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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Jun 10. 2024

우리는 모두 다른 시간에 산다

사회적 시차증 : 알람에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


우리는 대부분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기 힘들어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매일 피곤에 지쳐있던 사회 초년생 시절, 지친 몸을 이끌고 들었던 퇴근길 라디오에서 관록 있는 어떤 라디오 DJ가 오프닝에서 한 첫 문장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문장은 바로 "인간은 지구에서 아침에 알람 소리로 잠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동물이다."였다.



그래, 맞다. 우리는 태양이 시 간을 지배하는 지구에 산다. 사람은 해가 뜨면 자연히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드는 동물인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바쁘고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가 하는 탄식을 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아침에 알람 소리로 잠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동물이다.



지구의 시간은 태양과의 관계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해 그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그 자연의 시간과 변화에 맞춰 살아간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며, 인류도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생명체들과 큰 차이 없이 태양빛이 만들어내는 시간에 의존해 살아갔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인류는 그 당시와 전혀 다른 방식의 시간을 산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체적으로 해가 뜨는 낮에는 생활하고, 해가 지는 밤에는 잠에 든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자연의 시간과 괴리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태양은 절대적인 존재다.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체들은 태양이 내뿜는 빛과 열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식물부터 빛의 유무에 따라 활동 시간을 달리하는 동물들까지, 태양의 리듬은 지구 생태계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인류 역시 태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법을 터득했고, 낮과 밤의 길이 변화를 통해 계절을 가늠했다. 해시계와 같은 도구를 통해 태양의 위치로 시간을 측정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밤낮으로 변화하는 햇빛의 길이를 기준으로 낮 시간을 12 등분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삶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우리는 태양과는 다른 시간에 살게 되었다. 1884년 워싱턴 D.C. 에서 열린 국제자오선회의에서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 세계시간(UTC)과 24개 표준시간대가 정해지면서부터다. 기차 시간표로 대표되는 당시의 교통과 통신 체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정확한 시간이 필수적이었기에, 표준시의 도입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결과였다.



2024년 3월 기준 세계 시간대 지도 (출처:위키커먼즈)



표준시의 도입으로 사회 전반의 효율성은 크게 높아졌다.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시계를 기준으로 정확한 시간 관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사회적 시간의 정의와 과학의 발달을 통해 모든 지역과 국가, 개인이 이제 거의 오차가 없는 공통된 시간 체계 안에서 살게 되었다. 우리는 이를 매우 당연하게 여긴다. 기차 및 비행기와 같은 국가를 넘어선 이동수단부터 1초에도 엄청난 거래량이 이루어지는 국제 주식시장의 거래까지, 심지어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수십억 인구가 모두 하나의 기준 체계 안에 살고 있다.



사회적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전 세계가 동일한 시간 체계 안에서 상호작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비즈니스와 교역, 금융 시장의 운영, 그리고 국제적 협력과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원활해졌다. 글로벌 경제에서 시간의 효율적인 관리와 조율은 필수적이다. 이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현대 사회의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 열리는 회의에 도쿄나 런던에서도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국제 비즈니스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런 기준을 위해 해 뜨는 시간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이를 위해 7시에 기상한다. 여름에 기상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지만, 겨울에는 집을 나서는 시간에도 아직 컴컴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시간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 나라를, 대륙을 하나의 시간대로 묶어 놓고 모두가 같은 시계를 사용하면 사회적 시간에 맞춰 몸이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태양이 아닌 사회적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당연한 일일까?



7시에 알람을 맞춰놓으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7시에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일어나는 것이 어렵다면 그저 전날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은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표준시의 시대에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태양의 리듬을 따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의 생물학자 틸 뢰네베르크 교수는 독일 통일 이후 동독과 서독 주민들의 기상 시간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이 문제를 두고 정치사회적인 해석이 분분했는데, 그는 오히려 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 결과 동독과 서독주민들의 기상 시간 차이는 정치적 성향 차이가 아닌, 경도에 따른 태양 위치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뢰네베르크 교수팀은 연구 범위를 남부 독일까지 확대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같은 시간대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평균 기상 시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늦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곧 현대인의 일상이 표준시에 맞춰 획일화되었음에도, 개인의 생체리듬은 여전히 태양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좌:시간생물학자 틸 뢰네베르크(Till Röneberg) / 우:기상시간이 시간대가 아닌 일출시간에 영향을 받음을 나타낸 지도



사실 지구 자체가 완벽한 구형이 아니기에, 같은 위도라 하더라도 경도에 따른 시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지구의 둘레는 적도에서 약 40,075km인 반면, 극지방으로 갈수록 둘레가 줄어든다. 이를 계산해 보면 적도에서의 경도 1 도당 시간 차이는 4분이지만, 극에 가까울수록 그 차이는 점점 줄어든다. 다시 말해 지역에 따라 태양 시간의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지역적 시차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흥미로운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미국에 서는 동부와 서부의 방송 편성 시간이 3시간이나 차이 난다. 프라임 타임 드라마가 뉴욕에서는 밤 9시에 방영된다면, LA에서는 저녁 6시에 방송되는 셈이다. 또한 뉴욕 증권거래소의 개장 시간인 오전 9시 30분은 LA에서는 아직 새벽 6시 30분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시간대까지, 동부와 서부 간의 시차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의 경우 극단적인 시차를 경험한다. 모스크바를 기준으로 칼리닌그라드는 1시간 늦은 반면, 블라디보스토크는 무려 7시간이나 빠르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의 학생들은 모스크바보다 훨씬 일찍 등교해야 하고, 출근 시간대도 크게 다르다. 반면 칼리닌그라드에서는 해가 늦게 뜨는 탓에, 일출 시간에 맞춰 등교하려면 너무 늦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경도에 따른 시간 차이는 단순히 해 뜨는 시각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생활 리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서울과 강릉이 같은 시간대를 사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두 도시의 경도 차이는 약 2.5도로, 10분가량의 일출 시각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 시간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의 일상에서는 더 큰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서울과 강릉의 직장인들이 모두 오전 9시에 출근한다고 해 보자. 강릉에 사는 사람들은 해가 일찍 뜨는 덕분에 생체시계긔 관점으로 10분 일찍 일어나는 경향을 가진다. 아무래도 아침 준비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아침에 10분 더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생각해 보라!)



반면 서울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해가 늦게 뜨는 탓에, 같은 시각에 출근하려면 신체적으로는 더 일찍 일어나야만 한다. 사회적으로는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지만 10분의 일출 시각 차이가 생활 리듬 차이를 낳게 되는 것이다. 매일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서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수면 부족과 피로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적 시차증'은 단순히 개인의 불편함을 넘어, 건강과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비만, 당뇨, 심혈관질환 등 각종 질병의 위험 요인이 된다. 나아가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뢰네베르크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시차가 클수록 건강 문제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시간 리듬의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학교와 직장의 일률적인 출퇴근 시간, 야근과 야간 활동을 부추기는 환경 등은 개인의 생체 시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24시간 깨어있는 도시의 불빛과 인터넷 역시 자연스러운 수면 리듬을 방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모두가 같은 시계를 보고 살아간다는 지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각자의 생체 리듬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사회적 시간만을 사용하는 지금의 천편일률적인 기준을 강요하기보다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유연한 시간 운용을 모색해야 할 때다.



모두가 같은 시계를 보고 살아간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각자의 생체 리듬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개인의 리듬을 고려한 탄력적 출퇴근 제도를 도입되는 것도 하나의 예시다. 업무 시간과 장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가 확산된 것처럼, 앞으로는 더 다양한 형태의 유연 근무제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구성원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조직의 생산성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도시 공간과 건축 환경을 설계할 때에도 자연 리듬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조량이 풍부한 오전에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야간에는 인공조명을 최소화하는 등의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건물의 방향과 창문의 위치를 태양의 움직임에 맞게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거주자들의 생활 리듬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다른 시간에 살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같은 시계를 봐도,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일찍 출근하는 사람과 늦게 퇴근하는 사람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시간 배분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구는 46억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생명은 그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며 진화해 왔다. 낮과 밤, 계절의 순환은 태초부터 생명의 리듬을 지배해 온 자연의 질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큰 시계와도 같다. 태양과 지구의 움직임으로 인해 지금의 지형지물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건물의 높이와 각도, 창문의 깊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의 진화된 모습과 분포, 모든 생명체들의 몸속에 있는 시계를 따라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까지 시계처럼 움직인다. 우리의 몸속에도 이 질서에 맞춰진 생체 시계가 존재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큰 시계와도 같다.



하지만 급격한 문명의 발달은 자연의 시계와는 다른 '사회적 시간'을 정의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구라는 시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이 시계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의 리듬과 문명의 속도 사이에서 현대인은 시간 앞에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지혜다. 시간을 지배하려 들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연의 리듬에 귀 기울이고, 나의 고유한 생체 시계를 존중하는 것. 그것은 곧 내 안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태양과 지구, 빛과 생명이 빚어내는 위대한 교향곡 속에서 우리 각자는 고유한 박자를 타고 살아간다. 시간을 경쟁과 지배의 도구로 삼기보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일. 어쩌면 그것이 진정 시간을 살아내는 법이 아닐까? 춤추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몸짓으로 인생이라는 무대를 빛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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