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초등학생 아들의 농촌 유학을 시작하며
빌딩 숲으로 우거진 아파트와 상가. 그 안을 맴맴 돌며 생활하던 초4, 초1 두 아들을 농촌으로 유학을 보냈다. 세 아들을 키우며 육아휴직을 쓴 남편의 결단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했지만 농촌 유학 설명회를 다녀오고, 학교 탐방을 하더니, 전라도와 강원도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다 전라북도 순창을 택했다. 학교는 전교생 19명이 있는 아담하고 귀여운 학교였다. 우리 두 아이가 합류하니 이제 전교생은 21명.
한 반에 25명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은 한 반 전체 인원도 되지 않는 시골학교로 전학을 했고, 지난 금요일에 대망의 개학을 했다. 여름방학 내내 서울집의 살림을 반토막 내어 순창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우리 부부는 해냈다. 24개월 된 막내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나는, 세 명의 남자를 순창으로 떠나보냈다.
서울의 사무실에서 자판을 두드리다가 남편에게 온 사진을 보며 낯설면서도 기쁘고 대견했다. 아이를 키우며 삶의 공간을 옮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모일수록 용기를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이들은 집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서 뛰놀았다. 잔디밭에는 잠자리는 물론 청개구리가 뛰놀았다. 초1 둘째는 쉴 새 없이 잔디로 뛰어나갔고, 아래층에 사는 아이는 잠옷 바람으로 올라와 수시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너희들은 도대체 몇 시간 만에 친구가 되는 거니?” 했지만 원래 알던 사이처럼 그저 정겹다. 너희는 텃세 부리지 않는 나무와 풀을 닮았구나.
두 아이들의 짐을 풀고, 여러 번 뜨겁게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작별의 시간이 왔다. 매주 한 번씩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자 약속했지만 어른의 세계는
복잡하고 일도 많아서 그렇게 자주는 못 올 거 같았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24개월 막내는 그저 형들이랑 더 놀고 싶어서 마당 앞에 작은 풀장에서 물놀이가 계속하고파서 서울로 올라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자연의 품에서 삶을 만끽하길... 훗날, 이 모든 것이 추억으로 알알이 박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