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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winkup Jun 20. 2016

쑥쑥 자라는 다육이의 비밀

넘치는 관심이 부른 웃자람의 늪

며칠 전 데려와 사무실 책상에 놓아둔 다육이의 키가 불쑥 자랐다. 역시 물을 주면 잘 자라는구나! 하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처음의 귀여운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오밀조밀 붙어 있던 잎들이 점차 듬성듬성해졌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거 같지만 알아볼 방법을 모르겠다. 잘... 자라고 있는 게 맞나?




식물을 기르기 전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물, 햇빛, 그리고 영양분. 이 셋만 있으면 어떤 식물이거나 다 잘 자랄 줄 알았다. 그래서 그 모든 걸 듬뿍 주었을 뿐인데 뭐가 문제였을까?


다육이는 새싹이 아니다. 사막이나 고지대의 척박한 땅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던 특이한 식물이다. 그래서 이 식물은 몸속에 살아갈 수 있는 수분이나 양분을 알아서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가정집에 왔더니 사랑이 넘쳐 큰일이다. 이미 충분한데, 자꾸만 물을 준다. 양분이 골고루 공급되면 덩치를 키우지만, 수분만 공급되니 한쪽으로 치우친 비정상적 발육이 시작되어 버렸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화분 안의 흙이 마를 날이 없어지니, 화분 안에서 습기가 차고 뿌리가 퉁퉁 불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당신의 다육이가 '웃자라고' 있다


웃자람 over growth
[명사] <농업> 질소나 수분의 과다, 일조량의 부족 따위로 작물의 줄기나 가지가 보통 이상으로 길고 연하게 자람. 또는 그런 일.



웃자란다는 용어를 모르던 시기, 왠지 망가져가는 다육이를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정보를 찾아봐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하던 때였다. "다육이가 자꾸만 길어지는데 괜찮은 건가요?"라고 질문해야 하나 고민 하는 사이 베란다 한 켠의 정야가, 레티지아가, 환엽송록이, 화제가 웃자라고 있었다. (사실 이 넷은 싸고, 구하기 쉽고, 예쁜 국민다육이면서도, 집으로 데려오는 순간 서로 웃자라겠다고 우기는 데 일가견이 있는 다육이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야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웃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


꽃처럼 환한 얼굴의 화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색을 다 잃고 길쭉길쭉한 모습으로 웃자라기 시작했다. 딱 한 번의 물 주기 이후 일어난 일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다육이를 들여다보자. 처음 사 왔을 때 찍어놓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 더 좋다. 잘 자란 다육이는 오히려 육안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잎이 촘촘해진 걸 느낄 수 있고, 덩치도 조금 불어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잦은 수분 공급으로 단시간에 키만 훌쩍 큰, 우리의 웃자란 다육이를 살펴보면 잎과 잎 사이는 듬성듬성해지고, 줄기는 꺾여서 땅에 쳐박히고, 초록색의 잎은 점차 색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다육이에게 "무럭무럭 자라거라"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지는 말자는 이야기이다.


다육이가 웃자라는 건 '물'의 문제만은 아니다. 햇빛 듬뿍 받으며 지내던 농원에서와는 달리,  전자파를 차단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다육이는 바람도 잘 불지 않는 형광등 불빛 아래 컴퓨터 모니터 옆에 자리를 잡고 힘겨워하고 있다. 햇빛 부족, 바람 부족, 여기에 물만 자꾸 부어주는 당신, 다육이는 정말 힘들다.


(왼쪽) 좋은 상태의 그리니는 빽빽하게 모여있지만, (오른쪽) 웃자란 그리니는 잎과 잎 사이가 듬성듬성 벌어져 있다. '웃자란' 것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그냥 예뻐 보여서 이미 웃자란 상태를 구매했던 초창기 이야기.

그리니 Pachyveria glauca
천대전송과 칠복수의 교배종, 이름은 같지만 두들레야 그리니와는 다른 종류. (둘의 몸값은 천양지차)


(왼쪽) 역시 이미 웃자란 줄 모르고 사온 유접곡 (오른쪽) 정상적인 상태의 유접곡을 사서 같이 심어주었다. 정상적인 유접곡은 잎과 잎 사이가 빽빽하지만, 웃자란 유접곡은 잎이 듬성듬성 나있고 줄기도 약해 보인다.

유접곡 Aeonium arnoldii
잘 키운 유접곡은 작은 나무처럼 보인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더 통통하다면 '소인제'일 것이다


동글동글한 게 예뻐서 데려온 아메치스는 동향 베란다의 부족한 햇빛 아래 점차 말라가며 그 형태를 잃어갔다. 마르는 게 불쌍해서 물을 자꾸 주니(그래 봤자 한 달에 한 번 수준이었음에도!) 마른 잎에 살이 오르는 대신 키가 커졌다. 악순환이다.



웃자람을 최대한 막는 방법


수많은 환경과 수많은 종류의 다육이마다 모두 다른 조건을 필요로 하기에 아래의 몇 가지 사항이 정답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준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치 "공부 잘하려면 예습 복습 철저히 하시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세요" 같은 말을 듣는 느낌이겠지만, 그래도 그게 기본인 것이니까.


1. 대부분의 다육이에게 물을 주는 건 한 달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것도 날을 정해놓고 주는 게 아니라, 상황 봐서, 적당히 잊고 있다가 주는 편이 더 낫다. 1~2주에 한 번? 큰일 날 소리.

2.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두자. 사무실 컴퓨터 옆이나, 거실 TV 옆에 두고 싶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기르는' 건 생각하지 말자. 형광등 불빛은 햇빛이 될 수 없다.

3.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자. 햇빛만큼이나 통풍은 다육이가 잘 자라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4. 물을 잘 배출할 수 있는 흙에 심어주자. 영양분이 많은 배양토는 열매를 맺는 식물이나 관상용 관엽식물에게 양보하고, 영양분은 없지만 입자가 굵어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에 배양토를 아주 조금만 섞어(8:2 또는 9:1도 가능하다) 심어주자.  


만약 위의 모든 항목을 지켰음에도 다육이가 웃자라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환경과 다육이가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어떤 다육이는 엄청난 양의 햇빛을 필요로 하고, 어떤 다육이는 동향의 베란다에서도 잘 지낸다.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다육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만남까지의 시간을 줄여주는 건 다육이를 향한 적당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 지금도 당신은 다육이를 위해 이 글을 찾아 읽는 수고를 들이고 있으니까.


+ 하지만 이렇게까지 되어서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다육이도 있다. 과연 대단한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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