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현 Mar 21. 2019

동료의 마케팅 글귀를 도와줄 때, 쓰는 방법

#마케터의 글쓰기


오늘도 요청을 받았습니다.

늘 그렇듯 글귀 검토를 요청하는 라인을 받았습니다. 배달의민족에서는 사장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들과 제휴를 맺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 제휴가 종료되고, 만족도 조사를 위한 설문을 보내려 하는 상황입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사장님들은 무척 바쁘시다는 걸요. 그렇기에 '설문조사를 잘 참여하실 수 있게 글을 다듬어 달라'고 요청받았습니다. 전달받은 초안은 이와 같았어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배달의 민족입니다.
6개월간 무료로 진행되었던 ㅇㅇㅇ 세무 서비스는 어떠셨나요?
업소 고정비를 절감하고, 세금 신고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준비했었던 스마트한 세무 서비스를 체험하시고 느끼셨던 경험을 들려주세요.

사장님의 소중한 의견들을 모아 더 좋은 서비스로 찾아오겠습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설문조사를 시작합니다!   
설문링크: http://
설문기간 : 19.02.14 ~ 19.02.20

설문을 완료하신 사장님들에게는 비즈포인트 1만 원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본 LMS는 ㅇㅇㅇ 서비스를 이용하신 사장님 대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배달의민족입니다.
이 문자는 ㅇㅇㅇ 세무 서비스를 이용하신 사장님들께만 발송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6개월간의 무료 세무 서비스가 종료되었는데요.
사장님께 어떤 경험이셨는지, 도움이 되셨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설문을 완료하신 사장님들께는 비즈포인트 1만 원이 제공됩니다.
3분만 시간을 내주세요.

설문 링크 :  http://
참여 기간 : 19.02.14 ~ 19.02.20

사장님의 조언을 참고하여,
반드시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라인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설문조사를 잘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던 요청사항은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읽고 약간 의아하지 않으신가요? '초안으로 줬던 글도 괜찮은데, 왜 바꾼 거지?' 하고요.


요청을 받는 건마다 단연코 못쓴 글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정 요청을 하는 이유는, 제가 고객 접점에서 전환 포인트를 잡아본 경험이 조금 아주 조금 더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수정본을 공유할 때, 꼭 그 '경험에서 비롯된 이유'도 함께 덧붙입니다. 위 수정본에 대해서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1) '제휴 서비스를 사용하신 사장님들에게만 발송되었다'는 점을 처음으로 빼서, 읽어보시는 사장님에게 필요한 정보임을 인지하고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 '비즈머니 1만 원을 제공한다'는 보상을 링크 앞으로 빼서, 링크를 더 클릭하고 싶도록 했습니다.
3) 추가로,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3분)는 점을 '보상' 바로 뒤에 덧붙여, 참여 여부를 따져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4) '업소 고정비' '세금신고 불편함 해소'등은 좋은 내용이지만, 글을 길게 하는 것보다 본문을 빨리 읽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뺐습니다. 문자니까요. 이미 경험한 서비스에, 소개용 문구는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왜 담당자님이 제가 쓴 글로 수정해서 발송했는지, 납득이 되시나요? 결과물인 '글' 때문만이 아니고, '이유'때문일 것입니다. 그냥 '음.. 제 느낌에는 이게 좋을 것 같네요’ 정도로 이야기한다면, 담당자님은 확신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저는 개인의 '감'만을 무턱대고 믿는 것은, 전체의 '감'을 떨어트리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는 곶감을 무서워했지. 저는 '감'이 무서워요.

디자이너분들과 일할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이때입니다. "왜 이 글귀가 좌측 정렬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해줄 때요. '설명'해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업할 때, '그냥.. 그냥 제 느낌이 그런 것 같아요.'만큼 두려운 말은 없습니다.  


그 사람의 '감'을 믿는 유일한 순간은, '신뢰'가 쌓였을 때입니다. 그동안의 협업 과정에서 충분한 엄청 충분한 신뢰를 보여주었고, 이 사람의 선택이 팔 할 이상 옳아왔을 때. 그때가 오면, '내 느낌인데?'라고 한마디만 해도 믿을 수 있죠. 오히려 그 말을 듣는 게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선택에 대해서 계속 '설명'해야 합니다.


이쯤 되면 필요 없겠죠..


이렇게 '설명'하는 과정은,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 외에 두 가지 장점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합니다. 감이 아니라 이유를 설명하면, '원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기회가 됩니다. 감으로 나온 결과에는 의견을 덧붙이기 어렵지만, 이유로 설명된 '원인'에는 의견을 덧붙일 수 있죠. "디자이너님.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구성 자체를 아예 바꿔도 좋을 것 같은데요?" 하고요. 이렇게 나온 결과물이 더 멋져질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설명을 보는 사람에게도, 설명을 쓰는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기회가 됩니다.



알리바바의 마윈도 그랬어요.  

너무 식상해서 안 쓰려다가, 마윈도 한 말이라는 핑계로 적어봅니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지 말고, 낚시를 가르쳐라'. 언제까지 제가 모든 걸 도와드릴 순 없습니다. 저도 제 주업무가 있으니까요. '이유'를 알려준다는 건, 내 업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지말고 낚시를 알려주세요. #직장인짤봇


저는 콘텐츠를 구성할 때, 디자인 기획까지 하고 있습니다. 배치, 구도, 크기, 색 등등을 포함해서요. 하지만 전문 공부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디자인 지식은 현저히 부족합니다. 이제 와서 글로, 책으로 처음부터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죠.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색을 쓴다.'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배치를 한다.' 설명을 계속해준다면? 저는 실전에서 디자인 지식을 계속 쌓아갈 수 있죠. 이런 설명들이 많아진다면 저는, 나아가 조직은, 성장할 것입니다.


실제로 느끼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에서는 신규 사장님들에게 도움이 될 콘텐츠를 문자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초기 정착을 돕기 위해서요. 시리즈로 6회 정도 발송이 되는데요. 2회 차 발송을 맡게 된 담당자님이, 문구의 검토를 요청하셨습니다. 목적은 '클릭률이 높도록' 수정하는 것입니다. 전달받은 초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배달의 민족 가게 운영에 놓치면 안 되시는
배달의민족 활용 tip 2회 차를 전달드립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고객이 우리 업소에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사장님 한마디 구성 방법]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요!
http://

우리 가게의 조기정착과 안정적인 매출을 위하여
2단계 내용도 꼭 활용해보세요!!

사장님과 늘 함께합니다.
배달의민족 드림


잘 쓴 글입니다. 깔끔해요. 하지만, 조금 손을 보았습니다.  


사장님,
<신규 사장님을 위한 배달의민족 100% 활용법> 2탄이 도착했습니다.
고객의 리뷰를 부르고,
주문수를 높이는 데에는
‘사장님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예시와 작성방법을 확인해보세요.
▼사장님 한마디 구성 방법
http://

신규 사장님의 경쟁력이 배민의 경쟁력입니다.
검증된 내용을 꼭 활용해보세요.
배달의민족 드림


그리고, 이 역시 수정한 이유를 뒤에 덧붙였습니다.  


1) 첫 발송했던 메시지가 효과가 있었던 이유는, '신규 사장님'이라는 단어도 한 몫했습니다. 타깃의 상황을 직접 언급해주는 것은, 타깃이 정보를 받아들이지 말지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상단에 기재해주세요.
2) 신규 사장님들이 현재 가장 강력하게 느끼는 혜택은, 고객과의 친밀함보다는 '리뷰수' '주문수'등의 수치일 것입니다. (신규 사장님의 경우 당연히 숫자가 낮은 상태일 테니까요) 그래서 수치적 혜택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을 것 같습니다.
3) 더불어, 1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신규 사장님을 위한 배달의민족 100% 활용법>이라는 콘텐츠 타이틀을 계속 언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1단계를 보지 못한 사장님들이 메시지함을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도록요. 1단계의 조회수도 한번 더 높일 수 있겠죠?


이번 수정의 목적은 '클릭률'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내 글 문법 어때요? 맞춤법이 잘 맞나요? 이런 것이 아니죠. 초안도 이미 깔끔하고 잘 쓴 글입니다. 그렇기에 기존 문구를 수정하려고 한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타당한 이유가 덧붙여져야 합니다. 담당자님의 판단을 돕기 위해서요.


그렇게 2회 차 발송이 성공리에 끝난 후, 목적을 달성한 담당자님은 3차의 초안을 또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장님
<신규 사장님을 위한 배달의민족 100% 활용법> 3탄이 도착했습니다!

주문수에 영향을 주는 사장님의 리뷰 답변!
리뷰 답변의 유형별 예시를 알려드립니다.

▼고객 리뷰 답변 방법
http://

리뷰 답변으로 주문수를 높여보세요!
사장님께 도움이 될 콘텐츠로 먼저 찾아가겠습니다.
배달의민족 드림


더 이상, 수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2차를 수정하면서 말씀드렸던 부분들을 충분히 감안하고 계시더군요. 만약 결과물만 전달을 해드렸다면,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 설명드리지 않았다면, 포인트들을 주의해서 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3차는, 용어 수정만 해드리고,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런 글, 저런 글을 쓰다 보면 때로 예술을 하고 싶어 집니다. 이것은 글쟁이인가 마케터인가. 창가를 물들이는 햇살을 보며, 지금 내 입안에 스며드는 게 커피 향인지 봄의 향인지, 이 느낌을 글로 담아보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제가 마케터로 글을 쓰는 한 그런 글의 대부분은 제 일기장에나 적어둬야겠죠. 마케터로 쓰는 글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타깃을 설득하는 글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요. 그리고 우리는 혼자 일하지 않기에, 동료들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설명충이 되기로 했습니다.

이유를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은, 그 설명을 보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저는 결코 아니지만 공부를 잘하는 분들은, 친구를 가르쳐주면서 머리에 더 정리가 잘 된다고 하더군요. 동료에게 설명하기 위해 희미하게 얽혀있던 내 경험들을 텍스트로, 말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나의 것이 됩니다.


1%의 천재를 제외하고, 각 업을 해온 사람들의 '감'은 경험의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감을 신뢰할만한 사람은, 정말 오랜 경험과 실패와 성공으로 다져졌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경험하고 설명하고 경험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쭉요. 사실, 당연한 것 같아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대박이 나버렸네요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말하는 마케터에게, 다음 프로젝트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비롯된 이유를 설명할 것입니다. 그렇게 신뢰가 단단해진 언젠가엔, 제 감을 '무조건' 지지해주는 동료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꼭 이런 말을 듣고 싶네요. "지현님의 '감'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럼 바로 Go."



(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