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20. 2019

취향의 고갈

자본주의와 AI시대에 표류하는 나의 기호



1부



취향이 고갈되었다. 

퇴사를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기며

스스로 내린 진단이다.



음악에선 멜론 DJ가 나를 망가트렸다.

음악 스트리밍 시대가 되며

나는 더 이상 신중하게 앨범을 구입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쉽게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전에 없던 어마어마한 선택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대한 선택권을 누리는 대신

누군가 잘 만들어놓은 선곡으로

음악을 듣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누군가는 AI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기를 몇 년,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딱히 잘 아는 뮤지션 몇 명 없고

잘 아는 앨범 역시 몇 개 없다.

이름을 직접 검색하여 찾아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이미 수년 전 들었던 옛 노래들 정도다.

이제는 내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누군가가 선곡해 놓은,

듣기 편한 쉬운 곡들을 듣고 있을 뿐.

골라 듣고 찾아 듣던

예전의 열정과 에너지가 없어졌다.

그만큼 음악으로 얻는 즐거움과 행복도 없어졌다.



취향의 고갈은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다.

음식도, 영화도, 컬러도, 제품도 ‘나’라는 기준보다는

매일 스마트폰 속 각종 트렌드

또는 추천 탭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남들이 좋다는 것, 요새 새로 나왔다는 것,

별점 높다는 것 등에 휩쓸려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책을 계속 접하다 보니

요즘 책에 있어서는 조금씩

내 취향을 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도 아직은 초보단계라

신간과 베스트셀러가

책 결정의 많은 요소를 차지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앞으로는 점점

나만의 책 고르는 방법이 생길 듯하다.

어느 시점에는 베스트셀러나 평점은 보지도 않고

작가나 출판사, 심지어 번역가를 먼저 보고

책을 보는 경지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마시는 차에도 취향은 생길 수 있다.

홍차가 좋은지 녹차가 좋은지 보이차가 좋은지,

홍차 중에서도

잉글리시 블랙퍼스트가 좋은지 다즐링이 좋은지

좋아하는 차의 브랜드, 물의 온도, 우려낸 정도와

찻잔의 재질, 형태, 입에 닿은 느낌까지

취향은 보다 구체화가 될 것이고 분명해질 수 있다.



취향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알게 되는 것이고

내가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알게 된다는 것이며

결정적으로 ‘나다움’이

좀 더 명확해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둥글둥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말하는

착하고 재미없는 사람보다,

취향이 많고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서

그로 인해 재미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2부



취향의 고갈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자본주의는 그 특성상

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호가 집중될수록

그 효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100가지 취향을 가진 100명의 시장보다

1가지 취향을 따라가는 100명의 시장이

훨씬 효율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고

이익을 극대화시키는데 용이하다.

그래서 자본은 늘 사람들의 취향을 한쪽으로 몰아

선택지를 줄임으로써 예측과 대응이

쉽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트렌드'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트렌드는 어떠한 현상의 경향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취향이 모이면 트렌드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트렌드가 사람들의 취향을 만든다.

팬톤이 올해의 컬러를 연말에 발표하지 않고

연초에 발표하는 것은 이 점을 시사한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사람들의 취향과

시장의 방향 등을 고려해 발표하는 것이라지만,

거기엔 시장의 경향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트렌드’라는 단어가 더 이상 결과가 아니라

예측을 넘어 목표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자본주의가 가진 태생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취향을 강요당하지만

취향을 집중시킴으로써

우리는 전에 누릴 수 없던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누리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의 트렌드 공세가

취향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미디어를 덮어버리면,

트렌드 속의 것들은

세련되고 옳은 것이 되어 버리고,

그에 벗어난 취향들은 촌스럽거나 뒤쳐지거나

심지어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아니면 트렌드의 물살에 표류하다

목적지를 잊었음을 깨닫는 나처럼 되거나.



음식도, 디자인도, 컬러도, 음악도

우르르 몰려다니도록 만들고

지난 것들을 촌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예전부터 마케팅에 자주 써오던 것이다.

그것이 패션이나 디자인을 넘어

사람의 모든 생활영역에 확대되었을 뿐.



한 가지 변수라고 생각되는 건 다가올 AI다.

현재의 인공지능이 하고 있는

가장 활발한 영역 중 하나가 ‘추천’ 기능이다.

이전까지 사용자의 취향과 패턴을 분석해

찾지 않아도 좋아할 만한

최적의 콘텐츠와 제품을 추천해준다.

이미 각종 SNS뿐 아니라

쇼핑몰, 뉴스, 영화,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개인의 취향을 기준으로

추천 탭이 존재한다.

2,3차 산업에서는

취향의 집중이 효율을 가져왔지만

다가올 다음 산업과 AI의 시대는

보다 개인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의 추천이

정말 개인의 ‘취향’을 위해 작동할지

그보다는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위해

작동할지를 생각해 본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 결과는 각자의 취향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취향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 없이 추천 콘텐츠에 표류하다

취향을 잃고 즐거움마저 잃는 취향 고갈의 대중이

넘쳐날 것 같다는 생각은

그렇게 과한 생각은 아닌 듯하다.





* 평소에는 빛에 대한 글을 쓰지만, 가끔씩은 하고 있는 다른 생각들을 공유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