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아침을 묵념하며
이럴거면 보지 말 걸 그랬다. 견딜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았다. 힐링극이다 뭐다 말들이 많아도 보는 사람이 있는 한 나도 견딜 줄 알았다. (스포일러 포함)
합격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될 뿐이야.
난 급속도로 제시간에 도착했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해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어제는 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회에서 만난 선생님들 중 고전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들이 초빙하신 번역가님이 오신 날이었다. 질의응답은 밀도 있었으며, 선생님은 정성껏 그리고 아주 오래, 아주 정확하게 답변을 해주셨다. 강연이 끝난 후 난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어어-! ●●씨! 잘 지냈어요? 난 아까 뒤 흘끗 보고 ●●선생님인 것 같아서 놀랐잖아!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뭐.. 그렇게 지냈죠.."
이제 내년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코로나는 시간 도둑이었다. 어느새 다른 곳으로 가실 연차가 차신 사서님과 이야기하며 그전에 많이 봐두자고 말하며 나왔다. 도서관은 개관할 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관장님이 달라지고, 사서님이 달라지고, 공익 요원이 사라지고, 책 위치가 바뀌고, 좀 더 세련된 기기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오간다는 거였다. 코로나 이후로 오프라인 모임의 참여율은 저조해졌지만, 사서님은 씩씩하게 웃으며 내년에 혹여 자신이 떠나더라도 독서회는 지키겠다 웃어 보이셨다.
사서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와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계단을 내려가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지냈느냐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뿐이었지만 너무 반가웠다. 도서관의 사람들이 누가 바뀌었는지 선생님은 나에게 묻고 나는 답했다.
선생님들은 독서회의 주춧돌과도 같은 존재들이셨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많은 것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학교 때처럼 또래는 없었지만, 책에 대해, 서로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달 동안 책을 읽고 만나는 자리엔, 꾸준히 책을 읽고 오는 선생님들과 나처럼 부랴부랴 책을 읽고 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모여서 이야기했다. 이때 만난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는 한 달 동안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으며, 슬펐던 생채기를 이야기하고, 선생님들이 보내는 눈빛에 위로받았다.
코로나는 오프라인 독서회를 타이밍 좋게 찢어놓았다. 주춧돌과 같았던 몇몇 선생님들이 멀리 이사하시며, 독서회는 홀쭉해졌다.
나도 취업이다. 직장생활이다. 뭐다 하면서 독서회를 나가다 어느새 개인 활동으로 가끔 강연에 나갈 뿐이었다.
밤공기는 어리고 차가웠으나 몇 년이 지나 안부를 묻는 입김들 사이에서 '우리'라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선생님들은 안부 이후엔 조금 시간 여유가 있으니, 집에 서둘러 돌아가기보다 근처 카페에서 차나 한잔하자 했다. 도서관 근처는 이전과 다르게 밤늦게까지 불 켜진 상가들이 많이 생겼다. 고급스런 카페도 생겼다. 나는 이 무리의 사람도 아닌지라 집에 가는 게 맞다 생각했으나, 왠지 오랜만에 느낀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괜찮다며 팔짱을 끼고 카페로 향했다. 어느 누구도 눈치 주지 않았고, 나를 처음 보는 선생님들도 있었으나, 선생님들은 그 누구도 나에 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직장을 다니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독서회에서 만난 선생님이 나를 소개해 주셨고, 다음 달에 생신이라며며 작가에게 책을 선물 받은 선생님은 생일기념으로 당신이 차를 사시겠다고 했다. 나는 독서회 선생님을 따라 사과 향이 제법 무르익은 척하는 탄산음료를 따라 시켰다.
선생님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남몰래 귀동냥하며 눈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물을 바라보았다. 본격적인 강연 후기들을 서로 나누는 분위기가 되자 때맞춰 진동벨이 울렸고, 나는 막내 노릇을 하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얼음이 가득한 온더락 잔에 주스를 부었다. 인공적인 사과 향이 진하게 났다. 맛은 조금 씁쓸하고 달았다.
선생님들은 초빙했던 선생님의 강연 실력과 연말 정산하듯 그간의 읽은 책들을 세어보셨다. 선생님들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코로나가 있을 때도,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도 공간을 빌려 책을 읽고 얘기하셨다 했다. 나는 낮은 테이블에 맞게 허리를 숙이고 선생님의 오가는 말들을 마치 공을 주시하는 야구 선수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번 연도에 뭘 했지...'
온더락 잔 속 얼음은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5월. 가까스로 취업한 회사에서 폭력적인 상사를 만나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키보드를 치다가 폭언에 안타를 날린 기억. 도착 지점이 어딘지도 모르게, 시간만은 도착 지점을 향해서 꾸준히 달렸다.
살아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세상은 너무 기능적이어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고 돈을 벌며 세금을 내야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 나는 '청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나오는 사람처럼 있었다. 내가 그간 보고 들어 온 것들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했으나 말하지 않았다. 분야가 달라서가 아니라. 한심했기 때문이다. 유튜브, 가벼운 책들, 작년에 본 사진전에 대한 그리움과 음악들, 좋다며 계속 본 뮤지컬 이야기는 낡고 얇았다. 사진을 공부하겠다며 여기저기 있었던 나의 이야기들은 낭비였으며, 생채기를 겪은 사람이나 오늘의 고민은 언급할 수도 없었다. 맞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를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두꺼운 분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독할지 모르는 러시아 문학이며 이곳저곳의 고전을 읽은 선생님들은 지도를 그렸다. 선생님들은 지난 1년간의 고전 독서회를 통해 세계 이곳저곳을 다녔다며 지도를 만들었다 했다.
나의 지도는 XX시 XX구 XX동 한 군데만 맴돌고 있었는데, 선생님들은 사회의 기능을 하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치열하게 밀도 높은 삶을 살고 있었다. 문이 닫혀있었는데, 몸이 시려웠다. 어디서 부는지 영문 모를 차가운 바람이 구멍 난 몸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지난 시간들. 정확히는 8월부터 지금까지 석 달에서 넉 달 동안, 나의 시간은 선생님들의 지도처럼 발자국이 없었다. 깃발도 없었다. 나는 그냥 숨이 붙어있을 뿐이던 거다.
지금 어떤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었는지 깨닫는 순간, 온몸에 구멍이 난 듯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왔다. 입구와 출구를 하는 문 앞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트리가 빛났다. 트리 앞으로 선생님들이 모였다. 선생님은 사진을 찍자 했다. 나는 무릇 이 사람들의 사람이 아니므로 나서서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 했다. 그러자 직원이 자신이 찍어주겠다며 나는 독서회에서 만난 선생님 두 분 사이에 두꺼운 패딩 사이로 도톰하게 끼어있었다. 선생님은 마스크 벗고 얼굴 보이게 찍자며 나를 독려해 주셨다.
집에 도착하고 선생님들께 고맙단 안부 인사를 드렸다. 한 선생님의 카톡 프사는 벌써 아까 트리 앞의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 속 나는 행복해 보였다. 온몸이 구멍 나 있는 기분은 여전했는데, 나는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 온 사람처럼 간만에 웃고 있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전에 보던 드라마를 마저 보기로 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틀었다. 한국 드라마엔 연애 이야기가 들어가면 이야기가 안 되나 싶을 정도로 지루한 몇몇 캐릭터들의 연애담을 참고 나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새벽 3시가 넘어갈 때쯤 추락하는 사람을 봤다.
"가능성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야." 공부 말고 좋은 대학도 나왔으니, 취직이나 다른 것을 해보자고 하는 아버지의 말에 서완은 말한다.
"한 문제를 틀려서…. 이번엔 될 거예요."
서완은 고시 7수생이다. 환자인 서완은 밀도 높게 열심히 살아왔다.
부모님은 식탁에서도 책을 놓지 못하는 한 문제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서완이 멈추길 바란다.
서완은 면접도 여럿 봤다. 그때 알게 됐다. 자신이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남들은 해외연수다 뭐다 하면서 스펙을 쌓아왔다는 걸. 스펙이 없는 자신은 공부만이 자신이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서완은 컵밥을 먹으며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선생님의 말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한다. 7수 생인 서완은 학원에서 자신보다 뒤늦게 들어와서 합격하는 사람도 떠나보냈다.
유혹은 참 쉽게도 학원 옆에 있었다.
뭐에 홀린 듯 서완은 학원 옆 피시방으로 향해 2천 원을 넣고 게임의 세계로 입장한다.
마치 길드원을 뽑는 파티에 참여하게 된 서완은 깍듯이 인사한다.
유저들은 그를 뉴비(신입)라며 반긴다. 어떠한 스펙도, 자격도 없어도 되는 세계는 서완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행복이 되어줬고, 그를 망상 환자로 만들었다.
서완은 부지런했다. 서완의 망상도 부지런히 그를 따라다녔다.
'현재', 과거를 그리워해서도 안 된다. 미래를 너무 걱정해서도 안 된다. 현실에 충실하기 위해서,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 인간의 목표인가 보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유튜브에서 말한다. 어느 강연이건, 고전이건, 어떤 무엇이든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제일 잘 팔리는 나라에서 기능하지 않는 인간은 하나의 안전 장비 없이 낙하산 없이 추락하고 만다.
호전이 된 서완은 입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기로 한다. 한 번, 그가 다시 돌아가길 스스로 두려워서 입원했을 때 그가 망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담당 간호사로 인해 서완은 현실로 돌아간다.
서완의 담당 간호사였던 다은(박보영 분)의 멜로가 시작될 때, 서완은 노량진 옥상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다음엔 꼭 용을 잡으러 가자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추락한다.
과연 서완에게 약은 치료제였을까.
서완이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서완은 무서웠다. 달력의 날짜를 손가락을 접어가며 며칠이 지났는지, 시험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센다. 가끔 망상은 서완을 놓아주지 않았다. 부지런한 서완은 곧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로 돌아온 세계에서 일면식도 없는 서완의 오랜 공백을 반길 이는 없다.
합격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된 사람이 되고만 서완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고, 내가 본 청년의 이야기였다.
많은 이들이 서완을 잃었다는 생각에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드라마는 동화처럼 행복하게 끝난다. 사랑도 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서 떠난다.
정시퇴근을 하겠다며 외치고, 자신의 어둠에도 아침이 왔듯 아픈 병일 뿐이라며 아침이 올 거라고 빛을 주며 드라마는 떠난다. 크레딧이 올라간 뒤 검은 화면이 시작되면 다시 또 현실이다. 그럴듯한 정서적 환경과 경제적 환경을 논하기도 전에 토론할 거리가 많은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우선 논의 된다. 실패자들을 위한 안전망 하나 없음은 이렇게 쉽게 지워진다.
사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매정하게 듣지 말라며 뭐든 하라고 사회의 기능을 하라고 압박하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물속을 헤엄치고,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쉰다.
나의 어제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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