차별이나 소매치기 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물론, 인종차별이나 소매치기는 지금도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만 왜인지 그땐 필요 이상으로 더더욱 움츠러 있었다. 더욱 두려웠다. 파리나 로마처럼 악명 높지 않은 곳에서도 몸이 자주 앞으로 둥글게 말렸다. 주머니를 늘 비우고 쉴 새 없이 사방을 경계하고 앞섬을 모으고 캐리어를 꽉 쥐느라 때론 충분히 주변을 누리지 못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도 인사와 미소 따윈 건넬 수가 없었다. 혼자라서 갈 수 없는 곳이 있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무언가 달라졌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의 가격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도 먹고 싶은 것들을 시킬 수 있다. 대신 음식에 대한 불평이 늘었다. 기준이 생겼기 때문인 걸까. 어쩌면 십 년 전보다 더 잃을 게 많은 지금, 거릴 걷는 지금 내 모습은 더 이상 둥글지 않다. 쓸데없이 가까이 오겠다면 나도 견디지 않겠다. 인종차별에도 느긋해졌다. 어쩌라고 같은 마음이랄까? 오기처럼 쉽게 지지 않는 마음이다. 귀한 시간 내 짧은 일정으로 달려온 직장인의 투지일까. 이딴 것들로 나의 여행을 망치지 않겠다. 나는 여기선 이방인이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뭐 이런 건가. 실수를 해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도 한 몫한다.


무튼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두 번의 유럽 여행을 하며 참 좋아졌다고 느낀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좋았다. 10년 뒤인 지금의 나는 이렇게 돼 버렸다. 그간의 경험과 교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그간의 경험과 교훈이 생겼음에 감사한다. 무엇보다 조금 편히 마음을 내려놓고 어깨와 가슴을 펼 수 있다. 주변을 좀 더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여행이 좀 더 가뿐하다. 십 년 뒤엔 또 어떤 변화를 느낄까, 그간의 어떤 경험이 어떤 나를 만들어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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