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는 예수님에게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부은 여인이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이 일을 두고 제자들이 비난하였지만 예수님은 이 일을 두고 칭찬하면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도 전파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미리 장사지낸 것이다라고 보기도 하고, 또 주님에게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이고 예배는 거룩한 낭비다 라는 관점에서 보기도 합니다.
저는 특별히 오늘 이 사건을 "영광"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여인의 머리를 "영광"의 상징으로 바라봅니다.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고전 11:15)
즉, 이 여인은 자신이 소유한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깨트려 주님께 드리고, 또 자신의 신체 중 가장 영광스러운 부위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립니다.
이 행위가 내포하는 고백은 "나의 가장 귀한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주님의 발에 붙은 오물을 닦아드리는 것 밖에 없다."라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지극한 겸손의 표현일 수 있으나 또 어찌보면 가장 "정직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광이라는 것은 그 정도도 과한 것일 수 있거든요.
이와 유사한 관점으로 표현된 내용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합니다.
요한이 환상중에 천국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24명의 장로가 금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그 곳에서 천상의 에배가 이뤄지는데, 그 중간에 그들은 일제히 자신의 영광을 상징하는 금관을 벗어서 주님의 보좌 앞에 드립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0~11)
그 장로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천국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정말 높은 자리에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들이 천국에 있을 텐데, 그 중에 단 24명만이 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그들도 주님의 영광 앞에 서게 되자 아무런 주저함 없이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영광의 상징 금관을 벋어서 주님 앞으로 드린 것입니다.
이 "드리다"는 헬라어로 "발로"인데, 드리다, 놓다라는 뜻도 있지만, 던지다의 뜻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전 번역인 개역한글에서는 관을 던지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도 NIV는 드리다로 킹제임스는 던지다로 번역했네요.)
그 영광이라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그 것을 돌려드리는 것 역시 합당하다는 표현인 것이죠.
우리의 영광이라는 것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존귀하게 여겨주신 것은 이 우주를 우리들과 함께 다스리길 원하시는 그분의 의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인간은 우리의 모든 것, 그 것이 아무리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그 영광의 주인인 예수님에게 돌려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그분의 발을 닦기에도 부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계 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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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살펴보기 (8) -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합니까?
계속해서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삼 일에 걸쳐 방문합니다.
첫날은 그냥 조용히 살펴보고 돌아가십니다.
둘째날은 성전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진노하시고 저주하십니다.
그리고는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무리들을 둘러엎으십니다.
그리고 셋째날 다시 성전으로 가실 때에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날에 예수님은 성전의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막 11:28)
이 세번째 방문을 통해, 예수님은 성전이 그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파괴되어야 마땅하며, 새롭게 다시 세워질 것을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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