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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Oct 26. 2020

좋은 디자인은
판매량으로 측정 가능한가

'판매와 직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에 대하여



'예술'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축구선수의 멋진 골장면을 보았을 때, 기가 막히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영혼을 울리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을 때 우리는 "와, 예술이다."라고 표현한다. 한 개인이 실용이나 이성적인 기준을 넘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감동, 또는 결과물을 대면했을 때 우린 '예술'이라는 단어로 그 대상을 극찬한다. 하지만 이런 '예술'이라는 단어가 비아냥을 위한 소재로 사용되는 흔치 않은 장르가 있다. 디자인이다.



너 예술하니?



"너 예술하니?"라는 말은 디자인 바닥에서 '시장에서 원하는 것에는 관심 없이 너만 혼자 좋아하는 결과물을 만들고 있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자신을 표현하고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보다는 대중을 고려하고 판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분야라 여겨지기에, 개인의 취향이나 메시지를 내세우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예술한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겉으론 디자인이 예술과 비슷한 영역에서 모호한 경계를 가지며 존재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판매와 대중성을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표현이 인정받기 어려운 분야가 디자인이다.







"판매와 직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이는 이 시대 가장 잘 나가는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중 하나라 불리는 넨도의 <디자인 이야기> 나오는 글이다. 글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디자인은 판매 곧 수익과 연결되는 요소이며,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심지어 디자인으로 부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글만 보았을 때는 좋은 디자인을 매기는 척도는 어쩌면 '수익'으로 볼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이라는 존재를 수단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 말처럼 속 시원하고 명쾌한 말이 없다. 사용자가 '디자인'이라는 요소를 사용하는 이유, 투자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판매 증진이 가장 크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의 의도가 어떤지, 프로세스가 어떤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결국 '팔리느냐'가 디자인을 평가의 핵심 요소다. 그런 면에서 넨도는 사용자가 디자인에 바라는 관점을 잘 녹여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쉽게 '흥행 여부'로 디자인의 가치를 매기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양날의 검과 같다. 이는 과정은 어찌 되었든 최종 아웃풋을 잘 만들어 결국 높은 판매를 이끌어내면 좋은 디자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깊은 생각과 올바른 철학, 좋은 접근과 프로세스, 나아가 좋은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을 했다 하더라도 판매로 연결되지 않는 다면 좋은 디자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은 판매량으로 측정 가능할까?




좋은 영화는 관객 수나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률로 측정 가능할까? 만약 그렇다면 각 매체에서 다루는 최고의 영화 순위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을 숫자로만 나열하면 그것이 곧 좋은 영화 순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영화의 관객수나 수익이 꼭 영화의 질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출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많이 팔린 책이 꼭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영화든 책이든 대상으로 인해 벌어들인 수익 말고도 그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과 시선은 다양하다. 영상미를 인정하기도 하며, 각본이나 편집의 측면에서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가 가진 의미나 메시지를 중요하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책의 경우 시대적 의미나 사회에 미친 영향력 등을 따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분야들은 대상의 '예술성'을 인정한다.



물론 영화도, 출판도, 다른 여러 매체도 돈을 떠나 예술만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영화제작사도 돈을 벌어야 유지되는 조직이며, 출판사도 많이 팔릴 수 있는 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적어도 대상을 평가하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진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 창작자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디자인은(특히 산업디자인은) 때론 예술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겉모습에 비해 결국은 수익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영역이다.



이렇게 대부분 수익이라는 측면으로 평가되는 디자인이지만, 실제로 판매에는 디자인 이외의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 것도 사실이다. 디자인은 좋지만 제작이나 예산이 따라주지 못한다든지, 기능 구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든지, 애당초 기획이 부실했거나 홍보 및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들로 인해 많은 판매가 되지 못한 제품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 경우 '좋은 디자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몇몇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만 겨우 이루어질 뿐, 결국 많은 판매를 이뤄내지 못한 디자인은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와중에 디자이너는 제작과정, 기능 구현, 혹은 판매나 유통까지 고려했어야 한다는 식의, 모든 것을 떠안는 자조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디자이너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사용된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책임도 디자인'이라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디자인이 판매나 수익으로만 평가되는 이유에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애당초 디자인을 판매 증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판매량보다는 디자인에 담기는 메시지에 주력하거나, 좋은 디자인을 위한 노력 자체가 필요한 프로젝트는 극히 일부에 한한다. 특히 디자인 아웃소싱을 진행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의 경우에는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진다. 기업이 애당초 보다 나은 디자인으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좋은' 디자인 에이전시에 용역을 주어 진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은'은 '판매량을 늘려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출판사가 팔릴 것 같은 책의 방향과 기획을 먼저 결정하고, 이를 책으로 써줄 작가를 찾아 요청한다고 가정해보자. 애당초 책의 목표는 많이 팔리는 것이고, 작가는 심지어 인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 글을 쓰는 시점에 모든 원고료를 책정해 받는다. 거기에 더해 책 표지에는 작가의 이름이 아닌 출판사의 이름이 들어간다. (내지 한 편에 작게 기입 정도는 해줄지도 모른다.) 이때 작가는 개인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성향보다 팔리기 위한 최선의 글을 쓸 것이다. 책의 방향성과 결과물도 작가보다는 출판사의 의지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작가의 실력은 판매부수로 판가름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작가에겐 참으로 답답한 일이겠지만 이는 우리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놓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량으로 디자인의 가치가 측정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판매량 이외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이야기는 어쩌면 '잘 팔리는'디자인을 하지 못하는 루저 디자이너들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디자인은 역사에서 예술과 꾸준히 비교되어 왔다. 작가 내면의 동기에서 유발되는 '예술'이라는 존재는 대중을 향한 '디자인'이란 존재와 늘 비슷한 듯 대비되는 존재였다. 어쩌면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시작이 예술이라는 개념의 여집합에서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예술에서 개인의 내면이 주요 동기가 된 시기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만 해도 예술가는 권력집단의 후원을 받아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존재했던 직업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이 보다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으로 재정립되고, 산업혁명과 함께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디자인과 예술은 발전해왔다. 그리고 이전의 글 <예술가와 디자이너>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왔다. 



예술의 정의가 바뀌어왔듯, 디자인의 정의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갈 것이다. 또한 동시대에 사용되고 있는 예술이라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도 다양한 범주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디자인과 예술을 분류하려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스스로 분류 불가능자를 자처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많은 시도와 도전이 오가는 분야에서 판매량만으로 디자인의 가치가 매겨질 수 있다는 주장(혹은 사실)은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매우 슬픈 일이다. '수익'은 디자인을 평가하는 가장 높은 가치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높은'가치일지언정 '유일한' 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수익'은 디자인을 평가하는 가장 높은 가치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높은'가치일지언정 '유일한' 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해서 해결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디자이너 각자가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 좋은 디자인을 해 나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글과 다양한 콘텐츠로 공유되고 쌓여나갈 때, 수익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만 평가되는 이 시장의 가치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넓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판매량이나 수익은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가치 중에 한두 가지 평가기준 정도로 여겨지는 날이 오기를, 좋은 디자인을 향한 모든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노력이 인정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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