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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대말

성경에는 사랑에 대해 참 많이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사랑 그 자체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런데,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미움? 무관심? 다 맞는 말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반대말을 한번 볼까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성경에서는 사랑의 반대말이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과 떨어질 때, 우리에겐 두려움이 임합니다.


두려움

성경에서 "두려움"이 제일 먼저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요?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8~10)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이듯이, 두려움은 사탄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으로 변화시키지만 사탄은 두려움으로 사람을 억누르고 조종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억지로 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애쓰며 공부하고, 돈을 벌고, 돈을 벌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속마음을 감춘 채 사람들을 만나고 있나요? 혹시 두려움 때문은 아닌가요? 

뿐만이 아닙니다. 


신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섬깁니다."

벌 받을까봐, 지옥 갈까봐...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두려움에 삼켜진 우리는 하나님을 마냥 두렵게만 여기는 경우도 많은 것같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이미지는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라기 보다, 냉철하고 엄격한 축구선수단의 감독같은 이미지로 보는 경향이 많은 편이죠.

축구경기장에서 인상을 쓰며 선수들에게 고함을 질러대는 축구감독 말입니다.


"너 이녀석 자꾸 그렇게 할꺼야?"

"너 한번만 더 그러면 빼버린다!"

"야! 그것도 못해? 똑바로 하란말이야!!"


그런데 정말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그렇게 두려움으로 조종하는 분일까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그런 왜곡된 이미지는 우리가 그것을 우리 안의 두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아닙니다. 


애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사랑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한없는 사랑의 관계안에서 우리 인간과 교제하고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고 나신 뒤, "심히 좋았다(창 1:31)"고 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함께 교제하신 것이죠.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어떤 가요?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자 마자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임합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사랑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숨게 만듭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우리 스스로가 두려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숨는 것이죠. 왜 두려운가요? 무엇이 하나님의 그 끝없는 사랑을 우리로 가리우는 것인가요?


죄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두려워 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죄 앞에서 우리 하나님은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요?


'저 녀석 또 죄지었구만~! 에잉~!! 쯔쯧! 넌 그에 합당한 벌을 받거라!!' 
이러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담에게 가셔서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11절)


죄로 인해 이미 무너진 아담은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그 여자가 나무 열매를 줬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하와한테 물어보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와는 말합니다. "뱀이 그랬습니다."


여기까지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하나님은 죄를 지었다고 바로 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요하게 죄의 원인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죄짓게 만드는 가장 큰 원수를 밝혀내십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또 대대로 인간과 원수가 될 것이고,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를 밟을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면서 "죄를 대신할 누군가의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 가죽으로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시고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음으로써 죄를 가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보여주시는 "원시복음"의 내용입니다.


마치며


우리 인간은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따라오십니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는 분이시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려고 하는 분이 계신가요?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을 더 신뢰하면서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맞아주시고 안아주실 것입니다. 



[유료 콘텐츠 내용]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연약함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길 힘을 두가지 방법으로 주십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료 콘텐츠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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