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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Mar 03. 2017

박보영의 '도봉순', 놀라운 흥행파워 과시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배우 박보영이 주연을 맡은 JTBC 금-토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이 역대 JTBC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놀라운 화제성으로 단번에 안방극장을 평정하고 동 시간대에 가장 주목도 높은 콘텐츠로 떠올랐다. 앞서 ‘힘쎈여자 도봉순’은 드라마 불모지라 할 수 있는 금요일과 토요일 심야 11시에 편성돼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코믹터치의 유쾌한 전개와 적당히 가미된 스릴러의 조화로 첫 회부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을 거뒀다. 타이틀롤을 맡은 박보영의 연기력과 매력이 이 드라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해낸 것도 사실이다. 자칫 ‘오버’하는 듯 보일 수 있는 과장된 캐릭터인데도 적절히 톤을 조절하며 소화하고 있는 박보영 덕에 인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호평이다. 



금-토 심야 11시 새로운 ‘드라마 존’ 개척 성공 
박보영 주연작 ‘힘쎈여자 도봉순’은 지난달 24일 금요일 오후 11시에 첫 방송돼 4.0%(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역대 JTBC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다. 2049 연령대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타깃시청률도 2.3%까지 올라갔다. 다음 날 방송된 ‘힘쎈여자 도봉순’ 2회는 수도권 유료가구 6.0%, 타깃 3.7%까지 치솟아 눈길을 끌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이 기록한 성적은 ‘JTBC 역대 드라마 오프닝 스코어 기록 경신’ 외에도 ‘금-토 심야 11시대를 개척했다’는 큰 의미를 지닌다. tvN이 월-화 오후 11시에 드라마를 내보내며 이 시간대를 ‘드라마 존’으로 만들어 내면서도 막상 금-토 심야시간대 개척에는 실패한 사례가 있어 ‘역시 드라마를 내보내기에는 쉽지 않은 시간대’라는 말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당연히 JTBC가 이 시간대에 드라마를 편성한 후에도 방송계 전반에서는 ‘실패’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평상시 금-토 심야시간대 시청자들의 동향을 파악할 때 평균적으로 20대의 비중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터라 트렌디한 드라마를 투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분석이 나왔다. 
그래서, ‘힘쎈여자 도봉순’이 끌어낸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은 방송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역대 JTBC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자랑한 작품이 ‘밀회’인데 ‘힘쎈여자 도봉순’은 불리한 시간대를 평정한 건 물론이고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까지 갈아치우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탄 JTBC의 채널 주목도, 그리고 콘텐츠 경쟁력을 믿고 실행한 과감한 편성 전략이 만들어 낸 시너지 효과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이 모든 제반 여건을 등에 업고 마음 편안하게 시청자들을 홀리는 데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힘쎈여자 도봉순’, 휘발성 뛰어난 트렌디 드라마 
JTBC가 줄줄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내놓고 보도 역량을 인정받는 와중에도 한 가지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부문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드라마다. 개국 초기에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등 우수한 작품을 내놨지만, 당시에는 채널 인지도가 높지 않았고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이미지까지 좋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스타작가 김수현이 집필한 ‘무자식 상팔자’로 자체 최고 13%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적도 있지만, 그 후로 편성된 드라마들의 성적이 그 수준을 받쳐주지는 못했다. 화제성 면에서는 6%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밀회’가 더 높은 편이었고 이 때문에 최근까지도 JTBC의 대표작은 오로지 ‘밀회’뿐이었다. ‘송곳’이나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아내의 자격’ ‘욱씨남정기’ 등 탄탄한 만듦새와 재미로 무장한 수작들이 있었지만, 시청률은 3~4% 수준에 그쳤고 화제성 역시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기존 드라마 편성시간대가 tvN과 정면 승부를 하거나 지상파 콘텐츠까지 견제해야 하는 악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JTBC 드라마가 단번에 시청자를 휘어잡을 수 있을 정도의 휘발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tvN이 드라마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작가들을 줄줄이 영입하고 톱스타들을 캐스팅해 기대감을 높인 데 반해, JTBC는 ‘꽤나 괜찮은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는 수준에 그치며 다소 평이한 캐스팅과 내용으로 일관했다. 타 방송사가 저마다 ‘최고 스펙’으로 중무장한 드라마를 내놓는 와중에 ‘그저 괜찮은’ 수준의 작품들을 내놨으니 주목도를 높이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밀회’를 비롯해 ‘청춘시대’ 등 극찬을 끌어낸 작품들로 JTBC 드라마의 색깔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청률과 화제성을 정상권으로 올려줄 휘발성 강한 콘텐츠의 등장이 절실했다. 



그런 의미에서, ‘힘쎈여자 도봉순’을 기획한 건 절묘한 전략이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라는 설정, 그리고 여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훈남’들의 감정싸움, 여기에 적절하게 가미된 스릴러,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조연들까지. ‘힘쎈여자 도봉순’은 현 국내 드라마 시장의 흥행 코드를 적절히 버무려낸 작품이며 무엇보다 기존에 JTBC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휘발성’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 ‘오! 나의 귀신님’ 이후 상종가를 친 박보영을 캐스팅해 전면에 세워뒀으니 이 정도면 그 나름 안방극장 흥행 성공을 위한 ‘고스펙’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뒤를 잇는 드라마 역시 탄탄한 흥행 코드를 갖춘 박해진 주연작 ‘맨투맨’이다. 오랜 기간 답보 상태를 이어오며 예능과 보도 부문과 비교하면 기를 펴지 못했던 JTBC 드라마의 활로가 모처럼 트였다. 


박보영, ‘도봉순’ 성공의 일등공신 
‘힘쎈여자 도봉순’은 박형식-지수 등 주목도 높은 남자 스타들을 캐스팅하고, 임원희-유재명-심혜진-전석호-김민교-김원해 등 탄탄한 연기파 배우들을 조연 라인에 대거 배치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쟁쟁한 배우들이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며 신을 살려내니 눈이 즐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드라마 흥행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만한 인물을 꼽아보자면 단연 박보영이다. 단순히 타이틀롤을 맡은 주연배우라서가 아니라 사실상 ‘도봉순’이라는 캐릭터의 완성이 박보영 캐스팅과 함께 이뤄졌기 때문이다. 
극 중 도봉순이란 캐릭터는 모계 유전 때문에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타고난 인물로 그 설정 자체가 사실 황당하다. 각본상에서 글로 읽었을 때 매력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캐릭터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상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시청자를 설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런 난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역시 캐릭터를 표현할 적합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그런데 괴력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여리고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호감도 높은 애교로 남녀 시청자를 고루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하며, 사투리와 표준어를 고루 구사하고 과장된 연기까지 맛깔 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흔치 않다는 게 문제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타이틀롤이라 당연히 연기력이 보장돼야 하고, 휘발성 높은 드라마에 불을 질러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올 수 있는 주목도를 가진 배우라야 한다. 이미지상 아이돌 스타 몇 명이 떠오르긴 했지만 연기력이 문제다. 한류스타로 활동 중인 모 배우는 나이가 들어 더는 이런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 그러니 결국, 박보영이다. 배우는 작품을 제대로 골랐고 작품은 배우를 제대로 만났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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