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 없이 쓴다. 나와 당신과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
뉴스가 시끌시끌 하길래 검색 좀 해봤더니, 낙태죄와 관련된 재판을 다시 한단다. 그리고 어제(4/11) 헌법재판소는 66년 동안 유지된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뉴스에선 ’낙태’라는 행위에 걸린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지식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네 마네 하는 게 좀 우스웠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생각한다고? 청바지 위에 빤쓰를 입은 것 같은 이 느낌, 어쩔 거야. 껄껄~ (혹시 이에 대해 한 수 가르쳐주실 분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십사…)
철학적이고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고, 일단 보고 듣고 경험한 ‘여자들’의 이야기들부터 해보기로 한다.
여자 A는 명절 때마다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처음엔 간지럼을 태우거나 신체를 톡톡 건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으니 나중엔 쓰다듬고 만지기까지 했다. 장난으로만 여겼던 여자 A는 점점 대범해지는 삼촌의 행동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걸 확 엎어버려? 아니야, 일단 참아보자. 즐겁자고 모인 명절에 찬물 끼얹을 순 없어…’
여자 A는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고 싱크대 앞에 선다. 명절 때마다 여자의 손을 대대로 거쳐 행해진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기 위함이다. 한창 수세미질을 하던 중 갑자기 삼촌의 손이 가슴께로 불쑥 들어온다. A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씨발, 지금 어딜 만져?”
가족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꾸준히 성추행 당해 왔다는 사실을 고백한 A. 돌아온 건 ‘삼촌이 조카 예뻐서 좀 만질 수도 있지!’라는 대답이었다.
여자 B는 어린 나이에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 믿었던 남자친구는 아이를 지우라며 B에게 돈을 쥐어줬다. 수술 후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 B의 남성 편력은 갈수록 심해졌고, 덕분에 ‘걸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B는 같이 잔 남성들에게는 아무 말 않으면서 자신은 ‘걸레’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B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여자들 역시 B를 욕하지만, 가끔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여자 C는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한국의 페미니즘은 너무나 과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날 입사지원을 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대표가 대뜸 ‘남자친구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얼마 전 헤어졌다고 대답하며, 그건 왜 물으시냐 반문했더니 ‘여자들은 결혼 때문에 회사를 쉽게 나가니까’ 그렇단다. 돈이 궁해 별 수 없이 입사해 일하면서, C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왜 이걸 내가 해야하지?’였다. 본 업무 외에 커피 심부름과 사소한 청소, 방문객 응대 등 모두 C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 상사의 게으름으로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야근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사직서를 쓰며 다시는 남자친구 있냐고 묻는 회사에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가 생긴 C. 평소 칠칠맞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 C는 자주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다치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는 ‘아 여자가 왜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하며 다그치듯 걱정했다. C는 걱정해주는 남자친구에게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여자인 것과 칠칠맞은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고 싶다.
여자 D는 어린 시절 성폭행 경험이 있다. 첫 연애 상대이자 첫경험 상대였던 남자친구는 의심이 많은 성격으로, D의 처녀막이 없는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결국 남자친구에게 유년기 성폭행을 당해 처녀막이 파열되었다고 털어놓았지만, 처음엔 수긍하는 듯 하더니 나중엔 ‘정말 내가 처음이 맞냐’며 또다시 의심했다. D는 성폭행을 당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지만, 이런 일을 당하니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 더 강하게 저항했더라면’ 등의 자기비난을 하게 되었다. 이후 남자친구가 그의 친구들과 메신저로 자신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D. 이별 후 D의 머릿속에는 ‘남자는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명제가 자리잡힌다.
이외에도 개인의 신변 보장 등을 염려해 써넣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것만 수십 가지에 이른다. 내가 여성에게 유리하도록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이제 이런 일은 없다고? 여자든 남자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선 ‘나는 여성들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포용력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해볼 것을 권한다. ‘남자가~’, ‘여자가~’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자신이 강간 피해자임을 털어놓을 여자는 없다.
난 앞선 이야기들이 결코 ‘낙태죄’라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낙태죄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려는 걸음을 시작했을 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진짜 변화는 ‘낙태죄가 폐지됐다’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낙태를 고민하거나 경험한 여성에게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로 가늠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성별같은 건 옷을 살 때나 떠올리는 수준이었으면 한다. 내 욕심이 너무 과한 건가.
아무튼, 적어도 청바지 위에 빤쓰를 입는 일은 없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