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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06. 2024

미국 학교의 선물 문화

미국에서 엄마의 역할은 상상 그 이상으로 많다. 학교 급식이 부실하니 아침마다 점심 도시락을 싸고, 학원 봉고차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모든 액티비티를 위한 라이드를 하고, 학교의 온갖 이름 붙은 날에는 챙겨야 될 준비물도 많다. 어떤 주는 Spirit week이라고 해서 매일매일 학교에서 이벤트가 벌어진다. 이런 식이다.


월요일은 PJ Day - 잠옷 입고 가는 날

화요일은 Freaky hair day - 머리를 일부러 괴짜스럽게 하고 가는 날. 인스타그램에 #Freakyhairday라고 쳐보면 정말 머리 위에 컵라면을 올려두는 등 부모들의 손재주 대잔치가 열린다

수요일은 Sports day - 축구복, 하키 티셔츠 등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경기 옷을 입고 가는 날

목요일은 Crazy Hat day - 특이한 모자 쓰고 가는 날

금요일은 School color day - 학교를 대표하는 색을 입고 가는 날


crazy hair day 아이디어들





고학년이라면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선택 사항이지만, 이제 초등학교 갓 입학한 킨더, 1학년, 2학년 같은 저학년의 경우에는 엄마가 깜빡하면 우리 아이 혼자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오게 되는 불상사가 생겨버린다. 나도 미국에 처음 와서 PJ Day가 (설마) 파자마 데이라는 걸 몰라 우리 아이 혼자 드레스 입고 유치원에 간 적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피넛버터&잼’을 먹는 날인 줄 알았다…)


특히 12월은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 학교에서 온갖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준 높은 유치원 학예회를 상상하면 안 된다. 미국 유치원, 초등학교의 콘서트는 부모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이 연습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첫째는 거의 두 달 전부터 매주 음악 시간에 이 콘서트 노래 연습을 했고, 집에 와서도 심심하면 노래 틀어놓고 열심히 연습했다. 꽤 곡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4살 둘째가 흥얼거리며 따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공연 내용이 어설프다고 의상까지 어설플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최소 한 번씩, 합창단 하는 첫째의 경우에는 네다섯 번 열리는데 그때마다 연말 무드에 어울리는 빨강 의상을 준비해줘야 한다. 물론 같은 옷을 주야장천 입혀도 되겠지만, 또 엄마 마음이 그렇지 않다. 동네 마트인 Target, 각종 Spa 브랜드를 뒤지며 우리 아이만의 '특별한' 빨간 옷을 찾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골치가 아프지만, 또 연말이라 그런지 이마저도 즐겁다.


얼마나 많은 빨간 옷을 공수했는지 내 사진첩을 휘리릭 올려보니 모두 레드


또 중요한 연말의 엄마 역할 중 하나는 선생님들께 선물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학교 선생님들께 선물을 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는 반대다. 크리스마스에 ‘선생님께 선물을 안 하는 것이 금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통 가장 선생님들이 선호하는 것은 Amazon이나 Target 기프트 카드인데 여기서 나오는 나의 직업병. 이 와중에 또 'Stella 엄마 센스 있다'란 소리를 듣고 싶다. 덜렁 기프트 카드만 드리는 건 별로인 것 같아 여기에 뭔가 선생님이 좋아하실 선물을 정성스럽게 더해 포장한다. 올해는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화장품 브랜드 Fresh에서 나온 선물 세트를 함께 드렸다. 역시,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고 온 날 아이 얼굴에 함박웃음이. 올해도 왠지 성공한 것 같다.


보통 크리스마스 선물은 담임 선생님들께 드리고 끝내도 되지만, 특별히 올해 내 아이를 이뻐해 주고 잘 돌봐주신 분들께도 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예를 들면, 아침 등굣길 신호등 안전 선생님, 저녁 돌봄 교실에 멀리서 다가오는 내 얼굴만 봐도 우리 아이 불러주시는 선생님 등. 그런 분들께는 가벼운 금액이 들어있는 스벅 카드를 드리는데 참 그럴 땐 내 마음이 기쁘다.


재밌는 건 선물을 받으신 선생님들께서 그날 저녁이나 그다음 날이 되면 Thank you 카드를 적어서 보내주신다. '선물 잘 받았고, 고맙다',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다' 등의 간단한 감사인사다. 선물 금액 가이드는 도시마다 다르지만 상한선이 있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정도 수준을 서로 지키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시카고의 경우에 50불 선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엔 워낙 싱글맘, 싱글대디가 많기 때문에 부모 각자 한다고 하면 아이당 max 100불 정도가 상식선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내가 뭐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보통은 25~50불 사이의 선물을 드리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에서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 엄격하게 금지된 건 예전의 촌지 문화 때문이겠지. 상식선에서 그 감사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로서는 좀 번거롭고 숙제 많은 12월이지만, 난 일 년 동안 부모를 대신해서 내 아이를 예뻐해 주고 돌봐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와 그 정도 선물을 드릴 수 있다는 건 좋다고 본다.


선생님들이 답장으로 보내주신 thank you 카드



어젯밤 오랜만에 마트에 가니 벌써 스멀스멀 봄 분위기가 올라온다. 한 시즌 빨리 앞서 가는 걸로 유명한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2월 밸런타인 시즌을 준비한다. 빨강 초록이던 초콜릿들이 어느새 핑크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꽃 코너에서는 Spring fling이라는 봄꽃 부케가 등장했다. 아직 시카고 겨울은 초입이라 믿기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런 컬러들은 내 마음에 봄을 재촉한다. 자, 이제 난 또 곧 다가올 밸런타인데이, 반 아이들에게 나눠줄 구디백 검색에 돌입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에필로그

거의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내 브런치.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브런치에는 무림고수 작가들이 엄청 많아져서 사실 좀 쫄아있었다. 그래도 지난 일주일 꾸준히 글을 발행한 결과! 감사하게도 오늘 아침 브런치 스토리 메인에 내 글이 소개되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팀! 다시 어깨 쭉 펴고 열심히 써볼게요! 에세이스트 스토리 크리에이터 뱃지를 받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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