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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27. 2024

아무튼 우리는 평소와 같고

결혼을 했다

여느 평소처럼, 늦게 자지 말고 지금 빨리 누우라고 재촉하는 통에 보던 인강을 닫고 옆에 누웠다. 둘이 좁은 방에 놓인 슈퍼 싱글 침대에서 꼭 붙어 자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넓은 방에 무려 퀸 사이즈의 침대에서 잔다. 근데도 매일 그러듯 또 가까이 붙어 서로 다리를 포개고 팔을 각자의 가슴에 올렸다 내렸다 장난을 치다 가까이 안았다가 얼굴을 마주 보고 장난을 쳤다가 또 갑자기 밀치며 멀어졌다 한다.


평소와 같다. 결혼식을 마쳤고 10일의 긴 여행-인데 이제 신혼여행이라 불리는-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 둘도, 둘의 집도 그대로다. 결혼 전의 우리와 결혼식과 결혼 후의 우리가 마치 길게 이어진 연대기표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뚝뚝 잘라낸 것처럼, 자른 다음 그 사이 결혼식을 빼고 이어 붙어도 모를 정도로. 여느 날처럼 평소와 같다. 쩨끔 다른 게 있다면 ‘남자친구’라 지칭하는 내 말에 ‘이제 남자친구 아니잖아요ㅎ’ 라던 동료의 말 정도? 또는 또 하나의 가족 카톡방이 생긴 것?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다른 큰 변화가 하나 생각난다. 바로 이혼이다. 사실 9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몇 년 째부터는 헤어짐이라는 게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이미 반은 부부 같았던 걸까. 그 덕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럼에도 연인은 늘 헤어짐이 가능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안다.


남.. 편..(?????우웩)의 발에 내 발을 포개며 생각한다. 부부도 헤어질 수 있다. 다만 이제는 헤어짐뿐 아니라 이혼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는다. 과연 헤어짐에서 이혼으로 바뀐 그것은 이혼이기에 더 어려울까? 글쎄다. 헤어짐도 합의 헤어짐이 있고 일방적인 헤어짐이 있듯 이혼도 합의 이혼이 있고 이혼 소송이 있는 거겠지. 안 해봐서 어려운지 안 어려운진 모르지만 그래도 헤어짐보다야 지난하고 복잡하겠지.


아무튼 이 제도에 빌어 우리의 헤어짐이 한층 어려워진 것에 약간 감사하기로 했다. 쓰고 나니 약간 미저리 같지만 어떤 이들은 이러한 제도의 그물망을 위해 결혼하는 게 또 아니겠나. 모로 누운 반려인을 꼭 껴안으며, 아무튼 우리는 평소와 같지만 그래도 결혼하길 잘했다고. 너도 나도 집도 주변도 모든 게 그대로지만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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