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며 내가 두고 나온 것
남편도, 아이도 없고, 챙겨야 할 건 오직 나 한 몸이었던 그 시절,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일이다. BMW 3GT 글로벌 론칭에 참여하러 기자들과 포르투갈 리스본 출장을 갔었다. 자동차 회사의 글로벌 신제품 런칭 행사는 이벤트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발하기도 하고 또 입이 떡 벌어지게 멋있는 것들도 많다. 생전 가보지 못했던 세상의 숨겨진 멋진 곳들도 발견하게 된다. 솔직히 내가 남편의 유학으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결정할 때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멋진 해외 론칭 행사를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니까.
유독 그 리스본 출장은 인솔해야 될 인원이 많았던 출장이었던 것 같다. 출장지에 도착하면, 내 개인 시간은 전혀 없다. 난생처음 와본 이국적인 도시에서 한 시간의 자유도 없다는 건 항상 아쉽긴 했다. 그래도 명동 사무실에 주야장천 앉아있는 것보단 이 쪽이 훨씬 나았다. 출장의 마지막 날 아침, 몇 시간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귀국 비행 편이 늦은 오후였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런 시간조차도 동행한 기자들이 원하는 액티비티를 하거나, 식당을 예약해서 함께 이동하거나 하곤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다들 피곤한지 호텔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자유 시간이다!
덜컹덜컹, 말로만 듣던 리스본의 노란 전차
완벽한 자유는 아니었다. 절반의 자유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리스본 구경은 하고 가야지' 하시던 기자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다행히 평소에도 나이스한 분이라 마음은 가벼웠다. 그래서 난 동네 산책보단 좀 더 재밌는 걸 해보자고 제안했다. 우린 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한 28번 노란 전차를 타보기로 했다. 덜컹덜컹, 노란 전차는 놀랍도록 언덕을 빠르게 오르내리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전차를 탔던 그날 아침의 설렘은 정말 10년이 지나도록 잊을 수가 었었다. 나중에 꼭 내 돈을 내고, 내 가족들과 다시 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때 그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게 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리스본 노란 전차 사진으로 바꿔둔지도 몇 년이 됐다.
노란 전차를 타러 언젠가 다시 리스본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뽀얀 먼지가 충분히 앉을 정도로 시간이 오래 지났다. 올여름, 아이들이 한국 할머니댁에 가고, 남편과 난 십 년 만에 둘이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이태리 로마였으나, 가는 길에 리스본을 하루 들리기로 했다. 남편은 내가 뭘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 뒤에라도 꼭 그걸 지켜주는 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지난 십 년간 그래왔다. 난 항상 그 점을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이번에도 내가 리스본에서의 노란 전차가 타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래된 내 소원을 하나 이루게 됐다. 퇴사를 하면서 두고 나온 많은 것 중, 다시 꼭 돌아오고 싶었던 그 순간을 마침내 만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