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민 라이트랩 Apr 18. 2024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중요성

AI시대 우리가 준수함을 넘어 뛰어남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고등학생 조카가 글쓰기 숙제를 봐달라며 사무실에 찾아왔다. 숙제의 주제와 쓰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조언을 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고 느껴져서 이렇게 물었다.



이 숙제 정말 잘하고 싶어?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르다. 더군다나 그것이 글쓰기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난 선생님이 아니기에 좋은 성적을 받는 법을 일단 모른다. 고등학생의 수준에서 책 잡힐 것 없을, 준수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봐주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잘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진짜 잘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진심을 담아야 하고, 내가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준수함이나 균형을 버려야 할 수도 모른다. 내가 진짜 잘하고 싶은 건 출제자나 평가자의 기준을 넘어 자신이 기준이 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한 시간 두 시간의 효율이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겨우 고등학교 어떤 과목의 숙제를 하나 들고 와 이렇게 진지하게 접근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사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었다. 조카는 과학수사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그래서 화학과를 고민 중에 있다. 그리고 숙제는 다름 아닌 화학의 발전과 나의  장래 직업과의 관계에 대한 글쓰기였다. 이건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 숙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이든 준수한 수준으로 해내는 데까지는 효율이 작동한다. 반복되고 능숙해지면 적은 에너지로도 준수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잘하고자 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준수함을 만드는 데 100이라는 에너지가 든다면 거기서부터 뛰어남을 만들기 위해서는 200이라는 에너지가 들고, 거기서 위대함을 위해서는 300이 드는 것과 같이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구간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것들을 준수함 어디쯤에서 타협하곤 한다. 또 그래야만 한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삶의 어떤 순간, 어떤 도전은 아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효율을 버리고, 다른 이가 만들어 놓은 평가 기준을 무시하고, 잘 해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비효율과 자신이라는 기준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감동'이 있다.



얼마 전 천 시간을 넘게 들여 작업했다는 한 미대생의 졸업작품이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이유다. 성적과 효율로 자기 작품을 대하지 않음의 결과다. 기계로 만들어도 준수하게 만들 수 있는 그릇이라도 사람이 한 땀 한 땀 패턴을 넣은 공예품이 감동을 주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효율의 세상에서 비효율과 의지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또 그 감동은 다시 돌아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효율은 그 사람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준수함'을 요구한다. 효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효율을 버리고 개인의 기준을 지표 삼아 달려가는 일을 직장에서 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예측가능한 준수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준수함의 많은 부분은 AI로 대체될 것이다. AI를 '최고 수준의 평범함'으로 정의한 것에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평범함의 수준도 점차 올라갈 것이다. 



효율 앞에 사람이 기계를 능가할 방법은 없다. 결국 효율을 넘어 감동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는 효율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계산으로 다다를 수 없다. 결국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먼저여야 한다.



다행히 조카는 이 숙제를 잘하고 싶어 했고, 집으로 돌아가 그날 밤을 꼴딱 새우고 준비해 등교했다고 한다. 조카의 그 밤이 삶에서 기억나는 밤이었으면 좋겠다. 점수를 더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이 분야를 왜 하고 싶은지, 이 일을 왜 하고 싶은지 고민하며 정리하는 조금은 낭만적인 시간이었기를 바라본다. 효율과 경쟁의 시대에 어렵지만 자신의 뾰족한 면을 발견하는 경험들이 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디자인은 판매량으로 측정 가능한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