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키장 데이케어 이야기
스키장에 유치원이 있다고요?
그렇다. 캐나다 스키장엔 스키 캠프에 갈 수 있는 나이(보통 만 6세)가 되기 전의 어린아이들이 갈 수 있는 스키장 데이케어가 있다. 한국으로 치면 유아원 혹은 놀이학교 같다고나 할까? 말귀를 좀 알아듣고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만 3살부터 만 6세까지 갈 수 있다.
Daycare :: Sunshine Village (skibanff.com)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스키장을 간다는 건 정말 말이 쉽지 극기 훈련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스키장에 도착하기까지의 길도 험난하거니와, 무거운 짐들과 복잡한 렌털샵,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겨울의 추위에 시작도 전에 진이 빠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남편이 캐나다로 스키 타러 가자고 했을 때 크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런데 캐나다 스키장에 우리 막내가 갈 수 있는 데이케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오전, 오후 각 2시간씩 스키 수업도 해준다고 한다. 아침 8시 반부터 스키장이 문 닫는 4시까지 하루종일 아이를 맡길 수 있다. 부모와 나머지 가족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봐주고, 점심도 주고, 간식도 준다고 한다. 이런 행운이!
스키장 유치원의 하루
우리가 갔던 선샤인 리조트의 유치원은 곤돌라 승강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그 뜻은, 무거운 스키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느라 진을 빼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더 좋은 점은 일반 스키 캠프의 경우에는 직접 개인이 스키를 가져가거나 렌털해서 준비해야 되지만, 여기 유치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 유치원 입구에 어린이용 스키가 사이즈별로 있고, 렌털 비용도 따로 없이 데이케어 비용에 다 포함되어 있다. 하루 유치원 비용은 캐나다 달러로 200불, 미국 달러로는 150불 정도다. 미국의 하루 데이케어 비용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수준이다.
유치원의 하루는 보통 이렇다.
8:30-10:00 자유 놀이 시간
10:00-12:00 오전 스키 레슨
12:00-13:30 자유 놀이 시간
13:30-15:30 오후 스키 레슨
15:30-16:00 자유 놀이 시간 & 간식
자유 놀이 시간은 말그대로 유치원 실내를 돌아다니며 마음껏 놀 수 있다. 혼자 색칠공부를 해도 되고, 선생님과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새로 만난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하기도 한다. 하루에 보통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열댓 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첫날은 나도 걱정이 돼서 스키를 타다가 중간중간 몰래 가서 아이가 안전하게 잘 있나 살펴봤다. 아무래도 좀 내성적인 성향인 것 같은(아직은 잘 모르지만) 우리 집 아이는 뭐 혼자 놀고 있기는 했지만, 씩씩하게 밥도 잘 먹고 내가 계속 쳐다보니 금방 데려가는 줄 알았는지 손을 내저으며 '엄마 이따가 와!'했다.
스키 레슨은 유치원 바로 옆에 있는 낮은 언덕에서 진행이 된다. 아이 하나 혹은 두 명 당 한 선생님이 가르치시는데 영국, 호주, 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다. 아마도 캐나다가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잘 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일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얼굴엔 다들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해보였다. 중간중간 아이들이 좋아하는 Baby Shark 노래도 틀면서 춤도 추고, 익숙한 노래에 아이들도 신나보였다.
스키장 유치원의 입학하고 싶으면?
우리 막내는 이틀 연속 스키장 유치원을 다녔다. 사실 유치원이 이렇게 잘 되어있을 줄 알았으면 우리는 5일의 밴프 여행 중에 며칠을 더 스키장에 머물 수 있었을 것 같다. 둘째 날 아침, 아이는 유치원에 빨리 가겠다며 방방 뛰었고,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유치원으로 혼자 달려 들어갔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내가 봤을 때 미국이나 캐나다나 유치원이 한국에 비해서 시설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선생님이 엄청 친절하신 것도 아니고, 대단한 걸 배우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유치원을 참 좋아한다. 언제 그 비결을 한 번 연구해 봐야겠다.
유치원 입학은 정말 간단하다. 스키장 리조트 티켓을 살 때 그냥 예약을 하면 된다. 스키장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아이가 스키를 빌릴 수 있도록 발 사이즈만 체크해 주면 그걸로 끝. 아무 걱정 말고 하루종일 스키를 즐기다가 잊지 않고 4시까지만 데리러 오면 된다.
스키장 유치원, 고마워요!
스키장 유치원 덕분에 우리는 앞으로 매년 가족 다 같이 멀리 좋은 스키장으로 스키 여행을 떠나는 것을 드디어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유치원이 있는 걸 몰랐을 때만 해도, '정말 내 인생은 이제 아이들이 커기 전까지 아스펜, 휘슬러 같은 스키장으로 스키 타러 가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조금만 미리 찾아보면 각 스키장에서 이렇게 훌륭하게 운영하는 데이케어를 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심지어 아이를 하루종일 실내에 맡겨두고 죄책감을 얻는 게 아닌,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스키를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하루종일 혼자 지낸 아이가 조금 안쓰러워서 30분 일찍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우리 가족 다 같이 스키 타기에 도전했다. 물론 막내는 남편과 끈으로 연결돼서 내려가는 거였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곳도 겁내지 않고 재밌게 탔다. 하루종일 경사 5도 정도로 보이는 작은 언덕에서 오르락내리락했더니 그새 스키가 익숙해진 모양이다.
정말 미국 땅에서 가족 하나 없이 육아를 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다. 아이를 맡기고 잠깐이라도 어디를 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스키장 유치원' 같은 육아의 치트키가 너무나도 반갑고 고맙다. 어린아이가 있어서 그동안 여행의 제약이 많았던 가족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런 '스키장 유치원'을 이용해 보라고 꼭 얘기해주고 싶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