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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Oct 22. 2022

지구의 온도를 말하다 <디어 마이 라이카>

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

“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 이만큼 라이카가 속했던 세상과 벨카가 남고자 했던 지구의 온도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난 문장이 없을 것 같다.  
- 지구의 온도를 말하다 <디어 마이 라이카> 중에서


전반적으로 극에 이입할 수 있는 외로움의 요소들은 내 안에 있는 때가 많다. <디어 마이 라이카>도 그런 극이었다. 첫 회엔 극이 어수선하단 평도 많았지만, 난 관객이 어수선해서 더 화가 났었다. (분명 자리 잡을 땐 나 한 자리였는데, 많고 많은 자리 중 왜 하필 옆자리에서 집중 못하고 계속 꼼지락대시는지 여쭤보고 싶었다..)



[스포 있음]



<디어 마이 라이카>는 먼 우주 시대에 냉동인간 실험 대상이 된 아버지, ‘라이카’와 라이카의 우주청 수석 엔지니어란 직업의 사명감과 아버지를 향한 동경심에 우주청에 입사해 아버지란 기억을 쫓는 ‘벨카’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디어 마이 라이카> 포스터 중에서 ⓒ 제작사 콘티(Con.T)  


‘라이카’는 유명 독일 카메라 회사의 이름이기도 해서, 이 극은 필히 ‘기억’에 관한 흔적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라이카는 캐릭터의 이름일 뿐이다. (이름을 카메라 브랜드에서 차용한 것인지는 모름)


<디어 마이 라이카>의 웅장한 이약기는 아버지를 많이 담고 있어서, 어렸을 적 아버지가 어딘가 수석이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는, 명예나 기억이 없어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쫓는 벨카에 이입할 수도 없었다. 이입할 수 있는 역할은 그나마 ‘라이카’나 ‘K박사’였을지도 모르는 나는 그나마 ‘프리즘’이란 다채로운 빛을 담은 아이템의 등장에 정말 반가웠을 뿐. 극 내내 땀을 뻘뻘 흘리는 주인공 세 명 누구에게도 이입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부자지간’은 소원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부자지간이나 다른 부자지간 등 아버지와 자녀가 본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특히 어린 아이의 시선도 궁금하다.


‘만일 내게 아버지가 있었다면?’ ‘라이카가 어머니였다면 달랐을까?’ ‘내가 벨카라면?’ 이런 상상을 아무리 해보아도 머나먼 우주의 이야기가 잘 와닿지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난 극이 끝나고 나서야 마침내 극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바로 장소.


극이 열리는 장소도 뮤지컬에선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극은 ‘KT&G 상상마당’에서 한다. 기술력이 응집된 곳. 허여멀건한 벽들과 버튼을 누르면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알려주는 곳에서 <디어 마이 라이카>는 펼쳐진다.


<디어 마이 라이카> 포스터 ⓒ 제작사 콘티(Con.T)


<디어 마이 라이카>는 재미없다?


하나의 극이 올라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난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관객으로서 너무나 무심한 평이라고 생각한다. 이 극은 ‘재미’나 ‘친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주’란 공상들을 상상해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수만 번 상상했어야 할 사람들 간에 생기는 생각의 차이에서 온다. 수만 번 상상해야 우주의 온도와 지구의 온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벨카에게 지구는 ‘따뜻한 장소’라는 상상을 어렴풋이 할 뿐이다.



지구의 온도를 깨닫게 하는 <디어 마이 라이카>


모든 극의 이해의 출발선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우주’란 주제는 낯설고, 외롭고, 까마득하다. 몇 번을 상상해도 난 지구를 둘러싼 블랙홀 따위의 몇 가지 단어만 알 뿐이다. 내가 딛고 있는 지구로 송신되는 신호들과 신호들의 발신과 수신의 기호학적 신호들의 문장들을 난 절대 알지 못한다.


SF 소설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달랐을까. 난 극이 끝난 뒤에도 <디어 마이 라이카>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의아하고, 궁금했다. 그나마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행성’이 있다면?’ 따위에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몰랐다. <디어 마이 라이카>에서 말하고 싶은 게 ‘대체 할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함’이란 명제는 아닐 텐데.


<디어 마이 라이카>는 관객들에게 ‘벨카는 왜 다 떠나고, 아버지마저 떠났던 지구에 남고 싶었을까?’란 정서를 상상하게 한다.


<디어 마이 라이카> 포스터 중에서 ⓒ 제작사 콘티(Con.T)


난 오늘 본 기사로 어렴풋이 느끼던 지구의 따뜻함이란 상상만 했던 정서가 구체화되는 걸 느꼈다.


<‘베이조스 우주여행’ 1년 후 고백…. “내가 본 것은 죽음, 장례식’>이란 제목의 기사의 내용 중엔 이런 문장이 있다.


“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 


이만큼 라이카가 속했던 세상과 벨카가 남고자 했던 지구의 온도 차이를 가장  나타난 문장이 없을  같다. 우주에 다녀온 이가 들려주는 이가 없어서, 땅에 디딘 연출이어서가 아니라, ‘’우주 상상해  겨를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라고 나는  극의 아쉬움을 말하고 싶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밈이 우스갯소리로 쓰이는 이때, ‘우주’란 광활한 세계의 온도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것은 <디어 마이 라이카>이 가진 유일한 힘이다.



<'베이조스 우주여행' 1년후 고백…"내가 본 것은 죽음, 장례식">에서 발췌, 중앙일보 2022.10.11


▼ <디어 마이 라이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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