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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Jan 13. 2023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을 땐 움직이는 것을 본다

@Hanabi

내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걸 잊을 때가 있다. 누군가의 자식, 친구, 연인, 직업인 등의 역할에 헌신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렇다. 이런 시기에는 새끼발가락을 문지방에 찧는 고통 정도는 느껴야 생명력을 알아차린다.


살아 있음은 간소하게도 그저 ‘움직이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은 자면서도 숨을 쉬느라 몸통을 움직인다. 고래는 번식을 위해 대륙을 이동한다. 애써 정리한 잔디도 금세 제멋대로 자란다.


강아지 장난감이 아무리 신명 나게 고개를 흔들어봤자 건전지 하나만 빠지면 잠잠해진다.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력을 감지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찾을 방법이 궁금하겠지만, 그냥 새것을 구하자. 잘은 몰라도 우주는 우리를 무한 동력의 에너지를 사용해 생명력을 감지하도록 설계하지 않은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애쓰고, 정 안 될 땐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알아차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일종의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고된 일이면서, 생동하는 삶을 살아갈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흐릿할 때, 하지만 도무지 그 느낌을 되찾을 방법을 모르겠을 땐 움직이는 것을 본다. 점퍼에서 빠진 솜털이 부유하는 모습, 곡선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힘껏 기지개 켜는 고양이, 긴장으로 바르르 떨리는 손. 움직이는 것을 유의미하게 소화하는 건 완전한 내 몫이어서 많은 날을 별 소득 없이 보냈다. 그러나 종종 세상에 움직이는 것이 넘쳐난다는 사실만으로 괜찮아지는 고마운 날도 있었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하고 싶을 때도 다정함을 지키려고 애쓰면 그런 좋은 일이 생겼다.


나는 생명력을 감지하는 센서를 귀걸이 뒷마개만큼이나 잘 잃어버린다. 가끔은 이런 연약함이 기가 막힐 만큼 맹랑하다. 연약하기 때문에 잘 구부러진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잘 구부러지기 때문에 감정의 연약한 부위를 긁으며 반대로 달리는 거대한 매일을 감당해 낸다. 때론 그 거대함이 지나쳐서 온몸을 아주 납작하게 굽혀야 하지만, 그럴 때조차 나는 움직이는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결국 ‘난 대단해. 난 강하진 않지만 포기하지도 않아’라고 나를 칭찬하고 만다. 구부러지는 것이 뭐 대수냐며 눈썹을 치켜들 만큼 배짱을 부릴 수도 있게 됐다. 이렇게 된 걸 보면 꾸준히 구부러지는 것이 나를 지탱한 게 맞다. 자주 그 느낌을 잊긴 해도, 기어코 다시 움직이는 나라서 다행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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