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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Mar 26. 2020

예술가와 디자이너

함께하는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지난주, 카스틸리오니 전시를 관람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오랜만에 머릿속을 맴도는 책이 있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장 깊숙한 곳까지 손을 넣어 그 책을 다시 찾았다. 풋풋한 대학시절, 술잔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함께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할 때 드문드문 이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 책은 바로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의 "예술가와 디자이너(Artista e Designer)"였다.



브루노 무나리의 [예술가와 디자이너]




처음에는 디자이너 이름치고 이름 참 멋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아는 척을 하고 싶었기에 그 책을 사보았다. 책은 얇았고, 디자이너가 쓴 책이라기에 만만하게 보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내가 밑줄까지 쳐가며 곱씹어보았던 몇 가지 말들은 당시 나에게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지침이 될 만큼 강력했다.




디자인은 새로운 수요를 위한 새로운 제품들을 생산하면서 시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중략) 대중의 수요가 이미 충족되어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디자이너는 진정한 수요를 위해 적당한 가격의 합리적 제품을 창조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p.51


예술가나 스타일리스트와는 대조적으로, 디자이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의 개성적 스타일을 갖지 않습니다. 진정한 디자이너의 제품은, 그 기획을 성격 짓는 특정한 미학적 요소들을 갖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디자이너는 구형이나 입방체, 또는 튜브형 등 다양한 형태의 조명기구를 디자인할 수 있지만, 우선적인 목표는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적당한 가격으로 재료가 구성되게 하는 것입니다. p. 69


예술가는 환상으로 일하고, 디자이너는 창의성으로 일합니다. (중략) 환상이란 부분적이거나 총체적인 현실로부터 다양한 정신적 이미지를 추출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며, 그 이미지들은 실현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창의성이란 환상과 이성이 결합된 생산적 능력으로서, 그 결과는 항상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합니다.  p.113


디자이너는 자신의 일이 대중에게 신속히 전달되는지를 근심해야 하며, 그의 시각적 메시지는 착오 없이 즉시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합니다.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과학성은 진정한 메시지를 수반하는 형태와 색채 등에 관해 객관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p.131


예술가의 꿈은 어쨌든 박물관에 도달하는 것이고, 디자이너의 꿈은 시장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p.141




브루노 무나리 (Bruno Munari)



브루노 무나리는 1907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다. 마치 애정남처럼 예술과 디자인의 애매했던 영역들을 명확하게 정의 내려 주었던 그는 오히려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청년시절에는 미술과 조각 등의 순수미술에서 활동하며 구체 미술운동으로 이탈리아 예술계에 혁신을 일으켰으며, 편집과 출판의 영역에서도 활동했을 뿐 아니라 기업과 협업을 하면서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뛰어난 행보를 이어갔다.



브루노 무나리는 예술과 디자인뿐 아니라 수많은 책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책과 함께 교육에 대한 열정도 뛰어났는데, 특히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아 어린이를 위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개최해 나중에는 아동용 도서 작가에게 주는 최고 권위인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장르를 초월해 거의 천재 수준으로 보이는데, 피카소는 브루노 무나리를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평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브루노 무나리를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평했다고 한다.


카스틸리오니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인 스위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카스틸리오니 전시




카스틸리오니 전시를 보고 난 후 뜬금없이 브루노 무나리의 책을 꺼내 든 이유는 카스틸리오니 전시에 동시대의 디자이너로써 브루노 무나리의 제품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그의 디자인과 생각의 기반이 브루노 무나리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카스틸리오니는 "익명의 디자인(Anonymous Design)"의 개념을 추구하고 싶어 했다. '제 기능을 잘하는 것이라면 그건 누가 디자인했는지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 카스틸리오니의 철학이었다. 이는 그의 상징적인 제품 스위치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구분하는 브루노 무나리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제 기능을 잘하는 것이라면 그건 누가 디자인했는지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 카스틸리오니의 철학이었다.




앞서 공유한 '예술가와 디자이너' 속 문구와 같이, 브루노 무나리는 디자이너는 본인의 작품이 개인의 개성적 스타일을 갖지 않아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어떠한 독특한 스타일과 언어가 자신들의 디자인 결과물들에 동일하게 들어가는 것을 지양했다. 그것은 예술가의 영역이지 디자이너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는 현재 많은 디자이너들이 각기 고유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 나아가서는 그 자체를 디자이너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규정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개념에 가깝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 디자이너'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동일한 연장선에 카스틸리오니가 있다.



디자인에 대한 브루노 무나리와 카스틸리오니의 생각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옳고, 예술가적 디자인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정의와 역할은 동시대에도 다양하게 사용되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 속에 자신의 생각과 철학에 따라 언어와 역할을 계속해서 재정의하고, 또 정의된 바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





카스틸리오니 스튜디오




전시를 관람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카스틸리오니 스튜디오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카스틸리오니와 함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멘디니, 알레시, 마리, 로시 다섯명으로 모두 내놓으라 하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이다. 특히 카르틸리오니와 함께 있는 멘디니와 알레시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나의 이해하기에 이 둘의 스타일은 카스틸리오니와는 다른 색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멘디니'와 '알레시'는 들었을 때 각기 그에 해당하는 어떤 특정 이미지가 존재할 만큼 강력한 이름이다. 브루노 무나리와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면, 알레시와 멘디니는 그 누구보다 그 두 경계를 허물어 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브랜드 알레시의 작품은 생활에 회화나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요소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그 시적 요소로 인해 가격이 보다 상승할지라도, 혹은 사용이 조금 불편할지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를 위한 디자인 작업들을 해왔다.




브루노무나리의 가구(좌) 카스틸리오니의 가구 (우)




알레시의 제품들(좌) 그리고 멘디니의 디자인 체어 Proust Geometrica(우)





브루노 무나리와 카스틸리오니의 제품들을 보면 기발함, 효율성, 기능, 이유 있는 형태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누군가 카스틸리오니의 전시를 보며 이건 차라리 발명에 가깝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카스틸리오니는 오히려 디자인과의 발명의 경계가 모호한 것으로 여긴다. 그의 제품들은 오히려 극도의 기능을 추구하는 발명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관적인 예술로써의 디자인은 추구하지 않았다. 누가 디자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그들의 말과 함께 그들의 디자인을 보면, 브루노 무나리와 카스틸리오니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알레시의 제품, 그리고 멘디니의 디자인을 보면 발명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각 제품은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반영하며, 브랜드 알레시는 이 점을 오히려 철저히 활용한다. 기능보다는 각 디자이너 혹은 예술가의 주관적이고 독특한 성향이 하나의 예술처럼 제품에 반영된다. 마치 팝아트라는 장르를 통해 예술이 자신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알레시는 주관적이고 예술에 가까운 제품들을 내놓으며 디자인은 경계를 묻는 듯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정답은 없다. 예술과 디자인,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정의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모든 디자이너와 예술가는 이 질문에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고 또 그에 맞는 작업들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더욱이 카스틸리오니 전시 중 이 사진은 가장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함께 한다는 것. 누군가는 디자인과 예술의 구분을 명확히 하며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갔으며, 누군가는 오히려 그 영역을 허물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또 누군가는 다양한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사진은 나에게 디자인의 옮고 그름, 높고 낮음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고 또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디자인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나에게 디자인의 옮고 그름, 높고 낮음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고 또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디자인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디자인을 바라보는 대중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막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들 모두 보다 넓은 시야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평가나 경쟁에 앞서 먼저 우리 각자가 다양한 자신의 길을 찾고 있으며, 또한 각자의 길로 걸어 나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또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각자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길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고 또 서로를 위해 응원하고 손뼉 쳐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서로에 대한 인정과 이해, 응원과 교류가 넘친다면, 그곳에 지금보다 훨씬 가치있고 멋진 디자인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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