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인 골로새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여기서 눈에 띄는 구절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댓가를 모두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남은 고난이 있다니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던 것일까요? 


성도의 고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고난을 당합니다. 특히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이는 세상이 예수님을 싫어하였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도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가 그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쓴다면 주님은 최후의 승리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2~23)


그리고 사실 이 성도들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한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롬 12:5) 우리가 교회를 위해,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은 예수님이 당하는 남은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평탄함만 있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많은 환란과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이미 이야기를 하셨죠.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 3: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고난의 자리에 초대하시는 것은 우리를 그분의 진정한 자녀로, 한 몸으로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주님의 영광에도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 가운에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힘내십시오. 주님이, 또 많은 중보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을 바라보며 이 시간들을 온전히 이겨내면 마침내 주님의 영광이 함께 할 것을 믿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유료 콘텐츠 구독자를 위한 추가 내용]


마가복음 살펴보기(12) - 열린 빈 무덤


마가복음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16장은 20절로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본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아주 초기의 마가복음 사본은 8절로 끝이 나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9절부터 20절은 그 이후 사본에서 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를 놓고 많은 논쟁들이 있어왔으나 최근에는 마가복음의  "원본"은 8절까지이고 나머지는 후대에 누군가가 덧붙였다는 것이 대다수의 학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료버전에서 다루게 됩니다.)


이 브런치는 스톤위키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지난 글 모음입니다.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은 유료 구독자분들에게 별도로 보내드리고,
일반적인 뉴스레터는 매주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정보를 보내드립니다. 
유료 콘텐츠는 월 5천원에 매주 1회 발송됩니다.

☞ (유료 구독) 뉴스레터 신청하기

☞ (무료) 뉴스레터 신청하기

☞ 스톤위키 둘러보기

☞ 스톤위키 인스타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