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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Feb 27. 2019

살아남는 배우의 조건

[대중문화 이야기]

배우 조성하는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 사이비 교주 역을 맡아 시청률과 화제성을 견인하며 흥행의 공신으로 꼽혔다. 앞서 '동네의 영웅'이나 'The K2' 등 드라마에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어색한 연기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구해줘'에서는 맞춤옷을 입은 듯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구해줘'에서 맡은 사이비 교주 역은 진지하고 어두운 톤이 강했고 조성하가 가진 마스크의 특성, 그리고 목소리 톤과 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가 났다. 여기에 모발 전체를 하얗게 탈색하는 등 비주얼적인 면까지 신경을 기울여 몰입도를 높였다. 전작에서 어정쩡한 연기를 보여주던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다. 바꿔 말하면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춘 배우도 쉽게 소화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건데 사실 조성하 외에도 본인의 능력 때문에, 또 환경적 요인 때문에 이런 식의 시행착오를 겪는 배우들이 은근히 많다. 이번에는 배우들이 겪는 시행착오와 연기력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성하, 시행착오 끝에 제 패턴 되찾아

조성하는 특유의 무표정한 인상이 매력적인 배우다. 뛰어나게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중년의 멋이 느껴지는 분위기 있는 마스크를 가졌다. 특히 대사가 많지 않아도 이미지만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능력을 갖췄다. 관객 또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호감을 느끼게 하거나 또는 호기심을 가지도록 유도할 수 있는 외적 이미지와 분위기, 그리고 목소리. 성공하는 배우가 가져야 할 조건들이다. 간단히 말해 대중을 홀릴만한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연기력만 좋다고 해서 성공 가도에 오를 수 없는 직업이다.


다시 조성하 케이스로 돌아와서,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배우는 꽤 그럴싸한 조건을 갖춘데다 주목도 높은 작품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는 행운까지 누렸다. 그런데 본인의 욕심 때문이었는지 혹은 소속사 관계자들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최근 두어 편의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동네의 영웅'은 특히 심했다.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허풍을 섞어 너스레를 떨며 웃음까지 유발해야 하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낮은 톤의 목소리에 굳은 표정을 가진 조성하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The K2'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기한 캐릭터는 비밀을 숨기고 사는 부패한 정치인으로 이중적인 면모를 부각시켜야 하는 캐릭터였다. 이 작품에서도 조성하는 캐릭터의 진지하고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신에서는 합격점을 받을만한 연기를, 그 반대의 톤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와 영화계를 돌며 조연이나 단역을, 또는 저예산 영화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종종 연기하며 지내던 조성하에게 메인 무대 진입의 기회를 준 건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였다. 당시 조성하는 김윤석-하정우 등 A급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 번째 남자 주연급' 캐릭터를 연기했다. 살인 지령을 내렸다가 일이 잘못돼 난감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의 내면을, 지켜보는 이들의 속까지 답답해질 정도로 치밀하게 표현해 호평을 끌어냈다. '구해줘'에서 보여준 연기와 마찬가지로 외적 이미지와 목소리 톤이 캐릭터와 맞아떨어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

고뇌하고 심각하며 은근히 매력적인 중년 남성의 이미지, 여기에다 강렬하고 임팩트 있는 연기까지 가능한데 문제는 낄낄대며 웃고 너스레 떠는 연기가 영 어색해 보인다는 것. 유사한 캐릭터만 줄줄이 가져오다 보면 '조성하의 연기는 똑같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배우 자신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시도를 한다는 건 그다지 응원해줄 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어쨌든 배우는 연기력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공감대를 형성해 작품 전체의 성공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직업이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빠르게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찾아가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가야 할 자리를 모르거나 찾아갈 능력이 없다면, 혹은 스스로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면 그게 정말로 큰 문제다. 조성하는 다행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톱스타들의 이유 있는 연기력 논란

톱스타 중에서도 어색한 연기로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케이스가 많다. 송승헌은 사실 그 경력이나 스타성과 비교하면 표현력이 풍부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보여 준 연기 역시 '사극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지만, 아무래도 연기력 논란의 정점을 찍은 작품을 꼽으라면 영화 '인간중독'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깊이 있는 감정 연기가 동반되는,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만 하는 진한 멜로영화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그다지 우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하고 있으나 어쨌든 그보다 남자 주인공의 감정선이 잘 살아났다면 그 정도로 극심한 혹평을 들으며 참패하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여주인공 임지연의 연기력이 문제였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지만 어쨌든 당시 임지연은 데뷔작을 찍은 '초짜'였고 그 매력적인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제 할 일은 한 셈이다. 분명 이 작품에서 중심을 잡고 영화 전체를 리드해야 하는 인물은 남자 주인공인 한류스타 송승헌이었고 단 한 장면에서도 관객을 몰입시키지 못한 어색한 연기력을 보여준 그가 영화 '인간중독'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작품 이후 송승헌은 코미디 영화 '미쓰 와이프'에서 사실상 조연 캐릭터를 연기하며 주인공 캐릭터를 맡은 엄정화를 받쳐줬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두드러지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몸에서 힘을 뺀 송승헌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저런 모습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을 유발하는 컷까지 재치있게 소화하며 편안한 표정을 짓는 송승헌의 모습은 '인간중독'에서 보여주려 노력한 근사한 표정보다 월등히 매력적이었다. 드라마 '플레이어'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캐릭터는 송승헌이란 배우의 매력을 부각시키기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감정선이 진하게 드러나는 멜로 연기에 약점을 가지고 있는 대신 적당히 몸을 쓰는 액션과 장난기를 가진 캐릭터를 보여줄 때에는 보는 이들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차원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이 역시 '연기를 잘했다'고 칭찬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다만, 적어도 송승헌이란 배우의 외모가 가진 장점과 해외 인지도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부분이니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잘 골라내고 지나치게 무리한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큰 문제없이 배우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듯 하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매력의 '끝판왕'으로 등극했던 공유도 사실 영화 '밀정'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남겼다. 특히 송강호와 맞붙는 장면이 골칫거리였다. 이종석이 영화 '관상'을 마친 뒤 스스로 보기에도 "내가 나오면 흐름이 깨지는 듯 느껴져 부끄러웠다"고 자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송강호와 백윤식, 조정석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들 틈에 끼어 부족한 자신의 실력을 느꼈다는 '칭찬할만한 반성'이었다. '밀정'에서 보여준 공유의 연기 역시 마찬가지다. 하필 대배우 송강호의 대사와 눈빛을 받아치느라, 거기다 이병헌까지 특별출연해서 한 신에 등장하는 통에 도무지 트렌디 드라마 전용 배우로 활동했던 공유가 치고 나갈 틈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도깨비'에서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보여주며 놀라운 매력을 발산했던 배우에게도 약점이 있었던 셈이다.


그 외에도 영화 '우는 남자'에서 보여준 장동건의 '오버연기', 영화 '세이 예스'의 악역으로 나섰다가 실패한 박

중훈 등 배우들의 시행착오에 관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무리한 욕심으로 '리얼'이란 졸작을 세상에 내보이는데 일조한 김수현도 큰 비용을 치르며 시행착오를 겪은 케이스다. 관건은 시행착오가 시행착오로 끝나느냐 실패로 마무리돼 벼랑 끝으로 떨어지느냐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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