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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May 13. 2024

빛이 시간을 만들다

태양과 지구와 인간의 시간



자연의 빛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정오에는 해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다가 저녁이 되면 해가 진다. 그렇게 아침의 빛, 낮의 빛, 저녁의 빛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햇빛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빛의 변화가 있기에 비로소 우리는 하루와 한 달과 일 년을 구분하게 된다. 빛이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지구와 태양의 관계, 그리고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해 형성되었다.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한 바퀴 회전하는데 약 24시간이 걸리며, 우리는 이를 하루라고 정의한다. 또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공전하는 데에는 약 365일 6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를 일 년이라고 한다. 시간의 기본 단위인 하루와 일 년이 모두 지구와 태양의 상호작용에서 된다. 



현재 우리가 하루를 24시간으로, 한 시간을 60분으로, 1시간을 60초로 나누어 사용하게 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는 낮을 10시간, 새벽과 황혼을 각각 1시간으로 보고, 밤을 12시간으로 보는 24시간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이집트는 낮과 밤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낮의 길이 덕분에 해시계와 같은 시간 측정 도구를 사용하여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을 60으로 나누게 된 것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19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번영했던 이 문명은 이미 그 당시 높은 천문학적 이해와 정밀한 측정이 가능했으며, 그들이 사용했던 60진법을 사용하면서 지금의 시간체계의 근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개념은 변화하는 태양(실은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하는 현상)을 측정하여 이집트의 24시간 체계와 바빌로니아의 60진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루를 어떻게 계산했을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은 매일 변화한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도 그에 맞춰 달라진다. (당시의 개념으로) 온전히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 수 있었을까? 바로 정오다. 낮시간은 계속 변화하더라도 그림자가 하루 중 가장 짧아지는 정오는 늘 일정한 간격으로 일어난다. 정오의 간격을 24시간으로 나누고, 이를 60으로 나눈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이다.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태양빛의 변화에서부터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지구가 태양 빛이 변화하지 않는 행성이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우리는 달의 앞모습밖에 볼 수 없다. 이는 이는 달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일치하는 '동조회전' 현상 때문이다. 달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과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같다. 공전과 자전이 동시에 이루어져 지구에서는 달의 같은 면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지구가 태양과 동조회전을 하고 있는 행성이라면 어떨까? 만약 지구가 태양을 향한 한 면만을 보이며 공전한다면, 지구에는 하루라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한 면은 영원한 낮을, 다른 한 면은 영원한 밤을 경험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하루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정의되는 하루의 시작과 끝, 아침과 저녁부터, 계절의 변화도 일 년이라는 시간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태양과 동조회전이 일어나는 지구에서 우리는 하루도, 1년도 정의할 그 어떤 기준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루를 정의할 수 없으니 1시간, 1분, 1초도 정의 내릴 수 없다. 빛의 변화가 없는 행성에서 문명과 생명을 아우르는 절대적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라는 개념은 오히려 지역의 구분으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빛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고실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태양과 지구의 운동, 그리고 그로 인한 빛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같은 관점으로 우리가 사는 행성이 달라지면 우리의 시간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화성은 지구와 비슷한 자전 주기를 가지고 있어 하루가 약 24시간 40분이지만, 공전 주기는 지구의 약 2배에 달해 화성의 1년은 지구의 약 2년에 해당한다. 지구와 자전 속도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다른 행성에 비해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금성은 독특하게도 자전 방향이 다른 행성들과 반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독특한 점은 자전 속도가 매우 느려 하루가 243 지구일에 달해 공전 주기인 225 지구보다 느리다는 점이다. 금성에서는 하루가 1년보다 더 길어 전혀 다른 시간의 개념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전에 타 죽겠지만) 목성은 자전 속도가 매우 빨라 하루가 약 10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공전 주기는 무려 12 지구년에 달한다. 아니면 SF소설 삼체에 나온 문명처럼 태양계처럼 하나가 아니라 3개의 해가 뜨는 행성에 살고 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전혀 다른 개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사실은 태양과 지구와의 관계, 태양이 뜨고 지며 변화하는 빛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계절의 변화 또한 지구의 공전과 자전축의 기울어짐, 그리고 그로 인한 태양 복사 에너지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고 측정하는 방식 자체가 천체의 움직임과 빛의 변화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빛은 시간을 만드는 근원적인 요소다. 태양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시작되고, 빛이 사라지는 순간 시간도 마무리된다. 우리는 밤하늘의 별빛을 보며 계절을 가늠하고, 달의 위상 변화를 통해 한 달의 흐름을 느낀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류는 빛을 활용하여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해시계에서부터 현대의 원자시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들은 모두 빛을 기반으로 한다.



빛은 시간을 만드는 근원적인 요소다.



나는 빛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빛과 시간의 관계에 끊임없이 주목하게 된다. 조명 디자이너로서 나는 빛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연출한다. 어두움을 밝히고, 우리 눈에 편안한 빛 환경을 만들며, 목적에 맞는 조도와 색온도를 계획해 이를 구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상을 화려하게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부의 밝기에 따라 빛의 계획을 달리하는 설계도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빛의 영역은 공간의 영역에 더 가깝다. 



하지만 자연과 사회를 이루는 빛의 근원적인 의미는 단순히 공간의 채움이나 시간의 흐름을 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빛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본질은 숫자로 나누어진 구간들의 연속이 아니라, 빛을 통해 일어나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사회의 모든 변화다. 



시간의 본질은 숫자로 나누어진 구간들의 연속이 아니라,
빛을 통해 일어나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사회의 모든 변화다.



 빛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수록,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빛에 기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리듬에 따라 일어나고 활동하는 것,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옷과 음식을 바꾸는 것, 하루를 마무리하는 노을을 감상하는 것까지. 우리는 빛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인공의 빛 또한 우리만의 시간을 연출하며 삶에 다양한 색채를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빛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를 넘어, 시간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자연광과 인공광을 아우르는 빛의 환경은 우리의 생활 리듬과 감성, 나아가 존재 방식 자체를 결정짓는다. 우리가 어떤 빛 속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질감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빛을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빛이 베푸는 순리에 따라 호흡하고, 우리가 만들어낸 빛으로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 우리는 시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었다. 시간은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의 연속이 아니라, 빛이 빚어내는 변화의 산물이다. 해 뜨는 아침부터 별빛 가득한 밤하늘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향연 속에서 우리 각자의 삶의 여정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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