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
“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 이만큼 라이카가 속했던 세상과 벨카가 남고자 했던 지구의 온도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난 문장이 없을 것 같다.
- 지구의 온도를 말하다 <디어 마이 라이카> 중에서
전반적으로 극에 이입할 수 있는 외로움의 요소들은 내 안에 있는 때가 많다. <디어 마이 라이카>도 그런 극이었다. 첫 회엔 극이 어수선하단 평도 많았지만, 난 관객이 어수선해서 더 화가 났었다. (분명 자리 잡을 땐 나 한 자리였는데, 많고 많은 자리 중 왜 하필 옆자리에서 집중 못하고 계속 꼼지락대시는지 여쭤보고 싶었다..)
[스포 있음]
<디어 마이 라이카>는 먼 우주 시대에 냉동인간 실험 대상이 된 아버지, ‘라이카’와 라이카의 우주청 수석 엔지니어란 직업의 사명감과 아버지를 향한 동경심에 우주청에 입사해 아버지란 기억을 쫓는 ‘벨카’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라이카’는 유명 독일 카메라 회사의 이름이기도 해서, 이 극은 필히 ‘기억’에 관한 흔적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라이카는 캐릭터의 이름일 뿐이다. (이름을 카메라 브랜드에서 차용한 것인지는 모름)
<디어 마이 라이카>의 웅장한 이약기는 아버지를 많이 담고 있어서, 어렸을 적 아버지가 어딘가 수석이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는, 명예나 기억이 없어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쫓는 벨카에 이입할 수도 없었다. 이입할 수 있는 역할은 그나마 ‘라이카’나 ‘K박사’였을지도 모르는 나는 그나마 ‘프리즘’이란 다채로운 빛을 담은 아이템의 등장에 정말 반가웠을 뿐. 극 내내 땀을 뻘뻘 흘리는 주인공 세 명 누구에게도 이입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부자지간’은 소원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부자지간이나 다른 부자지간 등 아버지와 자녀가 본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특히 어린 아이의 시선도 궁금하다.
‘만일 내게 아버지가 있었다면?’ ‘라이카가 어머니였다면 달랐을까?’ ‘내가 벨카라면?’ 이런 상상을 아무리 해보아도 머나먼 우주의 이야기가 잘 와닿지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난 극이 끝나고 나서야 마침내 극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바로 장소.
극이 열리는 장소도 뮤지컬에선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극은 ‘KT&G 상상마당’에서 한다. 기술력이 응집된 곳. 허여멀건한 벽들과 버튼을 누르면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알려주는 곳에서 <디어 마이 라이카>는 펼쳐진다.
하나의 극이 올라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난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관객으로서 너무나 무심한 평이라고 생각한다. 이 극은 ‘재미’나 ‘친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주’란 공상들을 상상해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수만 번 상상했어야 할 사람들 간에 생기는 생각의 차이에서 온다. 수만 번 상상해야 우주의 온도와 지구의 온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벨카에게 지구는 ‘따뜻한 장소’라는 상상을 어렴풋이 할 뿐이다.
모든 극의 이해의 출발선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우주’란 주제는 낯설고, 외롭고, 까마득하다. 몇 번을 상상해도 난 지구를 둘러싼 블랙홀 따위의 몇 가지 단어만 알 뿐이다. 내가 딛고 있는 지구로 송신되는 신호들과 신호들의 발신과 수신의 기호학적 신호들의 문장들을 난 절대 알지 못한다.
SF 소설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달랐을까. 난 극이 끝난 뒤에도 <디어 마이 라이카>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의아하고, 궁금했다. 그나마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행성’이 있다면?’ 따위에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몰랐다. <디어 마이 라이카>에서 말하고 싶은 게 ‘대체 할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함’이란 명제는 아닐 텐데.
<디어 마이 라이카>는 관객들에게 ‘벨카는 왜 다 떠나고, 아버지마저 떠났던 지구에 남고 싶었을까?’란 정서를 상상하게 한다.
난 오늘 본 기사로 어렴풋이 느끼던 지구의 따뜻함이란 상상만 했던 정서가 구체화되는 걸 느꼈다.
<‘베이조스 우주여행’ 1년 후 고백…. “내가 본 것은 죽음, 장례식’>이란 제목의 기사의 내용 중엔 이런 문장이 있다.
“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
이만큼 라이카가 속했던 세상과 벨카가 남고자 했던 지구의 온도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난 문장이 없을 것 같다. 우주에 다녀온 이가 들려주는 이가 없어서, 땅에 디딘 연출이어서가 아니라, ‘’우주’를 상상해 볼 겨를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라고 나는 이 극의 아쉬움을 말하고 싶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밈이 우스갯소리로 쓰이는 이때, ‘우주’란 광활한 세계의 온도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것은 <디어 마이 라이카>이 가진 유일한 힘이다.
▼ <디어 마이 라이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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