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우정을 다룬 시리즈나 영화가 눈길을 끈다. 생각해 보니 30대가 되면서부터다. 내게 30대란 ‘친구 없는 시기’다. 있던 친구를 잘 지키긴커녕 절교로 30대의 문을 열었으므로...
교복 입는 시기엔 시시콜콜한 농담만 해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20대엔 친구를 만들고 싶으면 술 한 잔 기울이면 됐다. 30대가 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친구를 만들 수 있는지 점쟁이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다. 직장 동료와는 동료 그 이상이 되기 어렵다. 취미생활을 하다가 누군가를 만나도 이미 친구가 있거나, 아니면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애가 있으면 산후조리원 동기나 어린이집 맘들이랑 친구가 될 수 있다던데, 친구 만들자고 애를 만들 순 없으니 그냥 포기하고 살아간다.
나에겐 10년 넘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아니,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세월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좁고 깊은 관계를 지향하는 내게 손절은 이직이나 결혼처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 친구와는 오래된 사이이기도 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래야만 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각기 변한 우리는 더 이상 전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같이 있을 때는 꼭 한쪽 다리가 없는 테이블에 그 누구도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차려놓고 상을 엎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 같았다.
나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했던 친구를 울타리 밖으로 끌어내는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 관계가 오랜 시간 내 마음을 갉아먹었으므로 끝내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행동에 옮기고 나니 가슴팍에 총이라도 몇 발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정을 주제로 하는 영화와 시리즈를 보고 또 봤다. 이젠 진짜 혼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기 위해 미녀삼총사와 바그다드 카페와 스위트 매그놀리아로 위장해야 했다.
어디선가 나이가 든다는 건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젠 그 말이 좀 슬프다. 어째 나이가 들수록 잃는 친구도 많아지므로 나 자신과 가장 친해질 수밖에 없단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결국 진짜 친구 하나 없는 찐따가 되고 마는 건가.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찐따라고 느끼는 또 다른 누군가와 서로 의지할 수도 있겠다. 당근에 30대 전용 친구도 팔았으면 좋겠다. 친구가 없어서 설마 내가 찐따인가 싶은 분, 저와 친구 하실래요? 아, 보험이나 다단계, 사이비 종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