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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야키니쿠 요리의 발자취


제2장 야키니쿠 요리의 발자취





1958년, 쇼와 33년,


나는 15세의 나이에 야키니쿠의 세계로 들어섰다.





요리사로서 “맛있다”는 한마디를 들을 때의 기쁨,


그것이 나의 원동력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일본 야키니쿠 업계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업계 안에서도 내가 가장 오래된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변화와 흐름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맛에 대한 진심”이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야키니쿠 요리가 걸어온 길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개인사가 아니라,


일본의 식문화 속에서


야키니쿠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왔는가를 남기기 위함이다.





이 글을 통해,


야키니쿠의 건강한 발전을 염원하며,


이 길을 함께 걸어온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요리인의 시점에서,


그리고 **“불 위에서 인생을 구운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장을 “야키니쿠 요리의 발자취”라 부르고자 한다.



야키니쿠의 탄생 ― 소고기와 ‘타레’의 기원을 풀어내다


한반도의 구이 문화가 일본식으로 발전한 이유





야키니쿠(焼肉)는 언제, 어디서 태어난 것일까.


그리고 ‘야키니쿠’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본의 ‘야키니쿠’ 문화가 정착한 것은 1948년,


오사카의 ‘食道園(쇼쿠도엔)’ 창업을 계기로 한다.


이때부터 ‘야키니쿠’라는 이름이


‘고기를 구워 먹는 요리’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전후(戰後)의 혼란기 속에서


고기 식문화는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고기’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근원은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의 식문화에 있었다.


20세기 초,


조선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불고기(プルコギ)’와 ‘양념구이(ヤンニョン焼き)’ 등의


조리법을 함께 전한 것이 시초였다.





즉, 일본식 야키니쿠의 기원은


한반도의 가정식 구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 전후의 혼란기에


이 조리법은 일본 각지로 퍼져나갔고,


현재의 ‘야키니쿠’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을 살펴보면,


일본 야키니쿠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한반도의 구이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다는 점


소고기 식문화가 점차 대중화되었다는 점


전후 일본 사회의 경제 회복


도시화에 따른 외식 문화의 확산


‘타레(양념)’의 진화






이 다섯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일본식 야키니쿠’의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왜 ‘소고기’였는가





조선반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식문화적 배경이


‘소고기 중심의 야키니쿠’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에도시대까지


육식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전후(戰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소고기’가 일반 가정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따라서


전후 일본 사회에서의 ‘야키니쿠’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전통적 금기를 넘어선 새로운 풍요의 상징이었다.





타레(양념)의 진화 ― 담그는(漬ける) 요리에서 바르는(絡める) 요리로





한반도에서는


고기를 양념에 오래 담가 두는(漬ける) 조리법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고기를 구운 뒤에 양념을 바르는(絡める) 방식이 정착되었다.





이 차이는


기후와 재료 보존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습하고 온난한 기후 탓에


장시간 재워두는 조리법은 적합하지 않았다.


대신,


간장과 미림, 설탕, 마늘, 참기름 등을 배합한


달콤짭짤한 ‘타레’ 양념이 발전했다.





이 타레는


한반도의 매운 양념과는 달리


‘감칠맛(うま味)’을 중시한 조합이었다.





그리하여


야키니쿠는 점차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형태의 구이 요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호르몬(内臓)’에서 ‘야키니쿠’로





전후의 혼란기,


정육업자들은 값싼 내장(ホルモン)을 활용한 요리를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호르몬야키(ホルモン焼き)’**이다.





‘호르몬’은 ‘던지는 것(放るもん)’이라는 오사카 사투리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버려지던 부위를


맛있게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한 것이다.





이 호르몬야키는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맛과 가격, 그리고 활기찬 분위기가 어우러져


‘야키니쿠 문화’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위 ‘정육구이(正肉焼き)’ ― 즉, 고급 부위를 사용하는 구이 문화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호르몬야키가 ‘서민의 맛’이었다면,


야키니쿠는 ‘도시의 고급 외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타레 ― 미래 야키니쿠의 핵심





야키니쿠의 매력은


고기 자체의 품질뿐만 아니라,


타레의 향과 맛의 조화에 있다.





전후 일본의 야키니쿠점들은


각기 독자적인 타레 레시피를 개발하며


자신들만의 ‘가게의 맛’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타레야말로 야키니쿠의 얼굴(顔)**이었다.





이후,


타레의 발전은 일본의 외식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규동의 소스,


가츠동의 양념,


카레의 베이스,


모두 야키니쿠 타레의 감칠맛 구조와 유사했다.





타레는 ‘양념’이 아니라 ‘문화’가 된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맛의 품격





오늘날,


야키니쿠, 라멘, 카레는


일본인의 국민식(国民食)으로 불린다.


야키니쿠는 한반도에서 건너왔지만,


일본의 미식문화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였다.





이제,


야키니쿠는 일본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식 구이 요리’**로 자리매김했다.





야키니쿠의 매력은


‘불의 예술’이자


‘타레의 과학’이다.





나는 요리인으로서


이 불과 양념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가능성에 감사를 느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아름다운 조리 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정확히 전하는 일이다.






해설


이 장 「焼肉誕生 牛肉・タレのルーツを紐解く」는


저자 **신아이 야스미치(新井泰道)**가


일본식 야키니쿠 문화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문화적으로 분석한 부분이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원 — 한반도의 구이 조리법(불고기·양념구이)이 일본에 전해짐


전환 — ‘담그는 문화(漬ける)’에서 ‘바르는 문화(絡める)’로의 조리방식 변화


대중화 — 호르몬야키 → 정육야키니쿠로 이어진 경제적·사회적 발전


양념의 철학 — ‘타레’는 단순한 소스가 아니라, 일본 외식문화의 핵심 구조


세계화 — 일본식 야키니쿠는 현재 ‘국민식(国民食)’이자 세계적 미식 브랜드로 성장






즉,


이 장은 “한반도의 불고기가 일본식 미식으로 진화한 과정”을


식문화사적 관점에서 조명한 것으로,


신아이 야스미치가 자신의 요리 철학과 역사 인식을 동시에 드러낸 부분이다.


그의 핵심 신념 ―


“맛은 전통에서 배우되,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味は伝統に学び、時代に合わせて進化する)”


는 일본식 야키니쿠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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