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프 여행 3
내가 사는 시카고, 미국 중서부 지역은 대부분 평지이고 크고 높은 산이 없다. 그래서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지만, 괜찮은 스키장을 찾기 힘들다. 서울 근처의 곤지암, 양지 파인 리조트(아직도 있나?) 같은 느낌의 스키장뿐이랄까? 용평 느낌의 스키장을 가고 싶다면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된다.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콜로라도 아스펜, 베일, 잭슨홀 등이다. 정말 산골짜기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파크 하얏트, 리츠칼튼, 세인레지스 등 미국의 좋다는 호텔 브랜드들은 다 모여있을 정도로 인기 여행지다.(아쉽게도 난 아직 못 가봤다)
또 다른 선택지는 바로 캐나다다. 밴쿠버 근처의 휘슬러, 캘거리 근처의 밴프는 멀리 한국에서도 많이 오는 스키 여행지다. 스키장 자체로는 휘슬러가 좀 더 유명하긴 하다. 우린 이번에 밴프를 먼저 가보기로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너무 큰 스키장보다는 아이들 프로그램이 쉽게 잘 운영되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 스키보다 더 중요했던,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를 탔던 레이크 루이스가 바로 밴프에 있었다.
밴프에는 3개의 스키 리조트가 있다. 선샤인 빌리지, 레이크 루이스, 마운트 노퀘이, 이렇게 셋을 합쳐 Big 3라고 부른다. 통합 리조트권을 사면 이 세 곳을 자유롭게 오가며 스키를 즐길 수 있고 리조트 간 셔틀도 잘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여행 중 2일 스키를 타기로 했고, 막내 데이케어가 잘 되어있는 Sunshine 리조트에서만 타보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
SkiBig3.com – OFFICIAL Site for Banff Sunshine, Lake Louise, Mt Norquay
선샤인 리조트(Sunshine Resort)는 한국에 비해서는 무지하게 크지만, 그렇다고 무림 고수들만 타는 곳은 아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으니 어언 구력 35년이 넘었는데도 탁월한(?) 운동 신경 덕분에 초보 레벨, 용기를 내면 중급 레벨 정도를 탄다. 경사가 너무 있어서도 안되고, 보더들이 눈을 긁고 지나가도 안되고, 통로가 좁아서도 안된다. 동시에 외국 스키장 특유의 나무숲길 스키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고, 직활강을 할 수 있는 나지막하고 긴 언덕도 있었으면 좋겠고, 금강산도 식후경, 맛있는 음식도 파는 곳이면 좋겠다. 내가 생각해도 참 까다롭다. 그 모든 희망사항을 다 이뤄줄 수 있는 곳, 거기가 바로 선샤인 리조트다.
주차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20분을 올라가면 산 중턱에 있는 스키장에 도착한다. 산 3개에 수준별 리프트가 있는데 워낙 커서 길게 줄 안 서도 금방 탈 수 있다. 캐나다 스키장은 처음이라 겁을 먹었는데, 초보자들도 충분히 쉽게 즐길 수 있다. 통로도 넓고, 경사도 적당해 재밌게 탈 수 있다. 설령 넘어진다고 해도 무릎까지 쌓인 눈 덕분에 푹신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코스는 곤돌라 타고 올라왔던 산길을 스키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다 내려갈 때까지 30분 정도는 걸리는 곳인데, 중간중간 카페도 있고, 쉬는 곳도 있어서 그렇게 힘든 줄 모른다. 여기 하이라이트는 바로 조용한 나무 숲길이다. 양쪽 긴 나무 숲길 사이로 쌩하고 스키 타고 지나는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경사가 완만해서 S자로 돌 필요도 없고, 그냥 허벅지 힘을 빼고 스키에 기대어 있으면 앞으로 바람을 가르며 밀려 나간다. 산 속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 멀리로는 로키 산맥이 보여 풍경도 일품이다.
나를 뒤따라오는 남편에게 "나 좀 잘 좀 찍어봐. 인스타에 올리게"했더니, 계속 찍어줄 테니까 나중에 잘 타 보이는 부분만 편집에서 쓰란다. 하하. 나중에 동영상 받아보니 딱히 잘라 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뭔 스키를 타러 거기까지 가나, 번거롭고 또 한 편으로는 괜히 겁도 났던 캐나다 밴프 여행. 좋았지만 한 번으로 충분한 곳이 있는 반면, 두고두고 또 오고 싶은 곳이 있다. 아마도 여긴 후자가 될 듯하다. 시카고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으니, 로키 산맥에서 스키타고 내려왔던 지난 주가 마치 전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