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향을 기억한다.
남들보다 후각이 민감하다. 다시 말하자면 냄새를 잘 맡는다는 이야기다. 음식물이 상하기 시작했을 때, 오래된 기름을 사용한 음식을 만났을 때 내 코는 진가를 발휘한다. 비밀이라는 양념의 재료의 절반 가까이를 맞추는 장면을 본 친한 식당 사장님은 '개보다 더 개코' 라는 푸념 섞인 별명을 지어줬다.
그래서였을까. 예전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향수' 라고 대답했다. 처음으로 '향' 이 주는 행복에 빠진 때였다. 여자친구한테 받는 첫번째 선물이라면 좀 있어 보이는 선물이 좋지 않겠느냐는 치기 어린 마음도 살짝은 들어 있었다.
당시의 여자친구는 꽤나 고민했다. 지금까지 듣도 보지 못한 남성용 향수를 달라니. 고심 끝에 인터넷에서 좋은 평을 받은 향수 하나를 골라 선물했다. 문제는 향수는 개인별로 선호차가 심하다는 점이었다. 시향해보지도 못한 채 평만 보고 구입한 향수는 내 취향과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그 향은 마치 교복을 입고 다니는 고등학생에게서 느껴지는 낭낭한 아재미랄까.
자연스럽게 자주 뿌리지는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애를 만날 때면 꼭 뿌리고 만났다. 향수 잘 쓰고 있길 기대할 친구에게 약간의 죄책감이 섞인 기분으로 방 안에서 혼자 머리를 매만지며 향수를 뿌렸다. 방 안이 곧 그 향으로 가득 찼다. 그 향을 들이마셨다.
우리는 강남역 어디 출구에서 주로 만났다. 매번 그 애는 내 손을 만지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환히 웃으며 내가 준 거 뿌리고 왔네! 하며 춥다고 팔짱을 꼈다. 그랬기에 그 해의 겨울은 따뜻했고 고마웠다. 그 아재미 낭낭했던 향수조차도 고마웠음은 물론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친구의 표정조차 잊어가는 이젠 뿌릴 것들이 많다. 여고에서 걸크를 담당하고 있는 동생이 후배들한테 선물받았다고 건내준 바디 미스트부터 뉴욕에서 가져온 조말론 향수. 도쿄 어느 공방에서 조향사와 함께 만든 수제 향수까지. 그럼에도 방을 정리하다 찾은 그 향수는 그 이상 무언가였다.
가만히 서서 향수 병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칙 칙 소리를 내며 향수를 뿌렸다. 그때와 그대로인 그 향이 방 가득 퍼졌다. 많은 것들이 달라진 지금 그대로인 건 그 향뿐인 것 같았다. 어느새 거울엔 교복을 입고 있는 내가 보였다.
"거긴 살 만 해?"
하고 묻는 내게 난 다 알면서 묻냐는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친구는 과연 그 향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어쩌면 우린 그 별로인 향 하나 서로 좋아하는 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좋아했으니까. 그랬으니까 가능했을 수십 수백가지 일 중 하나였겠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쌀쌀한 늦가을 공기 위로 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둥실둥실 떠가는 구름 어딘가에서 그때의 웃음을 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