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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Mar 11. 2019

대본과 연출, 드라마 성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 이야기]

                                                                                                                                                                            

'쪽대본'이 날아다니고 '생방송'을 하듯 바쁘게 찍어내기에 급급하던 시절, 드라마 시장에서는 연출자의 역량보다 작가의 필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연출자가 자신의 생각대로 현장을 지휘하기엔 여유가 없었고 그저 작가의 대본에 맞춰 빠르게 촬영을 마쳐야만 원활한 방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전제작 형태의 작업이 이뤄지고 제작 시스템도 정교해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자연스레 드라마 연출자가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과거 대비 어느 정도는 만들어졌고, 기획과 진행 과정을 컨트롤하는 프로듀서 등 주요 스태프들의 역량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드라마 시장에서 스타작가의 필력은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최우선 사항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타작가 한 명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볼 수 있겠다. 연출자와 작가의 합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에 따라 드라마의 완성도가 결정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간혹 작가의 존재감이 크지 않더라도 연출자의 역량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근 1년여 기간 동안 히트작 대열에 오른 작품을 살펴보면 연출자와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이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알 수 있다.



김은숙 작가 + 이응복 PD, 업계 최고 콤비로 부각돼


연출자의 역량이 눈에 들어온다고 해서 작가들의 비중이 줄어든 건 절대 아니다. 여전히 드라마 시장에서 작가의 필력은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이며 최근에도 신작을 성공시키며 이름값을 해낸 작가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역시 김은숙이다. 앞서 '도깨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미스터 션샤인'으로 또 한번 역량을 과시했다. '미스터 션사인'은 본인의 주력 장르를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입지를 넓혔다는 이유로, 또 그러면서도 성공을 거뒀다는 차원에서 김은숙 작가의 경력 상 '터닝 포인트'라 부를 만한 작품이 됐다. 말 그대로 '미스터 션샤인'은 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집중했던 김은숙 작가의 첫 시대극이었으며 스케일 또한 최대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었다. '시크릿 가든'에서 판타지를 도입하고 '도깨비'에 이르러 사극을 접목시키는 등의 시도를 성공시켰는데 본격적으로 작품 전반에 걸쳐 시대 배경을 현대가 아닌 조선으로 설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배경설정이 이렇게 되면 당시 벌어진 사건과 인물에 대한 고증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며 그래서 작가 또한 발목을 잡혀 자유로운 필력 구사가 쉽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김은숙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아 자신의 주특기인 로맨스를 적당 비율로 버무려 시청자를 휘어잡는 데에 성공했다. 정통 시대극이라고 하기엔 결이 다르지만 이로써 김은숙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 외에도 잘 할 수 있는 장르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또 한번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도깨비'에서 함께 했던 연출자 이응복 PD가 있었다. '태양의 후예'부터 벌써 세 편의 드라마를 함께 했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작품들이 하나같이 '대박'을 터트리며 두 사람을 업계 최고의 명콤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응복 PD는 대형 스크린에서 봐도 만족스러울 법한 영상미와 리듬감 있는 편집감을 보여주며 김은숙 작가의 대본을 적절히 잘 살려냈다. 세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진행된 해외 로케이션에서도 현지의 풍광을 멋지게 살려내 현지 촬영에 들어간 제작비를 아깝지 않게 만들어냈으며, 무엇보다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완성시켜 몰입도를 높였다. 김은숙 작가와 함께 세 편의 드라마를 내놓는 동안 이응복 PD 역시 업계 최고의 연출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이름값 톡톡히 해낸 스타작가들


작가 개인으로만 봐도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케이스가 많았다. 최근 SBS 수목극 '황후의 품격'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가 대표적인 예다. 지상파 미니시리즈 중 10%의 벽을 넘어서는 드라마가 드문 현 경쟁 환경 속에서 '황후의 품격'은 15%대를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다. 물론,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결국은 본인의 장기인 '막장 요소'를 부각시켜 온갖 욕을 다 먹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를 놓고 봤을 때 그저 시청률과 이에 따른 광고수익만을 노렸던 SBS의 '벼랑끝 전략'을 성공시킨 돌격대장 역할을 해낸 셈이다. 

김순옥 작가는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등 일일극과 주말극 등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연속극으로 스타 작가 대열에 오른 인물이다. 주로 자극적인 설정과 우연에 의지한 전개 등으로 복수극을 펼치며 '막장 드라마'라는 단어를 널리 알린 '공신'이기도 하다. 트렌디한 느낌이 강하고 완성도까지 남달라야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미니시리즈 시간대에서는 단 한번도 작품을 내놓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황후의 품격'을 인기작으로 만들어내면서 작가 인생에 있어 새로운 역사를 쓰는 듯 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런 인상이 강했다. 자신의 주특기를 숨기지 않고 자극적인 설정을 가지고 가면서도 스스로 폭주를 자제하며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어울리는 전개를 펼쳤다. '막장극'을 떠올릴 정도의 설정인데도 적정 수위를 지키니 몰입도는 높아지고 보는 이들도 '막장 드라마 마니아'라고 스스로를 폄훼하지 않아도 돼 좋았다. 하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김순옥 작가는 이 드라마를 시작할 당시의 초심을 버리고 편하게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저 시청률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무리한 설정을 가져오고 캐릭터들을 기본 설정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사용하는 등 좋게 말해 과감한 집필을 이어갔다. 다만, 결과로 봤을  때는 성공이고 김순옥 작가 역시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증명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임성한 작가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누가 막장드라마로 김순옥을 꺾을 수 있을까. 



tvN 주말극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내놓은 송재정 역시 2016년 'W'로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다. 웹툰과 현실 세계를 접목시킨 'W'로 상상력과 이를 대사와 지문으로 풀어내는 필력을 인정받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도 게임과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극중 내용을 절묘하게 묘사해 호평받고 있다. 중장년 층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1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순항했다. 물론, 'W'와 마찬가지로 다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소재를 가져온 탓에 중장년층까지 감싸안고 가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게다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굉장히 많은 복선을 깔아놓은 것에 비해 마무리가 부실해 드라마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송재정이 국내 드라마 작가 중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작가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본인이 채택한 복잡하고 미묘한 소재를 풀어내는 솜씨 역시 남다르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적어도 이런 작가가 한 명 쯤은 있어야 국내 드라마도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화제의 드라마 'SKY 캐슬'의 유현미 작가도 주목할 만하다. 트렌디한 작품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얻었던 작가는 아니지만 앞서 '각시탈' '골든 크로스' 등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필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서울대-고대-연대를 의미한 'SKY'를 타이틀로 삼아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강남 상류층의 모습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다. 20%가 넘는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 면에서 폭발적인 파워를 자랑했다. 주제를 부각시키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눈길을 끌만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배치해 재미를 주는 솜씨, 전체 구성을 놓고 봤을 때는 물론 허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매 회차별로 완결성을 보여줘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전개 등 상당한 노련미를 과시한 작가다.  



연출의 힘으로 정면승부


'SKY 캐슬'의 성공은 유현미 작가의 필력 뿐 아니라 조현탁PD의 연출력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다. 유작가의 각본이 워낙 탄탄했기에 일단 이야기의 힘 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겠지만, 실력있는 연출자가 함께 하지 못했다면 자칫 자극적인 설정을 부각시키는 정도에 그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SKY 캐슬'은 국내 드라마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카메라 워크와 감각적인 음악의 밸런스로 작품 전체의 퀄리티를 최상급으로 끌어올렸다. 캐릭터의 감정상태를 반영하는 구도,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를 끌고 갔던 음악 등 전반적인 연출의 힘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가 고급화 전략은 실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급하게 찍어내는 데에 급급했던 과거 드라마 현장이었다면 이 정도로 양질의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예쁜 누나') 역시 연출자 안판석의 실력이 돋보인 드라마다. '아내의 자격'부터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정성주 작가와 콤비 플레이를 펼치다 '예쁜 누나'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김은 작가와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바로 이 지점이다. 베테랑 정성주 작가와 함께 작업하다 신인급 작가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드라마 연출자에게 있어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히려 안판석 PD는 자신이 연출의도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반전을 꾀했다.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도록 롱테이크에 가까운 긴 호흡의 테이크를 사용했고, 컷 수를 최소화해 마치 극장에서 잘 연출된 예술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여기에 올드팝을 OST로 사용해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는 식으로 현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출을 시도했다. 기존 드라마 업계의 관행에 비춰본다면 제작자를 비롯해 출연자들까지 모두 우려하며 반기를 들었을 법 하다. 실제로 이 드라마 현장에서도 걱정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없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도 안판석 PD의 연출은 극중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고스란히 안방극장으로 전달하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쓰이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작가의 필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연출력 만으로 승부수를 띄워 성공한 케이스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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