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홍해를 건너는 은혜,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

홍해를 건너는 은혜

  

구약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그 시대 히브리 민족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에 대한 그들만의 해석 등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비롭게도 신약으로 건너오면서 그 이야기들 중 많은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징 꿰어맞추기'가 과할 경우 신천지식 성경풀이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 과정에서 홍해를 건너는 것은 히브리 민족의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현시대를 살고있는 우리 신자들이 겪는 믿음의 여정을 나타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전서에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즉, 히브리 민족의 출애굽 사건과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과정이 동일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홍해의 사건은 신자가 믿음을 고백하는 '세례'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히브리 민족 전통 문화 속에서의 "바다"


히브리 민족의 전통 속에서 바다, 또는 크고 깊은 물은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과 세상을 다스리는 흑암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부터 하니님의 영은 (죽음의 영이 가득한) 수면위를 운행하시고(창 1:2)

천하의 물을 한곳으로 모아 바다로 만드시는데 (창 1:9) 

이때 하나님은 성경에서 최초로 "보시기 좋았더라(히브리어 '토브')"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0)



그래서 히브리 민족에게 바다는 알지 못하는 괴물들(베헤못, 리워야단 등)이 살아숨쉬는 죽음과 공포의 지역입니다. 요나는 그 깊은 바다 속에 잠겼다가 살아났으며,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욘 2:3)


그렇기에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 됩니다.

물론 지금 우리에게도 그것은 대단한 기적이지만 이 사실을 접한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는 일입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사망 권세를 발로 밟고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받았을 문화적 충격을 굳이 지금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비슷할까요?


'저 함경도 북쪽의 아오지 탄광촌에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

갑자기 하버드 출신 석학들도 하기 어려운 깊이있는 가르침을 전하고,

병자들을 낫게 하더니 어느날 마차를 타고 왔는데

그 마차 앞에는 염라대왕이 목줄을 차고 네발로 기면서 마차를 끌더라'


홍해를 건너는 은혜


이 홍해를 건너는 히브리 민족의 행적은 우리 믿는 자의 삶의 궤적과 유사합니다. 


사악한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노예로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과 권능으로 해방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의 백성이건 세상 나라 백성이건 관계없이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피한 사람은

누구든 사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나와 처음으로 마주친 곳이 홍해 바다인 것이죠.


그렇게 "죽음의 천사"의 공격에서 벗어난 히브리 민족은

"죽음"의 상징인 바다 속을 걸어나가며

옛 육신의 죽음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례'의 의미인 것이죠.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이나 우리 믿는 신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인생의 광야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유료 콘텐츠 내용]


가나안 땅을 향하여


하지만, 우리 인생의 목적이 광야에서 방황하다 끝나는 것이 아니듯, 이스라엘 민족의 목적도 광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다시 찾는 것이죠.


우리 신자들도 셰례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훈련받은 뒤에는 원래 우리에게 예비되었던 영역,

그러나 지금은 이방인들에게 빼앗겨 점령당한 그 영역에 들어가 영적 전투를 벌이면서 그 곳들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다시 한번 건너야 할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요단 강입니다. 

이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은 홍해를 건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홍해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반면, 요단 강을 건널 때에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료 콘텐츠로 발행됩니다.)

이 브런치는 스톤위키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지난 글 모음입니다.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은 유료 구독자분들에게 별도로 보내드리고,
일반적인 뉴스레터는 매주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정보를 보내드립니다. 
유료 콘텐츠는 월 5천원에 매주 1회 발송됩니다.

☞ (유료 구독) 뉴스레터 신청하기

☞ (무료) 뉴스레터 신청하기

☞ 스톤위키 둘러보기

☞ 스톤위키 인스타그램



작가의 이전글 광야에서 모세가 반석을 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