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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Nov 07. 2023

Just Walk Holland-사기꾼을 조심하세요.

사기꾼과 처음 대화를 해보니,

금요일부터 없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네덜란드에서 지낼 방을 찾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중개인을 통하는 방법,

지인을 통해 구하는 방법,

페이스북에서 방을 내놓다는 게시글을 보고 연락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은 세 가지를 다 동원하며 매일 방을 찾고 있는 중이다. 네덜란드는 밀려드는 피난민과 이주민, 유학생들로 집값이 굉장히 올랐을 뿐만 아니라 공급도 적어 세 놓은 집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집 전체를 구한다는 개념보단 방 3개짜리 집에 내방 1개를 임대하는 게 일반적이다. 원룸을 구하려고 해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싱글 청년들, 특히 나 같은 외국인은 주로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거실과 주방, 욕실을 공유하며 지낸다.


이틀 정도 집을 찾으며 깨달은 것은 중개인을 통해 구하는 방법이 안전하나 현실적으로 네덜란드에 고용된 상태가 아니면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집주인들이 중개인에게 요구하는 서류는 대부분 고용 계약서, 이전 3개월 간의 월급 명세서인데 나는 아직 네덜란드에서 취직이 확정된 것이 아니니 이 방법으로 집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을 통해 구하기 위해서 일단 내가 아는 더치 카미노에서 만났던 두 분께 연락 드려놨는데, 이것도 내가 어떻게 강력히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K가 자기가 룸메이트를 뽑을 때 페이스북을 이용했다고 해서 나도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방을 찾는 광고에 메시지를 20군데 정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한 명에게 답장이 왔는데 집 사진도, 계약 조건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4번 정도 서로 이메일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마지막으로 "언제 이사할 계획이야?"라는 말에 난 "11월 10일에 도착하는데, 11일에 방을 보고 별로 문제가 없으면 그때 계약서를 쓰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전에 서로 얼굴 보고 통화를 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나에게 계약서 양식을 미리 보내주면 읽고 가서 서명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 친구는 내 요청에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사기꾼의 영어 실력, 이정도면 전문직으로 봐 줘야 한다.

요약하자면,

" 지금 출장으로 영국에 와 있고 여기선 회사 규정상 영상통화가 어려워서 영상통화로 본인 확인을 하기 어려우니 메일로 계속 연락을 유지하자. 나11월 10일에 집에 돌아가니 그때 만나. 그리고 너의 개인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면 계약서를 작성해서 보내줄 테니 계약서에 서명한 후 월세를 입금했다는 영수증과 함께 회신을 하면 방을 내줄게."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본인은 정직하다는 증거로 본인의 사진과 여권, 같이 지낼 또 다른 친구의 사진을 보내왔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같은 곳에서 무단 도용했을 것 같은 레이디들. 본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런데 여권 사진이 이상했다. 유럽 여권을 본 적은 없지만 키가 적혀 있길래 신기해서 자세히 보니 생년월일에 포토샵의 흔적이 있고, 여권 속 사진과 본인 사진이라고 보내온 레이디는 너무 달라 보였다. 무엇보다 여권을 짚고 있는 세 손가락은 저 아름다운 레이디의 손가락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얘기가 너무 잘 진행된다 싶었다.

에이전시를 통하면 이렇게나 빡빡한데,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방 계약이 되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다시 아래와 같이 답변을 보냈다.

사기꾼이구나 싶어 그냥 무시하려다가 오히려 난 정성스레 당신이 사기꾼인 이유에 대한 근거와 참조문까지 넣어 답장을 보냈다.

사기꾼에게 정성껏 쓴 메일, 했던 말을 또 쓴 걸 보니 화가 나서 쓴 흔적이 보인다.

이 메일 이후로 독일과 네덜란드 혼혈의 화학을 공부했으며 지금 막 취업했다는 22살의 Maike는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나 보다. 내 주머니에서 큰돈이 나가는 순간엔 열 번 더 고민을 하는 습관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K에게 메일을 전달하니 "얘 100% 사기꾼이야, 이런 사람들 조심해야 해!"라고 답변이 왔다. 그리고 "걱정 마. 내가 너에게 꼭 좋고 알맞은 집을 찾아 줄게."라는 말도 함께.


그치만 난 K의 이 달콤한 말을 다시 철석같이 믿을 순 없다. 8월에 집을 같이 구하자는 말을 했을 때, 계약서만 좀 잘 살펴봤어도 내가 지금 이런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내 속도 모르면서... '말이나 저렇게 하질 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집 구할 때까지 갈 곳 없는 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 탓하지 말고 내가 찾으면 되는 것이다.


참 별일도 다 있다.

큰일이다. 을 빨리 구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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